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5

『조직신학입문』

김성호 박사

이신건 교수님의 『조직신학입문』은 1992년 5월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되었다. 이책은 당시 이 교수님께서 『크리스천 저널』의 의뢰로 "성숙한 믿음의 위한 지상강좌"라는 제목하에 18회 에 걸쳐 '조직신학'을 연재했던 것이 자료 보충을 통해 24회로 한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참조, 이신건, 『조직신학입문』, 신앙과지성사 2014, 5-6. 이하 괄호안에 페이지 수만 표기함). 초판의 서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독일의 튀빙엔(Uni. Tuebingen) 출신의 젊은 신학자는 솔직성, 개방성, 연대성, 역사성에 대한 관심을 고려한 인식을 유도하는 관심이 이 책을 이끌어 냈다고 밝힌다(6).

얇은 책자로 서울신학대학교의 조직신학수업에 많이 활용된 이 책은 대가들의 조직신학입문서들에 비해서 또한 책의 부피에 빗대어 '수줍다'라고 2006년 이 책의 나이 14살때 개정증보판에의 서문에 부치는 글에서 밝히고 있지만, 제자이자 이 책의 소개자로서는 이 책은 내용면에서 전혀 '수줍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다. 4판을 거듭한 이책은 2014년 그의 나이 22세로 개정증보판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저자는 두번째 개정증보판을 내어놓는 이유를 새로운 문선의 소개, 각주의 내용을 본문으로 넣고, 책의 가독성을 위한 성서 본문의 추가, 문체의 수정이라는 네가지 이유를 밝힌다. 이 모든 이유는 필자의 평소 성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생들과 독자들을 고려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에서 비론된다고 여겨진다.

독일에서 갓 귀국한 서울신학대학교의 젊은 조직신학자의 패기가 담긴 조직신학입문서는 독자를 고려하고,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농축되어 2014년 봄이 다가오는 무렵 스물 두살의 성숙한 젊은이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조직신학입문이라는 그(그녀)의 이름은 '이신건 교수의 조직 신학 강의 5'라는 부제가 가미되어 그 깊이도 분명 1994년도에 나온 처녀작과 비할바는 아닐 것이다.

독일에서는 신학 각 분과의 개론수업은 주로 분과별로 경험이 풍부한 주임교수가 주로 맡는다. 왜냐하면, 주임교수들이야 말로 오랜 연구와 강의경험을 바탕으로 분과별로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신건 교수의 이 책은 마치 소개자가 독일에서 경험했던 조직신학개론 수업을 회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현재까지 이신건 교수께서 편찬하신 조직신학강의 시리즈 중에 마지막인 5에 배치된 것만 보더라도, 40여년간 독서한 책들과, 20여년간 교수사역중에 연구하신 내용들의 액기스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면에서, 저자 스스로도 이책을 '신학의 보화요, 신앙의 보약(12)'으로 표현하고 계실 것이다. 연륜과 내용은 이제 이책을 더이상 수줍지 '않게' 만들었다.

제1장에서 조직신학의 정의에 대해 논한 필자는 이어지는 장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믿음에 관한 담론(Sage ueber die Glaube)을 펼친다. 소개자는 이부분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신학의 많은 파트들 가운데 저자는 '믿음'에 관한 질문으로 조직신학 입문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믿음이란 인격적인 존재인 하나님과 관련되어있고(33-34), 하나님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행하신 일과도 연관되어 있으며(34-35), 결단과 사건으로 존재한다(35-36). 저자는 네번째로 믿음에 관해 "믿음은 정지해 있는 사물과 관련되 있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37) 이 네번째 진술은 위르겐 몰트만교수의 '희망'의 개념에 바탄을 두고 있다. 즉, "희망의 하나님"(롬 1:13)은 자신의 미래의 약속 가운데서 우리를 만나시는데, 이와 같은 이해로부터 저자는 믿음은 "나그네의 믿음이고, 그리스도교인의 실존은 도상의 실존이다. 믿음은 언제나 앞서 가시는 분의 약속과 미래를 뒤따른다. 그러므로 믿음은 소망적인 구조를 지닌다(37)."라고 진술한다. 저자는 이장의 결론에서 믿음에 관해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깨닫는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깨달을 수 있기를 원한다는 배경을 그 근거로 한다(38-39).

