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논쟁

이 글은 페이스 북에 올라온 글임을 밝힙니다. 

 

      1. 장기영 : 성결교회 사중복음 vs. 글로벌 사중복음

      2. 장기영 : 최인식 교수의 『예수의 바람 성령의 바람』에서 동의하기 힘든 내용들

      3. 이신건 : 논쟁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

      4. 조재석 : 웨슬리신학과 사중복음에 대한 단상


장기영


이신건


조재석

 

 

성결교회 사중복음 vs. 글로벌 사중복음
(장기영, 2017년 7월 12일)

 

서울신학대학교 글로벌사중복음연구소 소장 최인식 교수는 성결교회의 전통인 사중복음을 신학화, 세계화 한다는 목적 하에 사실상 성결교회 신학적 전통을 벗어난 초교파적 사중복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근거가 빈약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차원 또는 서울신학대학교의 학문적 차원에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전통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취해야 할 교단의 지도자들, 교단의 전통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서울신학대학교의 교수들은, 글로벌사중복음연구소의 주장이 성결교회의 신학 전통을 세우기보다 오히려 파괴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거나, 혹 인지했더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누구도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문제를 인지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한 목회자가 교회의 재정을 들여 교단 차원에서 서울신학대학교 웨슬리신학연구소와 글로벌사중복음연구소의 공개 토론회를 열어 성결교회 신학 전통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하였으나, 글로벌사중복음연구소의 거절로 공개 신학 토론이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최인식 교수는 공개 토론은 피하면서도 목회자 세미나나 평신도대학원 등에서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성결교회 사중복음이 아닌 최인식 표 사중복음이 마치 우리 교단의 사중복음인 양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서울신학대학교의 교과목에 있어서도 오래 전부터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신학 교육의 한 켠을 지켜온 "웨슬리 신학과 사중복음"이라는 필수과목을 분리시켜 웨슬리 신학과 사중복음이 서로 일치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도록 사중복음을 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지 과목이 분리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두 과목이 조화될 수 없는 입장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 글에서 쓴 것처럼 최인식 교수가 침례교 교회론을 초교파적 사중복음의 틀로 사용하려 한다는 우려 역시 서울신학대학교 신대원에서 개설된 "사중복음 교회론"이라는 과목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책임있는 지도자들과 서울신학대학교의 책임있는 교수진이 이러한 성결교회 신학 전통의 변형과 조심성 없는 파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잠잠해왔기에, 저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목사로서 길에 구르는 하나의 돌멩이라도 이런 중대한 신학적 문제에 그저 침묵하고 잠잠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같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 19:40).

성결교회의 전통인 사중복음의 학문적 깊이를 더해야 한다는 시각에는 동감하고,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주시는 점은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진리들을 담고있는 성결교회 전통의 변형과 파괴가 되기보다 전통을 재해석하여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서울신학대학교는 최인식 교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글로벌사중복음연구소의 성결교회 신학 전통의 지나친 수정과 변형에 대해 더이상 무관심이나 침묵으로 일관하지 마시고, 그가 지금까지 주장해온, 지금도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검토함으로 그 역사적, 신학적 진위를 파악하여, 더이상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교단적 합의와 서울신학대학교의 신학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소위 실험적이고 가설적인, 개인적인 주장이 충분한 학문적 검토와 논의조차 없이 교단의 목회자들과 서울신학대학교의 학생들에게 교단의 공식적 입장인 양 유포되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최인식 교수의 『예수의 바람 성령의 바람』 (서울: 사랑마루, 2014)에서 동의하기 힘든 내용들
(장기영, 2017년 7월 14일)

 

최인식 교수 개인의 주장이 기존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역사적, 신학적 해석과 매우 다름을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페이지 출처는 모두 최인식 교수의 『예수의 바람 성령의 바람』입니다. 최인식 교수의 글은 따옴표 속에 인용한 후, 화살표(-->) 기호를 붙여서 저의 반론을 적었습니다.

<16페이지 – 성결교회의 시작이 언제인가의 문제>
"성결교회는 기독교 역사의 후기라 할 수 있는 19세기 말에 비교적 다른 교단보다 늦은 시기에 신생 교단으로 태어났습니다... 성결교회의 초창기 미국에서는 ... 두드러지게 나타난 복음의 메시지인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하나로 묶어서 한 마디로 ‘풀 가스펠(Full Gospel)이라 했고, 이를 한국 성결교회에서는 ‘사중복음’이라 했습니다."
--> 여기서 최인식 교수는 성결교회의 근본을 18세기의 존 웨슬리에 두지 않고, 또 20세기 초 (1907년) 김상준, 정빈에 의해 세워진 한국성결교회를 성결교회의 시작이라고도 하지 않고, 성결교회가 19세기 말 미국에서 세워졌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성결교회의 초창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한국성결교회의 기원을 19세기 말 미국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최인식 교수는, 성결교회는 18세기 영국의 웨슬리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20세기 한국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되어 이후에 한국에 전해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에서는 18세기 웨슬리와 19세기 미국의 성결운동 사이의 근본적 일치와 계승의 문제가 매우 경시되고 있다. 즉, 19세기 성결운동은 웨슬리 사후 감리교 역사에서 점차 잊혀지고 경시되어왔던 오리지날 웨슬리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음을 간과하고 있다.

