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에 대한 평가와 제언
-옆집(장로교회)에서 건너다 본 시각으로-
김종렬 목사 |
경상북도 의성 출생, 대구계성중고등학교 졸업, 계명대학교 영문학과 졸업(B.A), 장로회 신학대학 신학과 졸업(B.D),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Th. M), 하이델베르그대학 신학부 박사과정(Doktorand), 계명대학교 명예신학박사(D.D), 대구계성·서울신일중고등학교 교목, 새문안·연동교회 부목사, 독일파송선교사 및 독일남부지방한인교회 담임목사, 서교동·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목회교육연구원 원장(현)
시작하는 말
[새 천년 맞이 성결교회 포럼]에서 '성결교회에 대한 평가와 제언'이란 주제로 발제해 달라는 주최측의 부탁을 받았을 때, 발제자는 이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거절하였다. 거절한 이유는 발제자가 교회사가도 아니고, 더욱이 성결교회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 문외한으로서 성결교회를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에 교회일치와 연합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경험을 통해서, 성결교회를 옆에서 보고 느낀 점을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해 달라는 재차의 부탁에 못 이겨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발제자는 이 발제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의 일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그 동안 '성결인'들과의 만남을 꼼꼼히 회상하는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성결교회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성결교회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의 일은 모두 저를 무척 기쁘게 하였다. 따라서 이 발제에서 먼저 '성결인들과의 만남과 기쁨'에 대하여 언급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한국성결교회사}를 위시한 몇 권의 자료들을 살펴본 느낌을 피력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성결교회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단지 '옆집(장로교회)에서 건너다 본 성결교회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천년을 맞이하는 성결교회에 대한 제언'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제안은 특별히 성결교회에 국한된 제안이 아니라, 발제자가 평소에 한국교회에 대하여 늘 생각하고 있던 일반적인 소견을 피력하려고 한다.
1. '성결인'들과의 만남과 기쁨!
최근에 알게된 일이지만, 한국성결교회를 창립하고, 성결교회신학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사중교리](四重敎理)를 저술한 김상준(金相濬) 목사께서 저의 일가(義城金家)인 종친이란 사실이 저에게는 놀라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특히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이 넘도록 한국교계에서 많은 '성결인'들을 만나 사귐을 가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저의 소년시절은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별나게 신앙생활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것은 그 당시 신앙생활을 '열심히' 그리고 '뜨겁게' 한다는 어른들이 하는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 산상금식집회, 부흥집회 등에 열심히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앙생활은 학생신분으로는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이 때에 부흥사로 널리 알려진 김응조 목사와 이성봉 목사님의 집회에 열심히 쫓아 다녔던 것이다. 이 두분 목사님들이 제가 처음 만난 '성결인'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성결인'들과의 첫 만남이 귀하고 좋았다.
그 후 제가 부목사로 섬겼던 연동교회의 담임목사 김형태 목사께서 성결교신학교의 출신이며, 여전도사로서 김화자 전도사(여교역자 안식관 관장)가 역시 성결교신학교 출신이었다. 이렇게 목회 현장에서 성결교신학교 출신들과 함께 동역하게 된 것이, 지금 생각하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목회자운동을 통해서 많은 '성결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70년대 초에 카톨릭교회와 함께 13개교단이 모여 '한국기독교신풍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최건호 목사, 故황예식 목사, 백천기 목사, 백수복 목사 등이 함께 활동했으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은 겁없이 군사정권의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금식기도회를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와 서울복음교회에서 가졌던 일이다. 