저자는 "믿음은 항상 이데올로기와 대화해야 하고,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48)"고 말하며 믿음의 능동적 행위를 강조한다. 이어 필자는 믿음의 관한 담론을 '제4장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까지 할애함으로써, 이 책의 전체 25장중에 무려 세장(제2장, 3장, 4장)에 걸쳐 믿음에 관한 담론을 할애한다. 이는 시작에 위치한것도 그랬지만, 그 내용의 분량면에서도 추적해 볼 때, 저자가 조직신학의 개념들 가운데 '믿음'에 관해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엿볼 수 있다. 4장에서는 믿음과 사랑, 사랑과 소망, 믿음과 사랑의 관련성을 논하며, 믿음의 관한 담론을 믿음 단독에서 믿음, 사랑, 소망들 간의 관계개념으로 논의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제5장의 제목은 '하나님은 누구신가?'이다. 신학생이라면 우선,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의 신존재증명방법을 기억하길 바란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을 "모든 운동의 최초의 원인, 모든 결과(작용, 효능)의 최초의 원인, 모든 존재의 필연적인 근거, 모든 단계의 최상의 경지, 세계의 질서(아름다움, 합목적성)를 부여한자라고 부른다(63). 이는 이성의 자연적인 능력을 통한 하나님 증명의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인간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곳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다는 이유로, 칸트에 의해 부당한 것으로 반박된다(63). 저자는 "우리는 세계로부터 하나님을 증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세계를 증명해야 한다"는 몰트만의 진술(희망의 신학, 104)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6장에서 저자는 삼위일체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저자는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하는 가장 독특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이해를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75)"라고 말한다. 저자는 삼위일체는 테오도투스의 예수가 세계를 받을 때에 성령을 받아서 특별하 능력을 받았다고 하는 역동적 종속론, 사모사타 출신 바울의 로고스론에서 착안한, 즉 로고서는 원래 하나님의 속성인데 예수가 죄가 없는 인간, 죄를 극복한 인간이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로고스르 선사했다는 이론, 아리우스의 로고스가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라 가장 높은 위칭 있는 최초의 피조물인 예수에게 나타났다고 하는, 로고스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와 같다는 잘못된 삼위 일체론중의 하나인 종속론을 소개한다(78). 이후 또하나의 잘못된 삼위일체론인 양태론을 소개하는데 이는 "한 부 하나님(아버지)으 계시의 주체로 보고, 예수오 성령을 단지 하나님의 상이한 양태, 상이한 출현 양식을 보려고 한다."(79) 이는 신의 복수성과 철학적인 유일신론을 중재하려는 스토아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교회가 325년(니케아공의회)에 극단적인 두 이론을 배격하고,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에 다라서 ‘아들은 창조되지 않았고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지만, 아버지처럼 영원하고 아버지와 본질이 같다.’고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신성(神聖)이 확립되었으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성령의 신성이 추가됨으로써 완전한 삼위일체론이 확립되기에 이르렀다(80)”고 삼위일체론에 대해 정리해 주고 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비록 하나님은 세 위격(位格) 안에서 서로 구분되어 있지만, 홀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위격에 참여하시며, 다른 위격과 함께 사귐을 나누신다. 하나님은 삼위 안에서 독립된 주체를 이루시지만, 다른 위격과 끊임없이 결합하시고, 상대방 속에서 함께 소유하시고, 함게 나누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서로 순환하시고 침투하시면서, 하나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신다(이 책, 83의 각주 12참조: 순환(Perichoresis, Circumincessio)과 변용(Manisfestatio)은 삼위일체의 인격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두 개념이다.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서로 상대방 안에서 존재하고 살 뿜낭 아니라, 신적인 영광 가우네서 서로 자신을 표현한다. J. Moltmann,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 210이하 재인용).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그러므로 오직 연합과 참여의 관계에 기초하여 세워진 형제자매의 공동체만이 영원한 삼위일체의 생생한 상징이 될 수 있다(83).”

 어느 장(章)보다 소개자가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 바로 7장 무신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이다. 저자는 다양한 무신론에 관한 입장들을 정리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그리스도교인은 무신론자들을 비웃고 나무라기 전에 먼저 자신을 되돌아보려고 힘써야 한다. 만약 교회가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을 들고, 민중의 소망이 되기보다는 민중의 아편이 되며, 이웃의 고난에 무관심하고 세상에 대해 무책임한 교회가 된다면,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래서 무신론자들보다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있다고 감히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신론자들에 대해서 교만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98-99).” “교회는 무신론자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야 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교회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노력해야한다.(마 5:16) 따라서 교회는 무신론자들에게 기도와 전도의 빚 외에도 사랑과 회개의 빚을 지고 있다. 교회는 그들을 인내와 소망으로 대해야 하며, 진정한 복음을 언어와 행위로 보여 주어야 한다. 무신론의 문제는 결국 무신론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99).”

이후 저자는 8장부터 25장까지, 창조, 인간, 악, 은혜, 창조와 해방과 화해, 칭의와 성화와 영화, 예수, 성령, 성례전, 교회, 종말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는 저자가 스소개한대로, 16권의 저서이외에 그동안의 오랜 연구로부터 나온 액기스중의 액기스이다. 그 액기스의 총 페이지는 303페이지이며, 이 액기스의 주요 함유물은 B.M.B.이다. 즉, 칼 바르트(Karl Barth),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 그리고 디트리히 본회퍼이다(D. Bonhoeffer). 

한 사람의 신학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신건 교수님은 분명 세 신학자의 핵심 내용들을 다양한 기독교역사의 교리와 함께 이해하고, 독자들에게 25개의 조직신학개념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 주셨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내용 후에 다음 장에는 저자의 후기가 없다. 이 책을 선물받은 제자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이 책의 담긴 조직신학개념들을 배경으로, 영혼을 돌보는 목회(Seelsorge)를 통해, 그리고 일상에서 ‘삶의 신학’으로 이 책의 ‘후기’를 채워나가기를 ‘희망’하는 교수님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표지 사진에는 이신건 교수님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소개자는 생각했다. 교수님은 도대체 무엇을 보시고, 무엇을 걱정하고 계시는 것일까?

교수님은, 한국교회 그리고 제자를 바라보고 계신다. 그리고 교수님은 걱정하신다. 교수님은, 성결교단 그리고 앞으로 목사가 될 제자들을 걱정하신다. 이 책의 제26장은 이 책을 읽는 제자들이 신학이 튼튼한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섬길 때, 그리고 삶 가운데 용해되어 쓰여질  것이다. 부족한 제자에게 신학과 삶으로 늘 한결같은 사랑을 주시는 이신건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한 신학자의 북 콘서트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잔치를 예비하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