<22페이지 – 성결교회 신학이 웨슬리신학이냐 아니냐의 문제>
"교단적 혹은 개인적 신앙고백의 정체성과 전통을 견고히 지키는 수구적인 자세만으로는 변화하는 21세기 선교를 리드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자명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배타적 고유성(uniqueness)에서가 아니라, 간주체적인 통합성(integration) 안에서 찾는 신학방법과 신앙생활에로의 혁신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 이 표현과 문맥 속에는 최인식 교수는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과 전통을 지키려는 태도를, 21세기 선교를 리드해 나갈 수 없는 수구적인 자세라며, 상당히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타교단과 구별되는 우리만의 특징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려 하지 말고, 간주체적 혹은 상호주관적 통합성에서 찾을 것을 제안한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래에 인용한 바로 다음 문맥에서 더 분명하게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우선 언급하고 싶은 점은, 타교단과 구별되는 우리만의 특징을 왜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교단이 갖지 못한 우리의 뛰어난 신학, 타 교단에게 없는 우리의 뛰어난 전통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신학과 우리 전통이 별볼일없어서 다른 교단과 구별되고 다른 교단보다 뛰어난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다른 교단과 다른 점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다른 교단과 잘 융합하는 데서 찾자는 말은 설득력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다른 교단과의 차별성에서 찾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뛰어난 신학과 뛰어난 전통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태도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성결교회의 신학은 웨슬리 신학이라든지, 혹은 성결신학, 혹은 사중복음 신학이라고 특정한 신학과 동일화함으로써 다른 관점들을 배격하는 배타적인 무리한 접근을 지양하자는 것입니다. 오히려 칼뱅주의, 웨슬리주의 및 오순절주의 등을 통합적으로 보는 글로벌 신학의 틀 안에서 성결교의 로컬한 신학적 사명 내지는 정체성을 찾는 것이 보다 현명한 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여기서 최인식 교수가 만들어 나가려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 그리고 최인식표 사중복음의 방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교단의 정체성은 초교파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교단의 신학도 초교파적인 신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성결교회 신학을 웨슬리 신학이라고 말하는 것을 지양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즉, 웨슬리 신학, 성결신학, 혹은 사중복음 신학이 성결교회의 신학이라고 말하면 그것과 다른 관점을 배격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면서 웨슬리 신학, 성결신학, 혹은 사중복음 신학이 성결교회의 신학이라고 말하는 것을 “배타적인 무리한 접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신학적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 입장과 다른 관점을 배격하게 된다는 점 때문에, 하나의 신학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배타적인 무리한 접근”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어떤 신학적 입장도 채택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성결교회의 신학이 “웨슬리 신학이라든지, 혹은 성결신학, 혹은 사중복음 신학”이 아니라, “칼뱅주의, 웨슬리주의 및 오순절주의 등”이 모두 혼합된 초교파 신학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22-23페이지>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필요하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차이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칼뱅 신학’이라든지 ‘웨슬리 신학’이라는 옷에 살아 움직이는 교회라는 몸을 맞추는 식으로 ‘신학적 정체성’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신학의 자세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학이 어떤 신학적 전통의 흐름 가운데 서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특정한 신학 체계에 교회를 종속시키는 것은 그것이 설령 역사적으로 소급이 가능할지라도 신학의 마성화를 자초하는 일이요, 우리가 그토록 거부하는 ‘인간 중심주의’의 덫에 걸리는 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한 교단이 특정한 신학 전통을 선택할 때에는 타 전통보다 뛰어난 성경 이해나 실천 등 그 전통만의 우수한 점을 발견하였기에 그 전통을 따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긍정적인 관점은 무시하고 어느 신학 체계를 따르는 것을 “특정한 신학 체계에 교회를 종속시키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나치다. 우리가 특정한 신학 전통을 따르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과거의 신학 전통보다 더 뛰어나고 더 체계적이고 더 모순이 없는 일관된 해석을 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기 싫어서 과거에 안주하는 것이라면 그런 부정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 매우 귀하게 사용하신 탁월한 신학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진리를 따라 훌륭한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했기에, 후대의 사람들이 그 관점을 뛰어넘어 더 좋은 신학 체계와 교회 전통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매우 훌륭한 신학 체계와 교회 전통을 만들어 낸 결과, 그들의 신학 체계와 교회 전통을 따르는 이들이 그들을 통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특정한 신학 체계에 교회를 종속시키는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신학 전통이 “웨슬리 신학”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즉, 웨슬리의 성경 이해와 해석이 매우 훌륭하여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웨슬리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고, 우리가 웨슬리 신학 전통에 있음을 감사하는 것이지, 웨슬리를 신격화 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의 해석을 더 추종하려는 것은 아니다. “신학의 마성화를 자초”하려는 것도 아니다. “인간 중심주의”로 나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최인식 교수는 성결교회 신학이 “웨슬리 신학”의 전통에 서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웨슬리 신학도 뛰어난 전통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니 웨슬리에만 머물지 말고 더 발전시켜 나가자 하는 식의 논리라면 찬성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마치 과거의 전통을 따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그것을 부수고 저자가 앞으로 제시할 신학을 따라야 바른 신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형성되어온 소중한 신학 전통에 대한 너무나 부정적인 접근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위대한 신학자들을 지나치게 경시하고, 내가 제시할 신학이 그들보다 더 뛰어난 최고의 신학이라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주장이 아닌지 우려된다. 그의 지나친 자신감이 오히려 최인식표 사중복음과, 존 웨슬리에 기초를 둔 오랜 성결교회 전통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을 목회자와 신학생들, 신자들, 우리 교단 위에 강요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24페이지 – 마틴 냅과 존 웨슬리를 대등하게 보는 견해>
"하나님 중심주의를 견지하는 신학들끼리라면 어떠한 생소한 신학적인 만남도 서로를 축소시키거나 억압하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 판의 파이를 앞에 두고 경쟁하듯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미국 만국성결교회의 창립자 마틴 냅과 영국 감리교회의 창립자 존 웨슬리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남으로써 오히려 폭넓은 신학적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적 사중복음 정신을 실천한 냅(Martin W. Knapp)과 기독자의 완전론을 수립한 웨슬리(John Wesley)의 만남은 핵폭발적인 융합의 결과를 자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결교회가 냅과 웨슬리의 신학적 융합을 과감히 시도한다면 웨슬리안 오순절 사중복음에 기초한 혁신적인 신학이 출현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줄여서 ‘사중복음 신학’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 신학 전통간 차이는 심원하여 각각의 신학이 하나님 중심주의를 견지한다 하더라도 그 전통들 사이에는 일정 영역에서 신학적으로 서로를 조화를 이루기 힘든 해석이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웨슬리와 휫필드는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협력자의 관계였지만, 예정론 논쟁으로 서로 분열하였다. 성경에서도 선교여행 대열에서 탈락한 전적이 있는 마가를 다시 선교여행에 참여시킬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대립하다가 각자의 길을 떠난 사건이 나온다(행 15장). 이러한 분열이 두 사람이 하나님 중심주의 신학을 견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신학 전통 간에는 성경 해석의 입장 차이가 커서 영원히 융합될 수 없는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데, 그럴지라도 그것을 인간의 한계로 여기고 선교와 전도, 교제에서는 협력하자는 말은 옳을 수 있지만, 차이가 분명한 신학적 문제에서마저도 “경쟁하듯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칼빈주의 전통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부정한다. 심지어 공격적인 태도로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자유의지를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 웨슬리안을 펠라기우스주의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신학적인 문제에서 각각이 하나님 중심주의를 견지한다 해서 신학적 일치가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 또 최인식 교수는 위의 글에서 미국 만국성결교회 창립자 마틴 냅과 영국 감리교회 창립자 존 웨슬리의 만남을 대등한 신학 전통간의 만남으로 묘사하는데, 과연 마틴 냅과 존 웨슬리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마치 프랑스의 존 칼빈과 한국의 옥한흠 목사의 관계를 대등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이, 부적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존 칼빈과 옥한흠 목사를 대등하게 두면서 그 두분의 만남이 폭넓은 신학적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말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옥한흠 목사님을 존경함에도, 그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옥한흠 목사는 칼빈과 대등한 분이기보다는 칼빈의 제자로서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따랐던 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옥한흠 목사는 칼빈의 제자이지, 칼빈과 대등한 신학자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옥한흠 목사의 신학이 칼빈이 가르친 것과 100% 똑같다거나, 칼빈보다 뛰어난 후대의 신학을 옥한흠 목사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 아니다. 옥한흠 목사의 신학에서는 16세기 칼빈의 종교개혁 시대에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후대에 발전한 신학적 입장이 있다. 예를 들어, 칼빈 이후에 발전한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입장, 또는 칼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교회론과 소그룹 제자 훈련에 관한 신학적 입장 등 옥한흠 목사를 칼빈의 테두리 안에 가둘 수 없는 후대의 신학적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과 실천에 관련된 특정 영역에서 칼빈이 이루지 못한 신학적 또는 실천적 발전을 옥한흠 목사가 이루었기 때문에, 옥한흠 목사는 칼빈 전통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신학 전통을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옥한흠 목사는 존 칼빈을 따랐던 사람이 아니라 성경적 기독교를 믿고 따랐던 사람이기 때문에, 옥한흠 목사를 칼빈주의자라고 말하면 안 되고 단지 성경적 기독교인, 성경적 신학자라고만 말해야 하겠는가? 성경적 신학을 목표로 삼는다 해서, 또 신학의 특정 영역에서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적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종교개혁자가 가지지 못한 신학적 발전을 이루었다고 해서, 옥한흠 목사를 칼빈 전통 안에 있는 신학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옥한흠 목사를 칼빈의 제자이자, 칼빈 전통 안에 있는 목회자 또는 신학자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또 그것이 옥한흠 목사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존 웨슬리와 마틴 냅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굳이 마틴 냅을 웨슬리와 함께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존 웨슬리 급 신학자로 보아야 할까? 개신교의 위대한 신학자들인 루터, 칼빈, 웨슬리 3인의 이름에 마틴 냅의 이름을 추가해도 될만큼, 마틴 냅의 역사적, 신학적 비중이 탁월하다는 것인가? 오히려 19세기 성결운동가들을 웨슬리의 후예로서 웨슬리의 신학을 계승하고 재해석한 인물들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웨슬리의 많은 제자 중 한 사람을 웨슬리와 대등한 인물로 표현하는 것은, 옥한흠 목사를 칼빈과 대등하게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적절하지 않은 주장으로 보인다. 비록 마틴 냅이 웨슬리 시대에 웨슬리가 잘 알지 못했던 특정 영역의 신학을 알았다 하더라도, 또한 마틴 냅이 성경적 기독교를 추구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틴 냅이 웨슬리의 신학 전통에 서있지 않다거나 웨슬리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는 오히려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 아니겠는가? 감리교 목사로서 감리교 내에서 웨슬리의 가르침을 통해 중생과 성결을 모두 체험하고 성결부흥사가 된 마틴 냅을 웨슬리의 참된 제자이자 계승자로 말하는 것이 과연 그를 폄하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위에서 제가 인용한 최인식 교수의 표현들 외에도 동의하기 힘든 설명과 내용은 더 많이 있습니다. 시간적 제약 때문에 최인식 교수의 책 독서와 반론 제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저는 최인식 교수의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힘든 주장의 몇 가지 사례만 더 인용한 후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시간과 기회가 되면 더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29페이지: 사중복음이 웨슬리 신학에 의해 가려졌다는 인식>
“사중복음은 신구약성서에 뿌리를 둔 참으로 오래된 악기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그 역사에 비해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닙니다. 정말 깊은 소리를 내는 악기이지만, 서양의 오르간이나 피아노와 같이 잘 알려진 칼뱅 신학이나 웨슬리 신학에 가려지거나,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다양한 음색을 내면서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전자악기들이 대량으로 소개되는 바람에 여러 가지의 현대신학에 묻혀버리게 된 것 같습니다.”