그 때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이 지금은 각 교단에서 지도력을 행사하며 한국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또한 목회자운동으로서 지난 해 1998년 11월 26일에 창립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통해서 만난 故김효겸 목사, 신화석 목사, 김운태 목사, 이정익 목사, 여성삼 목사, 김원교 목사 등 '성결인'들과 함께 13개교단 목회자들이 일치(Unity), 갱신(Renewal), 섬김(Diakonia)으로, 희망의 새 천년을 향하여 힘찬 출발을 한 것은 감동적인 일이며, 금년 1999년 9월 9일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고 죄책고백문을 발표하였는데, 이 죄책고백문을 초안한 7인위원으로 저와 최인식 교수가 함께 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게 될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독일 선교사로서 파송받은 제가 독일남부지방 전역을 돌보는 교포 목회자로서 사역을 하는 중에 많은 성결교인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특히 선교활동을 마치고 하이델베르그 신학부에서 연구생활을 하는 동안에 김희성 교수(Heidelberg에서 박사학위를 받음)와 이신건 박사(Tübingen에서 박사학위를 받음)를 만났으며, 귀국 후에 Tübingen출신의 유석성, Berlin출신의 최인식 교수, Bochum출신의 지형은 박사, Bonn 출신의 정인교 교수 등, 이들 귀한 신학자들과의 만남은 얼마나 귀하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한국교회가 이들 '성결인 신학자'들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나 크다. 이들 신학자들은 성결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신학계와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하이델베르그 신학부(Doktorand로서)에서 보렌(R. Bohren)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실천신학을 공부한 저는 귀국 후 1988년부터 지금까지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강단]을 펴내고 있는데, 창간편집인으로 최건호 목사가 함께 참여하였으며, 그 동안 최건호 목사를 위시해서 백천기 목사, 이정익 목사 등이 집필자로 참여하였다. 특히 이번 [2000예배와 강단]은 30개 신학대학 교수 55명과 15개 교단 58명의 목회자들이 집필자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성결인' 성서신학자로서 윤철원 교수, 김연태 교수, 채홍식 교수와 목회자로서 최건호 목사, 이정익 목사, 김운태 목사, 이완택 목사, 신화석 목사, 여성삼 목사, 김원교 목사 등이 집필자로 참여하였다. 앞으로[예배와 강단]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실천신학을 전공한 정인교 교수의 도움을 받아 더욱 훌륭한 [예배와 강단]을 함께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정인교 교수와의 만남은 최근의 일이지만,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지난 1994년부터 제가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재임 시에는 70년대부터 교분이 있었던 강근환, 최희범 前서울신대 총장들과 더욱 가까이서 만날 수 있어서 기뻤으며,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동문회 회장을 맡으면서 부회장으로 김소엽 권사(신촌성결교회 권사, 호서대 교수)와 총무 일을 맡아 수고한 지형은 박사(서초교회 담임목사)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었고, 큰 기쁨이었다. '성결인'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분은 정진경 목사이다. 정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원로지도자이며, 여러 연합모임과 세미나 등에서 자주 만난 분이며 늘 존경해온 분이다.
이토록 성결인들과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며 기뻐한다. 이 같은 성결인들과의 만남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이며, 한국교회 일치와 갱신을 위한 더욱 귀한 만남이 될 것을 확신하며, 우리들 모두를 기쁘게 할 것이라 믿는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2. 옆집(장로교회)에서 건너다 본 성결교회의 모습(평가)
'시작하는 말'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한국성결교회사]를 비롯해서 성결교회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성결교회를 살펴보는 일은 저를 무척 기쁘게 했다. 사실 그 동안 이웃이며 형제교단인 성결교회에 대하여 별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지나쳐 왔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성결교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비록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이웃집을 옆집에서 건너다보면서 살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고, 기쁜 일이었다. 이 기쁨은 광부가 광산에서 광맥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나, 또한 채굴하는 과정에서 '노다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성결교회에 대한 소중한 것을,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다.
한국성결교회사는 크게 네 시기(시대)로 나눈다.
Ⅰ. 한국성결교회를 태동시킨 동양선교회,
Ⅱ.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시대(1907-1921),
Ⅲ.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 시대(1921-1943),
Ⅳ.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시대(1945-현재)
이 같은 한국성결교회사를 일독하면서 발견한 소중한 것 ―비록 옆집에서 건너다 보는 자의 눈에 비친 성결교회의 모습이긴 하지만―을 밝혀 보려고 한다.
첫째로, 한국성결교회는 너무나 '에큐메니칼적'인 배경을 가진 교단이다.
한국성결교회는 일본의 '동양선교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동양선교회는 미국의 '만국성결연합'과 미국교회의 '성결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것은 또한 요한 웨슬레의 부흥운동에까지 소급된다.
