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종교인의 사회참여
Ⅰ 들어가는 말
종교인의 사회참여 문제는 이미 1950년대 교계에서 거론된 issue였다. 고로 요즈음에 와서 다시 이런 지나간 문제를 놓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종교인의 사회참여 문제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적 변천을 따라 두고두고 반복될 문제이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YH무역 여공사건, 가톨릭농민회 사건, 그것으로 인해서 빚어진 정치사회의 경색 상태 그리고 도시산업선교회의 사회참여,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하여 정계가 발표한 실태조사 보고서 등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계제에 종교인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종교인들은 때때로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에 분규가 일어날 때, 여당과 야당 사이에 정치적인 대립이 생겼을 때, 또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종교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누구의 편이 될 것인가 하고 망설일 때가 많다.
Ⅱ. 한국교회는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 해방될 때까지 퍽 배타적이고 비사회적인 경건주의적 신학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기독교의 교리적 신앙 즉 실존적인 차원만 강조해 왔다.
그 결과로 현실에 대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아주 잊어버린 지대처럼 극히 등한시하였다. 개인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헌신적이었으나 정치니 경제니 교육이니 예술이니 노동이니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방인의 지대처럼 무관심하였다.
이런 결과로 생겨난 한국교회의 역사의식은 “내세(來世)” 또는 “영적(靈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내세니 영적이니 하는 말 속에는 두 가지 뉘앙스가 들어있다. 하나는 현실을 악하다고 규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나 그 악을 시정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현실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하는 태도다.
이런 역사의식 때문에 교회는 현실을 망각한 채 교회의 자기 농성, 지기도피, 건물 안에서의 궁색스런 활동을 기독교의 전부처럼 여겨왔다.
Ⅲ. 그러다가 해방과 함께 나라가 독립되어 우리의 손으로 문화를 창조하고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기독교는 내세와 영적인 것만 강조해온 과거 반세기의 선교활동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기독교의 현실참여란 말이 강하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 때에 현실참여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신학자나 교회 지도자들은 양적이고 형식적인 기독교 보다는 질적이고 내적인 기독교를 강조하면서 주일을 성수한다든가, 경건한 영적생활 등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다만 이웃을 위하는 사회참여만이 기독교의 전부처럼 주장하고 나섰다. 요사이 노란의 대상이 된 도시산업선교나 종교인의 사회참여 문제도 이렇게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진보적인 신학운동의 소산이라고 본다.
진보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교리인 구원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본받아 철저하게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교회의 사회참여를 적극 주장하고 나서게 되었다.
이런 진보적인 신학사상 중에서도 특히 최근에 종교인의 사회참여에 보다 강한 영향을 준 신학은 급진적인 해방신학이다.
해방신학의 발상지는 남미지역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서구의 식민통치 밑에서 굳어진 의식구조, 정치적 혼란, 인간의 경시 등으로 억압된 상황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다.
이런 때에 남미의 현실을 예리하게 본 신학자들의 구체적인 상황인식에서 태동한 것이 이른바 해방신학이다. 이 해방신학은 서구 여러 나라에서 전달된 기독교는 이런 식민정책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한 타민족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남미 지역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을 한 후에도 기독교는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의 대주주들의 횡포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여전히 형이상학적인 영적세계의 문제만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천의 책임 있는 행동이 무엇이며, 이런 환경에서 신학자는 어디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가? 지배자의 편인가? 아니면 억눌린 민중의 편인가? 이런 심각한 물음에 대하여 해방의 신학은 피지배계급의 신학이라고 단정하고, 고난 받는 민중의 편에 서지 못하는 신학을 생명력 없는 죽은 신학이라고 주장했다.
해방신학의 중요 내용은 예수를 해방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면서 인간 즉 신성과 인성 양성의 소유자로 기독론을 설명해왔으나 해방신학은 예수를 전적으로 인간 해방의 대표자로 추대하고 있다. 가난하고, 병들고, 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것이 그의 탄생, 삶, 죽음의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예수의 인성만을 강조함으로써 해방자 예수는 소외된 인간을 구출하는 기수라고 주장했다.
해방신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억눌린 자들의 사회에 정열적으로 참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 해방신학이라는 용어는 지난 2000년의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억눌린 민중의 언어라는데 그 특색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눌린 자들을 해방시키는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는 것은 이웃에게 회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로 회개는 전통적인 기독교가 말하는 개인적인 잘못을 하나님 잎에 통회하는 행위라기보다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인간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참다운 회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화라고 보며, 구조 악을 제거하는 것이 회개라고 믿는다.