<36페이지: 특정 신학이 교단의 지배적 신학이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
“몸이 옷을 위해 있지 않듯이, 교회가 신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이 교회를 위해 필요한 것이요, 따라서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특정 신학이 제왕적 위치에서 교회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55-56페이지: 우리 교단의 정체성이 웨슬리가 아니라 성결교단을 창립한 마틴 냅에게 있다는 주장>
“우리는 그간 정빈, 김상준, 이명직, 김응조, 이성봉을 통해서 사중복음과 성결교회를 이해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중복음을 전수한 카우만과 길보른에 대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성결교회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질 수 없습니다. 정체성 확인은 언제나 토대를 놓은 자에게서 가능하기 때문에 성결교회를 창립하는 데 함께했던 조상들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오순절 교회의 조상은 찰스 파함과 윌리엄 시무어이며, 침례교는 성공회 목사였던 스미스이며, 나사렛 교회는 189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한 피니스 브릿지이며, 감리교의 창시자는 성공회 목사 존 웨슬리입니다. 그가 1784년에 실시한 비공개 안수식 사건 이후 영국교회와의 분리가 불가피해졌고, 이로써 1795년에 실시된 총회로 감리교가 태어났습니다. 칼뱅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와 회중교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결교회는 1897년 마틴 냅과 셋 리스에 의해서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에는 10년 후인 1907년에 태어났습니다.”