일본의 '동양선교회'는 미국의 '만국성결연합'의 최초의 목사와 선교사로 안수를 받은(1901년 1월) 카우만(Charles E. Cawman)과 1902년에 목사 안수를 받은 길브론(Ernest A. Kilbourne)에 의해 창립되었다. 동양선교회의 설립 목적은 교회조직이 아닌, 동양의 모든 나라에 '순복음'을 전하는 데 있었다. 또 다른 교파의 교회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로부터 비롯된 거룩한 공교회의 전통과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이어 받고, 또한 요한 웨슬러의 부흥운동과 만국성결교회의 '성결신학'을 계승하여 세워졌다. 따라서 동양선교회가 주창한 교리와 신앙은 복음주의적이며, 영국과 미국에서 불길같이 일어난 '성결운동'의 흐름 속에서 나왔으며, 특히 요한 웨슬레의 부흥운동에 큰 영향을 받았던 미국의 성결운동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영국성공회(Englienan Church)의 출신으로 1728년에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그의 동생 찰스(Charles Wesley)와 함께 '성신클럽'(Holy club)의 지도자가 되고, 'Methodist'라는 별명을 갖게 되면서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미국 선교사로 가는 항해 도중에서 '모라비안 형제단'들과 만나게 되면서부터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미국에 도착하여 모라비안 감독을 만나서 큰 영적 교훈을 받게 되었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한 모라비안 교인을 만나 철저한 신앙과 참된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 가서 모라비안들이 집단으로 거주할 수 있는 헤른후트(Herrnhut) 지역을 희사한 독일경건주의자인 진젠돌프(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웨슬레는 보헤미안의 종교개혁자 죤 후스(John Huss)의 후예들인 모라비안(Moravian)들과 관계하면서 ―물론 나중에 모라비안들과 결별하게 되지만― 그들의 경건주의의 각성운동과 십자가 신학, 그리고 해외 선교의 열정에 큰 감화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웨슬레는 루터(M. Luther)의 로마서 주석을 읽으면서 마음에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으며, 또한 그는 휫필트(G. Whitefield)의 칼빈주의적 감리교운동과도 연대하였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웨슬레의 성결 개념을 로마 카톨릭교회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 이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유산을 이어 받고 있다.
이토록 영국의 성공회와 종교개혁자 후스의 후예 모라비안들과 칼빈주의자 휫필트와도 깊은 관계를 하였으며, 루터의 감화를 받았고, 심지어는 카톨릭 교회와도 관계가 있는 요한 웨슬레는 '에큐메니칼적'인 신앙과 신학의 유산을 이어 받은 자라 하겠다. 따라서 요한 웨슬레의 부흥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은 미국의 만국성결교회, 그리고 만국성결교회의 '성결신학'을 계승한 일본의 동양선교회, 이 동양선교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한국성결교회는 너무나 '에큐메니칼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교단이라 하겠다.
이 같은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성결교회는 한국교회의 초기연합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에 '한국기독교연합공의회'를 조직하여 함께 참여하였으며, 1946년 9월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그리고 각 선교단체가 가담하여 '조선기독교연합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의 전신)조직하였으며, 1948년 암스텔담 WCC 제1차 총회에 참석함으로 WCC 의 정식회원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WCC(세계교회협의회)와 NAE(복음동지회)가 갈라지게 되고, 성결교회가 1955년 총회에서 NAE에 교단적으로 가입하게 됨으로 NCC와 결별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둘째로, 한국성결교회는 1907년, 한국교회의 대부흥운동과 함께 한국인의 주도 하에서 설립된 교단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인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아펜셀레(H. G. Apenzeller)가 한날 한시에 제물포 부두에 첫발을 디딤으로 한국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후 22년이 지난 1907년에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부흥운동의 불길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바로 이 때(1907)에 한국성결교회가 사중복음(四重福音)―중생, 성결, 신유, 재림― 을 듣고 부흥의 불길 속에 뛰어든 것이 한국개신교회의 3대 교회 중에 하나인 성결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1907년 3월에 '도쿄 성서학원'을 졸업한 정빈과 김상준은, 그 해 5월 2일에 일본의 동양선교회의 소속인 카우만과 길보른과 함께 귀국하여 서울의 중심지인 종로1가에 '동양선교회 예수교복음전도관'(Oriental Missionary Society Jesus Doctrine Mission Hall)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경성복음전도관'이다. 이 전도관을 통해서 정빈과 김상준 두 전도인은 '직접 전도'로서 노방전도를 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전도는 종로 한복판에서 불을 토하는 듯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젊은 전도자의 외치는 소리에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으며,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며, 날로 구원받은 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 같은 정빈과 김상준의 뜨거운 전도열에 의해 성결교회의 확장이 주도되었기 때문에, 성결교회사가에 의하면 한국성결교회는 주로 북미의 선교사에 의해 주도되어 선교의 장을 열었던 장로교와 감리교와는 달리 한국성결교회의 시작은 ―물론 동양선교회의 창립자들인 카우만과 길브론과 더불어 한국전도인 정빈과 김상준의 공동협력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 주도한 전도 사역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장로교와 감리교와는 차별화된 것으로 한국성결교회의 자랑스러운 일이다.