해방신학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화에 있으며 그 인간화 조건은 해방자이신 인간 예수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해방신학은 오늘날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고 있음이 사실이나 반면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인간 구원이란 전체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포괄적인 것인데 가난하고 소외된 어떤 특정계급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제한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치는 구원의 본질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정계급의 사람만을 해방시키는 것이 구원의 전부라면 기독교는 모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모든 사람의 정신을 바로잡는 종교가 아니라 가난한 자, 눌린 자의 특질적인 생활향상을 위한 하나의 정치운동이나 인도주의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구원의 대상을 제한할 때 기독교의 사랑을 계급주의적인 사랑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약자와 강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식인과 무식 대상을 계급적으로 갈라놓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Ⅳ. 다음으로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종교주도형의 관계이고
둘째는 정치가 종교를 지배하는 정치주도형의 관계이며
셋째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원칙에서 보는 관계이다.
ⅰ.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종교주도형의 관계는
먼저 구약성경에 나타난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신정(神政)을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 믿는 신앙을 법의 기본으로 삼고 그때그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정치를 하는 것이다. 고로 정치는 언제나 종교와 일치해야하며 그 계명은 개인과 사회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종교의 사회윤리의 연합적인 규범이 된다.
중세기에도 국가가 완전히 교회에 예속되었던 때가 있다. 예를 들면 11세기의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 (Heinrich Ⅳ 1050-1106)」가 알프스 산을 넘어 교황이 유하는 카노사성 밖에서 맨발로 눈 위에 엎드려 사흘이나 빌고 나서야 비로소 속죄를 받은 일이 있다. 이것은 정치가 종교의 지배 밑에 있었음을 설명하는 실체라고 본다. 그러난 이런 관계는 종교개혁 이후에 사라지고 말았다.
중세기의 로마 가톨릭교회도 신성 로마제국에 속하는 나라들에 대하여 강력한 종교적 정치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 당시 유럽의 종교적 통일이 정치적 통일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교황은 황제에게 왕관을 씌워주기도 하고 벗기기도 하였다. 이런 관계는 종교가 정치보다 우위에 있다는 이론적 근거에서다. 그 까닭은 정치는 현세의 문제를 취급하는데 비해 종교는 초자연적인 세계에 속하며 영적인 것을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ⅱ. 정치가 종교를 지배하는 정치주도형의 관계는
그 예로서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트1세(Augustus I)」를 들 수 있다. 그가 황제로 취임했을 때 왕관을 받음과 동시에 로마종교의 사제가 입는 법 옷까지 받아 입음으로써 로마제국의 종교와 정치의 두 가지 지배권을 한 몸에 장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기위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황제를 신처럼 숭배하게 만들었다. 종교가 이렇게 정치 밑에 들어갈 때 종교는 그 이상과 목적을 잃고 다만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런 관계는 종교가 정치권력에 아부하게 되고 또 정치권력은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게 됨으로 결국 종교나 정치나 모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된다.
ⅲ.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예수께서 납세문제에 대한 무리들의 질문을 받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말씀은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분리하여 혼돈을 피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지난 2000년의 서양역사는 이 분리 원칙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종교와 정치의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이 정(政)교(敎)의 분리 원칙은 근대 이후에 더욱 보편화 되었다.
이 원칙은 모든 종교운동에 정치가 간섭할 수 없도록 헌법에 보장하고 있으며, 또한 종교도 현실의 정치적 영역을 침범하거나 간섭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를 이원론적으로 엄밀히 분리할 때 많은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종교가 완전히 국가나 정치 밖에 있다고 생각할 때 종교는 비정치적인 것이 되고 만다. 종교가 현실을 외면하면 의미가 없다. 특히 기독교가 원시종교와 다른 것은 인권과 윤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종교와 정치를 엄밀히 분리한다 해도 개인은 종교인으로써 교회의 멤버인 동시에 또한 국민의 한 사람인고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늘과 같은 다원화 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원칙이 서로 선을 긋고 불가침을 선언하거나 대립관계에 설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세계화된 국제사회에서 어는 한 나라가 홀로 존립할 수 없듯이 종교는 정치를 완전히 떠나서 살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종교는 국민 하나하나의 개인생활은 물론이고 그들의 여러 가지 정신적이며 도덕적인 규범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종교와 정치는 원칙적으로는 분리하되 대립관계에 설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격려하는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Ⅴ. 끝으로 종교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성서적 기본 입장을 설명하고자 한다.