<67페이지: 마틴 냅을 성결교 창립자라고 표현한 곳>
“만일 다양한 성령의 은사와 특히 방언에 대해 열려있는 펜티코스탈 영성의 기수 마틴 냅이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성결교 창립자인 냅의 중요한 사상이 그의 죽음 이후 줄곧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기 위함입니다 ... 그 결과 냅의 정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성결운동이 형성된 것입니다.”

<80-81페이지: 성결교회 신학을 웨슬리 신학으로 보기보다 “사중복음” 신학이라고 표현한 곳>
“이것은 16세기 루터와 칼뱅의 신학이 ‘오직 성서, 은총, 믿음’으로, 그리고 웨슬리의 신학이 ‘기독자의 완전’으로 요약될 수 있듯이, 성결교회의 신학은 ‘사중복음’으로 탁월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사에서 발견되는 것은 사중복음이 종교개혁자들과 웨슬리의 신학적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신학적 패러다임 안에서는 사중복음의 정신과 그 신학적 특징들이 다 설명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전까지의 연구에서는 사중복음을 ‘웨슬리안’ 복음주의라는 틀 안에 들어오는 것만 조명했기 때문입니다.”

<87페이지: 성결교회 신학적 정체성을 존 웨슬리가 아닌 마틴 냅과 연결시킨 곳>
“주지하다시피 성결교회의 창립자는 마틴 냅과 셋 리스입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성결교회 신학의 초석을 놓은 자들에는 성서학자 윌리엄 갓비와 조직신학자 아놀드 힐스가 있습니다. 이들은 성결교회 신학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연구가 진작부터 이루어졌어야 했습니다.”

<92페이지: 웨슬리 신학과 사중복음을 분리시켜, 성결교회를 가능하게 한 신학을 웨슬리 신학이 아닌 사중복음 신학이라고 한 곳>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신학 역시 살아있는 정신의 활동이며, 그 산물입니다. 그리고 신학은 어떤 정신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됩니다. 루터의 정신으로 할 때는 루터 신학이 되고, 칼뱅의 정신으로 하면 칼뱅 신학이 되고, 웨슬리의 정신으로 신학적 이슈들을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면 그 신학은 웨슬리 신학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앞에서 소개된 마틴 냅의 사건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냅을 비롯한 성결교 창립 지도자들의 생애와 사상 가운데 녹아있는 정신은 성결교를 가능하게 한 사중복음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의 정신으로 전개하는 신학을 사중복음 신학, 혹은 사중복음적 신학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쟁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
(이신건, 2017년 7월 15일)

 