셋째로, 한국성결교회는 자급(Self-Supporting), 자치(Self-Governing), 자전(Self-Propagating)의 선교정책을 바탕으로 하여 '전도관'을 통한 '직접전도'와 '성서학원'을 통한 '자국민교역자 양성'- 특히 여교역자 양성에 주력-, 그리고 '문서선교'에 역점을 둔 교단이다.
한국인에 의해 주도된 성결교회의 초창기 전도전략은 (1) 불신자들에서 순복음, 곧 사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전하는 직접전도 (2) 자국민 전도자 양성 (3) 신자의 성결화 (4) 마을전도 : 노방 및 마을순회 전도여행(장막 전도대), 옥외집회 (5) 축호전도와 전도지 배포 (6) 구도자 심방 (7) 성경공부 (8) 특별기도회 (9) 여교역자 양성에 주력 (10) 교역자 수양회 (11) 신유능력전도 (12) 주일학교설립과 어린이 전도 (13) 연고자(친척) 전도 (14) 무산층 전도 (15) 희생적 헌신 (16) 구원에 관한 성결 소책자 보급(문서선교) 등이었다.
이 같은 선교전략에서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하나는 '전도관'을 통한 '직접전도'이다. 성결교회는 시작부터 '경성복음전도관'(1907년 설립)을 위시해서 여러 곳에 세워진 '전도관'을 통한 '직접전도'를 한 것이다. 이것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학교와 병원을 통한 '간접전도'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성서학원'을 통한 '자국민 교역자 양성'이며, 특히 여교역자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들 여교역자들의 활약은 다른 교단에 비해 탁월하였으며, 성결에 대한 열심, 불타는 전도열,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 이 삼박자를 갖춘 이들 여교역자들의 사역은 대단하였다. 이토록 남녀 교역자를 많이 양성한 '경성성서학원'은 날로 발전하여 오늘의 훌륭한 '서울신학대학교'의 초석이 된 것이다. 세 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문서선교'이다. 당시의 한국교회의 문서선교 운동은 미약했지만, 성결교회는 문서운동에 일찍 눈을 떠서 총회산하에 출판부를 두고 각종 기독교서적을 출판 보급하여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교계에 크게 공헌하였다. 문서선교에 힘쓴 이는 김상준, 이장하, 이명직 둥이다. 김상준은 성결교회가 창립되던 해(1907) 전도지 3000여장을 만들어 전도용으로 사용하였으며, 기독교창문사의 주간과 감사를 맡아 일했으며, 1921년에 [사중교리]를 저술 출판하였다. 이장하는 1907년에 [관쥬신약젼서]를 번역출판하였으며 1910년에는 [부표관쥬신약젼서]가 발행되었다. 또한 1907년에 이장하가 [복음가]를, 1917년에는 [곡조복음가]를 엮어냈으며, 이것을 1919년에는 [신증곡조복음가]로 증보개정하였으며, 1930년부터 [부흥성가]로 사용된 이 책은 성결교회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했으며, 11판을 끝으로 1941년에 폐간되었다. 이명직은 성결교단의 기관지인 [활천]창간(1921년 11월 25일)에 참여하였으며, 활천에 많은 글을 기고하였고, 1929년에는 [조선야소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약사]를 저술하였다. [활천]지는 지금까지 성결교단의 신학발전과 문서선교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1934년에 부인회 전국연합회가 창립된 후 기관지로 [기쁜소식]이 창간되었으며, 1935년 4월에 [주교지남]이 창간되어 주일학교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성결교회는 초창기부터 문서선교에 힘을 기울였다.