누구보다도 노사문제에 대한 넓은 지식과 경험이 많은 미국의 저명한 사상가요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R. Niebuhr)」교수는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 참된 기독교는 두 가지 차원의 건전한 조화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차원이며 둘째는 이웃을 향한 수평적인 차원이다. 전자는 종교와 신앙, 후자는 윤리와 사회생활을 강조한 것이다. 참 기독교는 종교와 윤리, 신앙과 행위, 정신과 물질의 건전한 조화 속에서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40여 년 전에 「니이버」교수의 이런 주장은 그 당시에 미국사회 안에 영적인 신앙만 강조하고 현실을 외면했던 정통의존사회와 또 이웃에 대한 현실문제만을 강조함으로써 뜨거운 영적 힘과 신앙을 잃어버린 진보적인 교회를 향해 다 같이 던진 개혁의 선언이었다.
참 기독교는 「니이버」교수의 주장대로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기독교는 종교이면서 종교만은 아니며, 윤리이면서 윤리만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독교는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즉 영원과 시간, 절대와 상대, 무한과 유한, 완전과 불완전의 만남이다.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만 생각할 때 이웃에 대한 봉사 즉 현실참여를 무시하게 되고, 또 기독교를 하나의 윤리로만 생각하면 모든 가치기준을 인간에게만 두기 때문에 인간 외의 어떤 권위도 인정할 수 없게 되며 여기에는 신의 권위도 영적세계도 존재할 수 없으며 다만 유물적인 현실세계 만을 문제 삼게 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운다. 그는 세상에 계실 때 두 가지 봉사를 균형 있게 하셨다. 먼저는 위의 계신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신 분이다, 그래서 그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고 기도했으며, 또 십자가의 수난을 눈앞에 놓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 앞에 절대 복종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긴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땅에 사는 대중을 섬겼다. 인간이 겪고 있는 죄와 불행과 고난의 사실을 깊이 이해하셨,고 그 속에 자신이 뛰어들어 함께 맛보시고 함께 고난을 체험하셨다. 고로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초월자인 동시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신이시다. 인간과 더불어 모든 고난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예수님이 대중을 섬겼다는 말은 물론 이 세상에서 대접받은 상층 계급의 사람들보다도 약자, 눌린 자, 병자들 즉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이다. 예수님의 삶을 보아도 그는 눌린 자의 편에 서고, 가난한 자의 친구로 사귀고, 죄인의 벗이 되어 그들에게 삶의 보람과 용기와 기쁨을 준 것이 사실이다. 고로 그는 공생애에 나서면서 제일성으로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선언하고, 눈먼 자의 눈 뜨임을 선언하고, 눌린 자를 놓아주려 함이라(누가복음4:18~19)”고 하셨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예수님의 경우에는 두 가지 섬김이 일치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인 차원에만 기울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실참여에만 치우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이 바로 눌리고 헐벗고 병든 자를 섬기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이웃을 섬기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것을 주시하는 것이 바로 신성과 인성을 함께 지닌 그리스도의 인격이요 또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헐고 화해의 대업을 성취하신 십자가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모금 주는 것이 바로 나를 대접함이라”고 하셨다.
지난 날 한국교회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나뉘어서 보수주의는 타계(他界)주의 즉 영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기독교를 사회 밖의 종교로 만들고 사회에 대한 책임의 중요성을 망각하여 영혼의 구원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반면에 진보주의는 사회를 구원해야한다는 입장에서 개인의 영혼 구원을 도외시하고 사회 속에서 신앙의 행동화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교회는 개인구원과 사회의 구원을 동시에 추구해야하며 충돌과 대립과 저항보다는 이해와 협조와 화해의 정신으로 이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형성할 책임이 있다.
기독교는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 없다. 신앙만 강조해도 현실 참여만을 강조해도 안 된다. 다만 우선순위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 만일 노사문제나 여야의 정치적 문제가 생길 때 기독교의 입장은 분명해야 한다. 만일 기업인들이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여 치부에만 혈안이 된다면 교회는 당연히 노동자의 편에 서야 하고, 반대로 근로자들이 태만하고 잘못하여 기업이 위기에 처한다면 당연히 기업을 격려해야 마땅하다. 정치에 있어서도 여야간의 대립이 생길 때 여가 정당하면 여를 격려하고, 야가 정당하면 야를 격려해야 한다.
기독교의 기본 입장은 어느 편에 설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편이 정당하냐에 있다. 약자라고해서 모두가 정당하고 강자라고 해서 모두 잘못됐다는 법은 없다. 기독교의 사회참여에 대한 기본 입장은 불의를 배격하고 언제나 정당한 편에 서서 양자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고로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태복음5:37)”고 하셨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 나라 사이에 다리를 놓는 중보적인 존재로써 화해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반공연맹 시국 세미나 강연 1979.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