장기영 박사가 아래와 같이 최인식 박사의 신학에 반격을 가하며 신학적 논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에도 조종남 박사와 황덕형 박사가 이미 최인식 박사의 입장을 반박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기영 박사가 처음 논쟁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런 논쟁의 논점은 두 가지다. 1) 성결교회의 전통이 웨슬리냐, 아니면 사중복음을 강조했던 미국 성결운동이냐? 2) 미래의 성결교회의 신학은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하느냐?
나는 지금까지 마치 방관자나 제삼자처럼 이 논쟁을 흥미 있게 지켜보았지만, 이미 일찍부터 우리의 정체성이 매우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성결신학연구소에 올린 나의 글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지금 논쟁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1) 우리 성결교회는 대체로 교리와 신학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관심한 편이다. 과거에는 분명히 안 그랬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정치와 교회, 목회와 교권 등에 대해서는 갈수록 더 큰 관심을 보여왔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부분의 성결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교리와 신학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게 목회와 생활에 무슨 보탬이 되는 식이라는 태도다. 대부분의 성결교인들은 신학 논쟁을 강너머 불처럼 바라볼 따름이다. 내 앞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강건너 불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2) 지금 우리는 단지 우리 교단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교회, 아니 기독교의 정체성이 완전히 흔들리는 거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미래성에 관한 논의와 논쟁은 마치 거대한 태풍과 지진 속에서 내 집안 단속만을 열심히 하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는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재정립하거나 개혁해야 할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교회가 급격히 쇠퇴하고 망해가는 이 마당에 우리 신학의 정체성에 관한 논쟁은 지진과 태풍 속에서 집안 싸움을 하는 것처럼 비친다. 이제는 기독교 전체의 공멸과 미래에 관해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시급한 시기라고 본다. 여기서 웨슬리나 사중복음은 하나의 중요한 지표를 제공해 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는 부족하다. 이제는 기독교의 근본, 복음의 핵심, 예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다.

 

 

웨슬리신학과 사중복음에 대한 단상
(조재석, 2017년 7월 16일)

 

- 지난번에 페이스 북에서 친구인 장기영 박사와 공개된 자리에서 오랜 시간 대화했습니다. 하지만 페이스 북(신속히 타이핑 해야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부족한 점)의 한계에서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점을 잘 말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친구이기 때문에 다소 편하게 대화한 점도 있고요.

하지만 이후 페이스복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교단 일을 해오면서, 그리고 100주년 성결교회 신학의 정립작업을 보아왔고 그 결과물인 ‘성결교회 신학’을 초기 생산물부터 최종 완성물까지 깊이 읽고 생각해 본 사람의 한 명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1. 장기영 박사와 대화에 대하여

- 지난해부터 장기영 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친구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성급한 것은 아닌가도 생각했습니다. 물론 장 박사의 성격과 글 쓰는 스타일을 알기에, 거기에다 경상도 출신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고, 학자로서 글을 쓰다보니 다소 직설적인 표현을 가져가고 있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우려했습니다. 다만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의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임을 믿고 있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 때의 글이 ‘학문적인 지적이나 방향성에 대한 우려’로 느껴졌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최근에 다시 그의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글은 여러 번의 사적인, 공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사중복음연구소의 연구방향과 내용을 보면서 느끼는 답답함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일부 표현이 장 박사를 오해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가도 들었고, 여기에 더해 ‘학문적 비판이나 우려’를 넘어선 어떤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단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표현 등)

- 밤 12시경에 그의 글에 댓글을 달았고, 1시간여 넘게 댓글로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이지만 공적이기에 보다 직접적인 표현을 자제했던 것 같습니다. 장 박사 또한 그랬을 것이고요.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 이틀 동안 잘 잠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내 위치에서 내 문제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지만, 또한 지금은 멀리 떠나있는 내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상황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정보를 획득할 수 없는 가운데 이야기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번은 내 생각을 말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 다행스럽게도 3년 전 독일에 오면서 가져온 책 중에 ‘성결교회 신학’과 ‘성결교회100년사’는 챙겨왔고 책꽂이에 꽂혀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책에 기록된 과거의 독서 흔적을 따라 다시한번 ‘성결교회 신학’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정도의 학문적 성과는 없다는 점에서 깊이있는 신학적 논의나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금 신학적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사실상 평신도적 삶을 사는 자유인으로서 깊이 있는 신학적 토론을 할 입장도 아닙니다. 아울러 저는 개인적으로 논쟁이나 문제제기보다는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입장과 관용하려는 태도를 강조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학자의 글이나 태도를 가능한 긍정적인 방향에서 ‘규정’(그가 다른 의도가 있을지라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제 저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2. ‘성결교회 신학’

- 성결교회(기성,예성)의 (한국) 첫 교회 설립 또는 선교 100주년을 맞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서울신대 교수역량을 결집시켜 ‘성결교회 신학’ 정립작업을 진행했고 ‘성결교회 신학’이는 결과물을 제출합니다. 이를 통해 1200여쪽에 이르는 ‘성결교회 신학’을 출간하고 이를 요약한 ‘성결교회신학 개요’를 출간하였습니다.