넷째로, 성결교회는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일제에 항거하여 순교의 피를 흘려 가시밭에 백합화를 피게 한 '민족교회'로서 자리매김을 한 교단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 하에서 암울한 시기에 처해 있을 때, 성결교회는 민족교회의 면목을 보여준 교회로서 일제에 대한 항쟁과 독립운동에, 성결교회의 선구자의 한 사람인 김상준을 비롯하여 강시영, 김응조, 김기삼, 백신영, 천세붕, 윤관석 등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신사참배'라는 명목의 강제적인 우상숭배로 신앙의 골격이 무너지는 위기에 직면한 성결교회는 순교를 각오하고 저항함으로 더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고, 많은 성도와 교역자들이 투옥되었으며, 순교의 피를 흘렸다. '재림'을 강조하는 성결교회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박해는 더욱 심했다. 물론 일부 교회지도자들은 신사참배에 참여하는 비굴함도 있었지만, 성결교회의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과 성서적 창조론과 신론의 투철한 신앙을 가진 '성결인'들은 끝까지 저항하였다. 이로 인하여 1943년 5월 24일에 교역자, 장로, 집사 등 300여명이 검거되고, 성결교회는 1943년 12월 29일에 강제 해산당하고 말았다.
다섯째, 1911년 3월에 설립된 '경성성서학원'이 날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서울신학대학교'는 한국신학계에 우뚝선 목회자와 신학자 및 크리스챤 인재 양성의 전당이 되고 있다.
서울신학대학은 1911년 3월 '경성성서학원'으로 설립된 뒤, 1940년에 전문학교령에 의거 '경성신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43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다가 1945년 교단의 재건과 함께 다시 문을 연 후, 자립을 위해 힘쓰던 중 6·25를 겪었으나, 피난지인 부산에서 '피난신학교'로 그 맥을 이어왔으며, 1954년 2월 총회와 함께 환도 후 본격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
1959년 서울신학교가 200명 정원의 '서울신학대학'으로 문교부 인가를 받았으나 1961년 군사정부의 대학설치
기준령에 의해 대학을 정비하면서 서울신학대학의 인가를 취소하고 각종학교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1964년에 다시 대학인가를 받았으며, 1992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서울신학대학교'로 개칭하고, 초대 총장에 강근환 교수가 취임하여 종합대학의 규모로 크게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신학대학교는 최근에 구미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돌아온 우수한 젊은 신학자들을 대거 등용시킴으로써 신학발전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독일에서 신학수업을 하고 돌아온 신학자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3. 새 천년을 맞이하는 성결교회에 대한 제언: 새로운 방향제시로서 미래교회의 패러다임
서언에서 이미 언급한 바대로 이 제안은 성결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발제자가 평소에 늘 생각하고 있던 한국교회의 미래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것이다.
현재의 한국교회가 새 천년의 도전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새 천년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교회 자체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고, 따라서 새 천년의 거센 물결을 헤쳐나갈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교회의 위기와 무기력은 실천신학이 해야할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직무유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실천신학의 직무유기란,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교회일치와 교회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 하겠으며, 또한 '하나님이 아름답게 되도록' 해야 할 실천신학이, 그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특별히 실천신학이 해야하는 과제 중에 중요한 것이 '교회의 행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일'인데, 한국교회의 실천신학이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보렌은 이같은 실천신학의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천신학은 늘 미래를 제시해 주는 성령과 함께 미래를 꿰뚫어 보며, 교회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교회의 현상분석에만 만족하지 말고 교회의 프락시스를 이론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과 함께 교회의 행동계획을 펼쳐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는 항상 '계획적'이어야 한다. 교회활동에 있어서 '계획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증거이며, 그런 것은 결국 공허한 활동계획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성령과 함께 교회행위를 계획하여 하나님의 미래 - 우리에게는 불확실한 미래 - 속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 같은 실천신학이 하는 일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발제자는 실천신학의 가르침을 따라 성령과 함께 미래를 꿰뚫어 보며, 한국교회 미래의 목회 패러다임이 어떤 방향으로 전환이 되어야 하는지를, 그 방향을 제시해 보려는 것이다.
