속죄의 본질 논쟁

(그레고리 A. 보이드 외, 김광남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8

 

이신건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 신앙은 여러 가지 방향에서 강한 도전과 위기를 맞고 있다. 도덕적, 제도적 위기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신학적 위기다.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가장 큰 위기는 행위 무용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구원론이다.

행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가장 강력하게 무너뜨리는 이론은 이른바 “내세 천국론” 혹은 “사후 구원론”일 것이다. 만약 구원과 천국이 내세나 사후에만 이루어지거나 결정된다면, 현세를 긍정하거나 현세에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할 결정적인 동기가 사라지거나 허약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비록 이 땅에서 아무리 큰 복을 받아도, 현세의 복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구원은 오직 사후에, 내세에만 결정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장례식 때마다 “천국 환송식”이니, “천국 입성”이라는 말이 떠돌곤 한다.

그런데 이런 내세 천국론과 교묘하게 결합되어 행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력하게 무너뜨리는 다른 신학 이론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전통적 해석, 이른바 “대속형벌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예수가 인간의 범죄의 대가인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인간 대신에 감당하기 위해 죽었고, 이 사실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설명으로 요약된다. 율법적, 희생제사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이 이론은 지금까지 마치 유일하고 절대적인 이론인 것처럼 소개되었고, 지금도 다른 이론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발휘한다.

그러나 성서 안에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매우 다양한 설명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울렌의 말대로 교회의 역사에서 대체로 세 가지 이론이 압도적으로 소개되어 왔다. 고전적 해석(승리자 그리스도), 라틴적 해석(형벌만족설 또는 형벌대속설), 현대적 해석(주관적, 도덕적 감화설)이다. 최근에 한국에 새롭게 번역, 소개된 책 “속죄의 본질 논쟁”(새물결플러스)은 속죄론을 조금 다르게 분류한다. 승리자 그리스도론, 형벌대속론, 치유론, 만화경론이다.

앞의 두 이론은 익숙하게 들어왔지만, 뒤의 두 이론은 조금 낯설다. 치유론은 속죄를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나 진노로 보기보다는 죄의 결과인 질병과 상처의 치유로 본다. 만화경론은 예수의 죽음의 신비를 한 가지 이론으로 제한할 수 없기 때문에 인물과 시대마다, 그리고 같은 인물도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이론을 전개한다는 이론이다.

지면과 능력의 한계 때문에 여기서 어떤 이론이 더 우월한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각각의 이론은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그렇다고 상대주의나 다원주의가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판단과 수용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단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설명하자면, 속죄론은 예수의 특정한 사건에만 근거하지 않고 예수의 모든 생애를 포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이론이 가장 설득력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이론의 다른 큰 장점은 예수의 위대한 구원 행위만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도 요구한다는 것이다. 비록 예수가 구원을 위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감당해야 할 전투의 임무는 여전히 남겨져 있다.

다른 이론이 인간의 단순한 동의나 믿음 혹은 내면적이거나 인격적인 감화를 주로 강조한다면, 첫 번째 이론은 인간의 강력한 참여나 순종, 제자의 길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행동과 실천에 매우 무능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이론은 가장 큰 도전과 대안을 제공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책의 설명과 논쟁은 복잡하고 조금 난해한 편이다. 하지만 구원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참된 진리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정독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의 광고와 홍보를 맡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해하지 마시라!)

물론 최후의 판단과 선택은 여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다만 편견과 오만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은 항상 열린 마음과 겸손한 배움과 대화의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