- 여기서 성결교회 신학은 ‘온전한 구원의 신학’ 또는 ‘개신교복음주의 웨슬리안 사중복음 신학’으로 정립합니다. 물론 이는 요약 명칭입니다. 현행 교단 헌법에 규정한 대로 성결교회는 “존 웨슬리의 복음적 성결의 주창을 배경으로 하여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복음으로 요약된 교리적 정신”이 근거한 교회이며 ‘성결교회 신학’에서 정리한 대로 “성결교회 신학의 근원은 웨슬리안 복음주의”입니다. 여기서 성결교회 신학이 ‘웨슬리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그렇다고 성결교회 신학이 18세기 ‘웨슬리’의 신학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웨슬리 신학은 웨슬리 이후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고 그 영역이 확장되어 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학자가 아니니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또 감리교회의 어느 분이 번역했던 ‘웨슬리 신학’이라는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웨슬리 때 고민되지 못했던 신학적 주제도 많아졌고 시대적 상황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응답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신학적 주제가 형성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일례로 ‘성결(성화)’의 순간성이나 점진성 문제 또한 웨슬리 신학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고, 사중복음과 같은 내용이나 종말론의 문제등 또한 그러한 주제의 하나일 것입니다.

- 그렇다면 성결교회가 웨슬리 신학, 그리고 웨슬리에 의해 탄생된 웨슬리의 교회 제도나 운영의 문제에 갇혀 있었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성결교회의 직접적 탄생은 미국의 성결촉진운동 과정에 의해 태동한 만국성결교회연합(만국성결교회는 나중에 필그림교회로 바뀌었고, 그리고 웨슬리안감리교회에 합쳐 웨슬리안교회가 된다)와 이런 영향 속에 탄생한 동양선교회(이 기구를 만국성결교회 소속으로 보느냐, 아니면 독립적인 것으로 보느냐는 논쟁이 있습니다.)에 의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시작합니다.

- 여기서 하나. 최인식 박사께서 ‘성결교회 탄생을 미국 만국성결교회로 본다’(약간은 표현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는 입장이 장기영 박사 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성결교회 사람들은 ‘성결교회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만 만국성결교회를 전 세계 성결교회의 시작으로도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까다 주지에 의한 일본 성교회의 탄생을 성결교회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미국의 성결교회가 웨슬리안교회로 되면서 없어졌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성결교회는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에 독립적인 교단으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은 학문적인 토론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성결교회는 한국교회 자생적이라기보다는 미국 성결그룹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 계속해서 말씀드립니다. 2007년 ‘성결교회 신학’은 성결교회 신학의 역사를 살피고, 그 내용을 살피고, 현재의 성결교회 신학의 단계를 정리하면서, 성결교회 신학의 나아갈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표현 중에 “성결교회 신학은 웨슬리 신학으로부터의 이탈이나 변질이 아니라, 웨슬리 신학이 확대 발전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처럼 우리도 웨슬리 신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웨슬리 신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520쪽)말합니다. 또한 “성결교회 신학 정립에서 가장 우선적인 순서로 해야 할 주제가 사중복음”이라고 말하고 “사중복음은 성결교회의 중요 교리와 신학이지만 성결교회의 교리와 신학의 전부는 아니다. 또한 사중복음은 교단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전도 표제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다”(522쪽)이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해 웨슬리 신학을 발전의 한 방향으로서, 그리고 웨슬리 신학의 전통 속에 서 있는 성결교회 신학의 발전으로서 사중복음에 대한 연구와 신학화 작업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성결교회 신학의 정립작업은 사중복음 뿐 아니라 다른 영역도(성결론, 교회론, 실천신학적 문제 등) 많을 것입니다.

- 이러한 부분에서 저는 교단 창립 100주년 이후 ‘글로벌사중복음 연구소’와 ‘웨슬리 신학연구소’ 등이 서울신학대학교에 태동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두 기관은 100주년 성결교회 신학이 해명한 부분에 기초하여 앞으로 성결교회 신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웨슬리 신학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동시에 웨슬리 신학과 성결교회의 목회와 현장 속에서 제기된 신학적 주제의 연관성을 연구하여 확장성을 가져와야 합니다. 사중복음연구소 또한 웨슬리안 사중복음을 보다 확장하고 폭넓게 하고 오늘의 신학적, 교회적 상황에 맞게 깊이 있는 주제로, 현실적 주제로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글로벌’이라는 점에 맞게 두 기관 모두 세계 속에 성결교회 신학을 알리고, 세계 신학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며, 세계 신학으로서 자신의 신학적 단순화와 외향적 확대도 해야할 것입니다.

3. 글로벌 사중복음연구소와 사중복음 신학

- 여기서 저는 글로벌 사중복음연구소의 고민을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방향에서 서술해보려고 합니다. 사중복음연구소의 출발은 100주년 신학 정립에 토대하여 이뤄졌습니다. 연구소는 ‘사중복음은 성결교회의 전도표제이지만 성결교회 태동과 이후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인식하고 이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한 고민을 했다고 생각됩니다.(제가 연구소 출범 당시의 방향성을 적은 문서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기억이 됩니다.) 전도표제인 사중복음을 ‘사중복음 신학’으로까지 정립하고자 한 것입니다.