첫째로, 미래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은 '맘모스 교회 지향적인 것에서 작은 교회 지향적인 목회'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큰 교회를 지향하는, 소위 '맘모스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를 해 왔다. 우리 모두는, 교회의 규모가 크든지 작든지 간에 한결같이 성장제일주의의 의식구조의 사로 잡혀 '맘모스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제일주의로 일관해 왔으며, 이것은 바로 그 옛날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예루살렘 성전과 마르틴 루터가 개혁해야 했던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은 교회를 지향하여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여기서 예루살렘 성전과 중세의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이 성전화와 교회 왕국화를 향해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계속 그 같은 교회성장을 지향하고 맘모스 교회를 추구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될 것이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고, 어쩌면 그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는 더 이상 맘모스 교회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 지향적인 목회를 해야할 때이다.
'작은 교회'란 물론 교회의 규모가 작은 교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교회'란 몸집이 큰 '비대'가 아닌 건강한 '성숙'을 의미하며, '참다운 교회'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한 모형으로서 광야의 '성막 공동체'(tabernacle community)와 하나님 편에 남아서 영적으로 살려고 하는 소수의 무리 '남은 자'(Remnant), 신약에 나타난 '예수제자 공동체'와 사도시대의 교회로서 '사도행전적 초대교회 공동체', 마르틴 루터의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와 요한 칼빈의 '선택된 자의 모임'(coetus electorum)으로서 교회론, 독일 경건주의의 아버지 필립 스페너의 '경건한 자의 모임'(collegia pietatis)으로서 '교회 속의 작은 교회'(eccelesiolae in ecclesia)와 독일의 위대한 목회자 아들 불룸하르트의 '작은 무리'(Die kleine Herde)와 같은 것이라 하겠으며, 오늘날 남미 브라질의 '바닥 공동체'(basic community)와 중국의 '가정교회'(home church)와 같은 것이 작은 교회의 모형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와 같은 대형교회가 제자훈련을 통한 순조직의 다락방을 통한 목회는 바로 생명력있는 작은 교회 운동의 한 모델이 된다고 하겠다. 앞으로 이 같은 생명력 있는 작은 교회 운동이 더욱 활발해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교회운동'도 교회 성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로, 미래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은 '개교회 집단이기주의에서 교회연합과 일치를 지향하는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
교회성장주의는 상호견제와 경쟁을 하는 개교회 집단이기주의와 폐쇄주의를 가져왔고, 이것은 또한 교파주의와 교회분열을 더욱 조장시켰으며, 교회연합과 일치의 장애요소가 되었다. 이 같은 한국교회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의 빈축거리가 되었으며, 따라서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교회로 역사의 뒷전에 밀려나고 만 것이다.
보렌은 교회의 분열은 교회행위를 무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하면서, 특히 실천신학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 신학'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성령론적 사고'는 바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사고이다. 김이곤 교수는 한국신학연구소 제25주년 기념강연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와 신학하기'에서 '구원·해방지향적인' 역사신학으로부터 '관용·화해 지향적인' 창조신학(생명신학)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실천신학에서도 적용되는 목회 패러다임 전환의 한 모형이 된다고 하겠다. 이토록 21세기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해와 일치로 가는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일치와 연합 지향적인 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으로서 친교(Koinonia)의 일환이다. '코이노니아'는 신학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아름다운 생명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하며, 칼빈의 '그리스도 통치설'(Königsherrschaft Christi Lehre)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바로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 운동이다. 지난 WCC 제5차 세계대회의 주제가 '신앙과 생활과 증언에서 코이노니아를 지향하여'(Toward Koinonia in Faith, Life and Witness)라는 것이었고, 소주제가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2)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 삶을 살고, (3) 새로운 세계를 위한 공동증거의 소명,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코이노니아를 증진시켜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회는 편협하고, 근본주의적이고, 배타적이고 폐쇄주의적이어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역하고,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지 못하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갈라놓고, 개교회 이기주의와 교단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우리들의 죄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은 코이노니아 -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 인간(이웃)과의 코이노니아, 자연과의 코이노니아 - 를 파괴시킨 죄악을 고백하고, 개교회 집단이기주의와 개교회 확장을 지양하고 이웃과 지역사회를 섬기며 그들과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되게 하고, 교회분열과 분파주의, 교파주의를 극복하여 교회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며, 특히 지방화 시대에 지역별로 교파를 초월하는 연합교회를 추구하는 일과, 나아가 민족통일과 인류의 평화, 샬롬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교회는 개교회 집단이기주의와 교파주의를 극복하고, 교회연합과 일치를 지향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
셋째로, 미래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은 '교역자 중심의 목회에서 평신도 중심의 목회'에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한국교회의 성장은 목회자 한 사람의 지도력에 많이 좌우되었다. 즉 한 사람의 목회관과 지도력이 교회의 모든 목회를 좌지우지하였다. 이 같은 목회 구조 속에서 평신도는 단지 목회자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종속적 관계에서 단지 협력자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에서는 그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대형교회는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가진 목회자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미래를 전망하는 자들에 의하면, 앞으로의 새로운 세기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의 역할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한다. 하워드와 스나이더의 공동저작인「21세기 교회의 전망」이란 책에서 앞으로의 목회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함께 사역하는 공동의 목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성희 목사는 그의 책 「미래사회와 미래교회」에서 미래교회는 '평신도 사역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미래교회는 대중적 카리스마적 목회가 아니라 소그룹을 통한 평신도 중심의 목회라고 하며, 미래교회의 교회관인 '메타교회'(meta church)를 소그룹을 통한 목회활동으로 규정하고, 교회성장학에서 말하는 '메가교회'(mega church)와 구별한다. 이 같은 평신도 중심의 목회는 신학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의 '만인 제사장설'과 '카리스마 공동체'로서 교회론을 그 배경으로 한다.
넷째로, 미래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은 '기독론적 사고에서 성령론적 사고'에로 전환이 있어야 한다.
보렌은 '기독론적 사고'와 '성령론적 사고'를 구별한다. 기독론적 사고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나와의 개인 영혼구원을 강조하는 수직적인 사고라는 것이고, 성령론적 사고는 어느 한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인류와 모든 피조물의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지평 안에서 사고하는, 즉 수평적인 사고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물리학과 자연과학 및 기술이 우리의 문화를 지배하게 된 것은 기독론적 사고가 하나님과 영혼만을 생각하느라고 그 밖의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였던 소치의 부산물이라고 한다. 이것은 신학이 일반학문을 견제하며 비판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학문이 '세속화'된 것이라고 한다. 이 세속화는 편협한 기독론에서 비롯된 불행한 결과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결핍을 입증하는 한 증거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렌은 이제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새로운 차원', 곧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인식의 새로운 차원, 인식의 전환은 바로 '성령론적 사고'를 말한다. 우리가 성령론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앞으로 새로운 모습 - 다른 위로자(요14:16f) - 으로 도래하실 그 분을 인식하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 세가지 방향이다. 성령론적 사고는 첫째로, 이 시대의 표징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사고(Die Zeichen der Zeit-gerichtetes Denken)이며, 둘째로, 우리로 하여금 고난의 길로 가게하고, 이웃의 비참함 때문에 고뇌케 하며,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하는 '고뇌하는 사고'(Leidendes Denken)이며, 셋째는 우리로 하여금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은사(능력)와 장점을 높여 기리는 '찬양하는 사고'(Lobendes Denken)이다. 특히 찬양하는 사고는 다음과 같다.