- 구원론의 입장에서 온전한 구원, 전인적 구원을 말하는 사중복음을 바탕으로 ‘사중복음 교의학’으로 까지 발전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서 ‘중생의 복음에서 생명을, 성결의 복음에서 사랑을, 신유의 복음에서 회복을, 재림의 복음에서 공의라는 복음적 원리를 드러낼 수 있다’는 시각도 제시되었습니다. 또한 각 시대의 상황 속에서 사중복음을 재해석되도록 하여 오늘의 시대에 맞는 틀로 다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2015년 제가 독일에 오기 전 사중복음연구소는 ‘글로벌 신학과 사중복음’(?) 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것으로 압니다. 책으로 출간되기 전 자료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편집이 좀 시워시원(?)해서 다소 아쉬웠던 기억도 납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고민도 들었습니다. 특히 ‘사중복음은 성결교회의 전도표제’로서 역사적 측면에서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아직은 ‘사중복음 신학’이라는 표현이 다소 생경했습니다. 더욱이 조직신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한 입장에서 ‘구원론’과 ‘종말론’ 등의 범주로만 구분하던 영역을 ‘사중복음 신학’으로 정리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과연 가능한 것인지도 고민이었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입장은 웨슬리신학을 잇는 ‘성결신학’이나 ‘웨슬리 신학에 근거한 교단이지만 사중복음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교단인 성결교회가 발전시켜 온 성결교회신학’이라는 범주가 더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결(교회)신학’이라는 범주에서 웨슬리신학+알파(성결교회가 한국에서 경험하고 만들어오고 하늘의 은총을 통해 획득해 전통과 신앙고백)를 조직신학적 틀(전통적 틀이든 새로운 틀이든)에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었습니다.

- 그런 생각을 하는 입장에서 ‘글로벌 신학과 사중복음’은 다소 기대에 못미쳤다고 할까요? 아니면 독일로 떠나올 준비의 막바지 단계였기 때문에 책을 대충대충 읽다보니 깊이 있는 생각을 못한 때문일까요. 아무튼 그 때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은 대충 이렇습니다.

- 그런데 제가 느끼는 글로벌 사중복음연구소의 내용이나 소장으로서 최인식 박사님의 연구는 이제 10여년(성결교회 신학 정립 작업까지 포함하면 15년여 정도) 정도 이뤄진 상황입니다. 전도표제로서 시작된 사중복음의 신학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또한 현재까지 전통적인 조직신학 체계로 정립할 수 없는 내용을 ‘사중복음신학’이라는 명칭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더욱이 그것을 ‘성결교회의 신학’이라고 명칭을 붙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최인식 박사님은 시도하고 있고, 몇 편의 논문을 통해 자기 주장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 저는 최인식 박사님이나 글로벌 사중복음연구소의 연구에 대한 대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모든 발표된 글이 연구자의 하나의 주장이라는 사실입니다. 최 박사께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신학대학교의 공식견해라거나 성결교회의 공식견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최 박사께서 자신의 연구를 가지고 ‘자기가 이해한 성결교회 신학이 이렇다’라거나 ‘이런 내용의 확장이 필요하다’거나, ‘이렇게 나가야한다’ 등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글로벌 사중복음연구소 또한 서울신학대학교의 하나의 연구소일뿐입니다. 그 연구소가 웨슬리연구소나 다른 연구소보다 정책적 지원을 더 받아도, 덜 받아도 그러한 지위는 바뀌지 않습니다.

- 교단에서 이 연구소를 더욱 애정있게 보거나 관심 있게 볼 수도 있습니다. 성결교단이 웨슬리신학에 서 있지만 처음 교단을 설립할 때부터 강조한 것은 ‘사중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중복음은 성결교회가 ‘복음전도관’(단체)에서 ‘성결교회’(교단)로 설립되는 1920년대 초까지 성결교회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전통을 인정하는 성결교회 목회지라면 목회 현장에서 사중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강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지금의 교회에서 그것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며, 사중복음이 오늘에 맞게 표현이나 내용이나 선포하는 형식 등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적인, 정책적인 입장에서 사중복음연구소에 더욱 진한 애정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교단(총회, 임원회)의 이러한 태도가 글로벌사중복음연구소의 연구나 최인식 박사의 연구를 비판하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최인식 박사의 글은 글 자체로서 지적되고 비판되고 논의가 되어야 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그 논쟁은 최인식 박사의 글에 대한 구체적 비판이 되어야 하지 ‘글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진단이나 평가는 조심해야 합니다. 최인식 박사가 관련 내용에 대한 논쟁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왜 나오지 않느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닙니다. 아직 충분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이미 웨슬리신학과 사중복음의 관계성이 해명된 상황에서 성결교회 속에서 두 내용이 풍부하게 연구되고 확장되어지는 것이 우선이며, 그 이후 연관성 등은 다시한번 토론되고 논의될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장 박사의 문제제기에 선배학자로서 아직 나설 단계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장 박사의 입장만 있을 뿐 최인식 박사의 입장(이유)이 공개적으로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성급한 판단은 유보합니다. 개인적으로 학문적인 대화와 논의를 위해서 최인식 박사께서 가능한 범위(개인적으로 세미나 등과 같은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에서 대화에 참여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 최근 평신도대학원 강의에서 나온 한 도표에 대한 비판을 인정합니다. ‘성결교회 신학을 사중복음 신학’으로 표현하고 루터신학과 칼뱅신학, 오순절신학 등과 함께 적시하는 것은 성급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글이 교단의 장로를 대상으로 한 대중강연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성결교회의 신학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려는 것으로서 표현한 ‘국내용’(?)으로 보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학자로서, 그리고 지금 단계에서 그런 표현은 성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나, ‘사중복음 신학이 과연 그런 수준의 신학이 되고 있느냐’는 등의 비판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봅니다.