성령론적 사고는 상대방을 찬양하는 사고이다. 찬양하는 사고는 홀로 있기를 원치 않고 공동의 연대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찬양은 제각기 부르지 않고 함께 합심하여 부른다. 성령론적 사고는 상대방을 판단할 때 차별을 두지 않으며, 성령론적 사고는 자기 자신을 절대 위치에 두지 않는다. 성령론적 사고는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를 추구한다. 성령론적 사고는 공동체의 일치단결을 추구하며, 성령론적 사고는 자기를 낮추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주하는 교향악에서 서로서로 협력하여 화음을 이루려 한다. 그러므로 성령론적 사고는 그 본질에 있어서 교향악적이고 합창적이다.
다섯째로, 미래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은 '제도적교회 지향적인 목회에서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 공동체 지향적인 목회'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서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결국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은준관 교수는 최근에 「신학적 교회론」,「실천적 교회론」을 펴냈다. 그는 지금 한국교회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인식하고, 이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신학적 교회론」에서 '하나님 백성 공동체'(Laos Tou Theou)로서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신학적으로 추구하고 있으며,「실천적 교회론」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존재 양식과 실천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신학적으로 추구하는 해석의 틀을 '제3형식'(Third Mode of Interpretation)이라고 하며, 이 '제3형식'이 그의 두 권의 책을 꿰뚫고 있는 해석의 틀이라고 한다.
'제1형식'은 제도주의적 패러다임(institutional Paradigm) - 하나님의 계시성을 간과하는 한계를 가진 - 패러다임이고, '제2형식'은 영적, 신앙적 패러다임(Spiritual Faith Paradigm) - 역사로부터 단절의 한계가 있는 - 이라고 한다. 이 둘은 상호갈등 관계에 있으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3의 형식'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Basileia Tou Theou)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통치(지배)가 실현되는 역사를 '하나님의 장(場)'으로 수용하는 '변혁론적 패러다임'(transformative Paradigm)이라고 한다. 즉 제3형식은 '하나님의 나라'의 지평에서 제1의 형식인 제도성과 제2의 형식인 영성을 수용하며 동시에 그것을 변혁시키는 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제3형식에서 말하는 교회론을 '역사·종말론적 교회'이라고 하며, 교회를 '역사·종말론적 하나님백성 공동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발제자는 은준관 교수의 '제3의 형식'을 받아들이되, 은 교수의 '역사·종말론적 하나님 백성 공동체'에서 '역사'라는 말을 빼어버리고, 이 땅의 교회를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 공동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은 교수가 말하는 '역사'라는 말 대신에 발제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이 땅에 그 나라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서두르며' 애쓰는"이라는 말로서 종말론의 '역사성'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발제자의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 공동체'라는 표현이 은 교수의 '역사·종말론적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라는 표현과는 비록 다르다고 하더라도, 의미상으로는 결코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사실 이 땅의 교회는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 공동체'이며,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 같은 교회가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에 의해서 제도화되면서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이 "제도적 교회에서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 공동체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은 본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며,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 땅의 교회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날마다 기도하며 '서두르는'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 공동체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끝맺는 말
지금 우리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맞이하는 문턱에 서 있다. 며칠 후면 우리는 새 천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교회가 변하지 않고는 새 천년을 맞이할 수 없다는 전제로, 앞장에서 '새 천년을 맞이하고 성결교회에 대한 제언'으로서 '미래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 동안 성결교회는 귀한 신앙의 유산인 '순복음', 곧 '사중교리'(四重敎理) - 중생(구원), 성결, 신유, 재림 - 를 이어 받은 '복음주의적'인 교회의 전통 위에 서있다. 그러나 '사중교리'는 더 이상 교조주의에 메여 있는 것이 아니라 '新사중교리'로서 신학적인 새로운 해석을 하여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살아 있는 '순복음'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화두는 인간과 함께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사중교리'가 가지고 있는 핵심은 인간을 거듭나게 하고(중생), 거룩케(성결) 하고, 건강케(치유) 하여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이며,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임재(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사중교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신학작업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더욱 새롭게 하고 온전케 하는 데 크게 공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1. 이명직 저 [조선야소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약사], 경성, 성결교회이사회, 1929
2. [간추린 한국성결교회사] 기성역사편판위원회 편, 기성출판부 1964
3. 신덕교회창립70주년기념[성결교회관련학술논문집], 서울, 신덕성결교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