- 또한 웨슬리신학과 사중복음을 학교에서 분리해서 가르친다고 하는 말을 통해서 최인식 교수의 가르침 등이 이 둘이 분리된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는 내용을 유추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리는 학교에서 커리큘럼의 문제로 봅니다. 대학원 의무가 이뤄지면서 많은 학부의 교과목이 대학원으로 옮겨졌고, 학부의 교과목은 세분화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성서강독’이라는 과목이 ‘오경강독’, ‘예언서 강독’, ‘복음서 강독’ 등과 같은 내용으로 세분화되어 신설된 적이 있습니다. 성서를 보다 자세히 공부하자는 뜻도 있었고 대학원의무가 되니 교과목 연구가 안 되었기 때문에 급하게 커리큘럼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웨슬리신학은 신학대로 배워야 합니다. 사중복음도 사중복음대로 배워야 합니다. 둘 연관성에 대해 교수님들이 잘 가르쳐야 합니다. 둘 사이의 논쟁점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판단은 학생들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두 영역간의 논쟁은 세미나나 연구발표회 등을 통해 담보되어야 합니다. 물론 같이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 그런데 제가 느끼는 것은 두 교과목의 분리는 ‘신학적 의도’에 더 강조점이 있다기보다 하나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이 가르치기 위해, 웨슬리신학과 사중복음을 더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해 분리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웨슬리신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도 웨슬리신학의 내용에 대해 보다 자세히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까? 사중복음을 함께 가르치면서 웨슬리 당시의 신학적 내용, 사중복음으로 표출되기 전까지의 신학적 발전 등을 보다 잘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까? 또한 한, 두 강의를 할 때 웨슬리신학의 발전에 등장한 사중복음에 대해 가르치면 될 것입니다. 사중복음은 또한 사중복음의 태동과 성결교회의 강조점, 신학화 작업, 앞으로의 방향성 등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리와 정치적 의도를 유추하여 비판하기 전에, 분리하는 것은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렵다거나 통합으로 가르치는 것이 맞다는 등의 내용으로 지적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4. 결론적인 이야기

- 두서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현재 성결교회의 입장(제가 이해한 범위)에서 ‘성결교회는 웨슬리 전통’에 서 있습니다. 18세기 ‘웨슬리신학’이 19세기 미국에서 ‘성결운동’의 옷을 입고, 20세기 한국 땅에서 ‘성결교회에 의해’ 펼쳐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구호처럼, 상징처럼 든 깃발이 ‘사중복음’입니다. 전통적 신학의 틀에서 사중복음은 신학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최인식 교수도 알기에 ‘상황화 신학’ 등과 같은 어휘를 사용하며 ‘사중복음 신학’을 말하고자 합니다. ‘글로벌 신학’의 옷도 입히고 ‘초교파 신학’으로 포장도 합니다. 포장을 한국성결교회가, 한국교회가, 세계신학계가 받아들이면 그렇게 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웨슬레 신학을 벗어날 수도 있고,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엄청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요) 그런 작업을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박수 받아야 합니다.

- 또한 성결교회가 그런 부분은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도 논의해야 합니다. 웨슬리신학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은 창조적이다’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웨슬리 신학을 벗어났다’고 비판도 해야 합니다. 특히 ‘웨슬리신학의 성결교회적 전통’을 벗어난 부분이 있다면 좀 더 비판이 가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웨슬리 전통에 섰다’는 말이 ‘웨슬리의 신학’이나 ‘웨슬리파의 신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감리교회의 신학’ 등과도 다릅니다. 초기 성결교회는 분명히 불분명했지만 ‘초시대 감리교회’란 표현을 통해 잘못된 모습을 보이는 ‘미국 감리교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웨슬리의 회복’(사실 신학보다는 성령세례와 복음전도 등의 열정)을 주장했습니다. 성결교회 입장에서 지금의 감리교회가 그 때의 모습도 있고, 아니면 그 시대 성결운동 지도자들이 감리교회의 모습을 잘못 평가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신학적인 논의를 통해서 먼 미래에 미국의 만국성결교회에서 태동했던 필그림성결교회가 웨슬리안교회와 통합한 것처럼 한국도 감리교회와 웨슬리안교회로 통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래는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성결교회를 위해 다양한 신학적 논의가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성결교회 속에서 웨슬리신학의 발전을 보고 싶습니다. 사중복음의 신학화도 보고 싶습니다. 서울신대 사중복음연구소와 웨슬리신학연구소 연구진들, 교수님들, 학문을 하는 박사님들의 열정적인 연구와 논의를 기대합니다. 때론 우려섞인 논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의 방향에서 보다 학문적인 연구성과가 더욱 풍부하게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성결교단도 서울신대의 학문적 방향성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과격한 주장을 할지라도 그것은 이사회 까지만 다뤄질 문제이고 성결교회 신학과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서울신대는 독립적으로 갈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소통을 통해 교단이 필요로 하는 목회자 및 지도자 양성에 대해 의견을 전달하고, 협의를 통해(물론 서울신대는 지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겠지만) 방향성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 저는 친구로서, 그리고 서울신대, 성결교회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는 한 명의 성결교인으로서 장기영 박사의 문제제기를 인정합니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의견 개진을 기대합니다. 다만 제가 제일 먼저 말했던 것처럼 ‘부드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의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도 부드러운 논쟁, 아울러 비판이나 비난보다는 토론을 위한 방향에서 제언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