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세적-로마가톨릭적 모형 연구

 


Ⅰ 이전 모형과 이 모형

이전의 어거스틴적 모형은 알레고리적 의미와 은총을 중시하는 금욕적 신앙 중심이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주의는 13세기에 들어와서 위기가 초래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적 유럽에 전체적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위기는 자연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리스적인 아랍철학에 직면하게 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합리적인 기초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또 철학의 원리는 반드시 암암리에 혹은 명백하게 그리스도교를 배척하는 세계관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앙에 대해 이성을, 알레고리적, 영적 의미에 대하여 문자적 의미를, 은총에 대해 자연을, 신학에 대해 철학을 새롭게 강조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거스틴 사상을 매우 통일적인 새로운 체계 속에 집어넣었다. 자신의 체계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서슴없이 재해석하거나 배제했다.

 

Ⅱ 현 모형과의 차이

[도표]

어거스틴적 모형

중세 가톨릭적 모형

교회적 신앙

신플라톤주의

알레고리, 영적

금욕적 그리스도교, 은총

이성

금욕적 그리스도교

문자적 의미

자연, 철학을 강조


Ⅲ 현 모형의 특징

1. 교황주의적 교회론

1) 교회적 신분질서

중세-가톨릭적 모형은 교회와 그 공동체의 보호를 전제하기에, 이단자들을 교수형에 처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Hieronymus의 글을 인용한다. "온몸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고 모든 양들이 병들지 않도록 하려면 …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비루먹은 양을 우리에서 몰아내야 한다".

이렇게 공동체를 강조하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것은 교황을 위시한 교회가 정신 문화적, 정치 도덕적 질서능력을 행사했고, 일반인들은 지위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세기에 있어서는 과학이 아직도 초보적인 발전단계에 있었으므로, 사람이 신학자들이나 철학자들에게 세계에 관한 지식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매우 당연했다.

이 모형에서 교회적 신분질서는 일반 교회대중(평신도)과 성직자 직분을 구별했으며, 가르치고 의식을 거행하고 지도하는 데 있어서도 서품된 자"와 "서품되지 않은 자"의 차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개인은 대체로 집단 속에 살았으며, 피아제나 에릭슨의 발달심리학적으로 말해, 중세는 규칙 공동체가 전적으로 권위를 가지는 규칙의식의 비판 이전의 단계에 있다. 신앙의 집단성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개인은 집단성 안에서 집단성에 근거해서만 존재했다.

2) 국가-교회법

중세-가톨릭 모형에서는 하나님은 자연과 초자연의 규정적 목적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교회의 임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세상의 권력이 교회재판의 판결을 집행해야 한다는 "국가-교회법적" 이론을 보면, 국가는 인류의 초자연적 구원에 관한 모든 일과 개인적, 공적 성도의 모든 일들은 교회의 지도적 권위에 예속된다.

2. 신학과 철학의 조화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이성'에 의해서는 영원으로부터의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철학은 세계가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는지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은 대답할 수 있다.

아퀴나스가 신학과 철학을 구별한다 :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이성으로도 알지만, 삼위일체의 신비는 '계시'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양자가 서로 모순된 점이 있는 듯 하나 서로 조화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인식이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인식활동에서 감각적인 지각이 하고 있는 역할을 중요시한다. 중세의 신학과 철학, 그리고 신앙계시와 이성을 조화시키려는 스콜라 철학은 토마스에게서 완성되었다. 그는 신학을 철학 위에 두고 신학의 분야와 철학의 분야를 구별하면서 양자의 관계를 잘 조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 신론

중세-가톨릭 모형에 등장하는 시기는 수세기에 걸친 유신론을 배후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에 관한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아퀴나스는 신을 신앙하는 것을 뒷받침해 줄 만한 이성적인 증명이 있느냐 라고 묻기 전에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사물 그 자체의 형이상학적인 구조에 주목한다면,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초월하는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재발견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존재론과 인생론을 그리스도교 속에 통전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존재 개념(순수 현실)을 통해 하나님을 신학적으로 표현하려는 토마스의 노력은 그의 초기작품 [유와 본질에 대하여] 이래 모든 작품 나타난다. 그에게서 하나님은 존재의 총괄개념이며, 다른 모든 것처럼 행위와 잠재태로 결합되어 있지 않다. 그가 표명한 신학적 언어공동체의 모형은 이러한 헬레니즘적 존재이해를 통해 표준적으로 형성되었다.

2) 속죄론

아퀴나스는 속죄론에서 알셀름의 학설을 취하지만 그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안셀름에게는 '속량'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를 사유'하실 길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퀴나스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한 '사죄'가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인의 죄를 넉넉히 갚고도 남음이 있는 형벌이고, 예수의 속량은 그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전 생활을 포함한다. 그러기에 믿는 자가 속죄의 효과를 얻는 것은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일치함에 있다.

3) 인간론과 성례전

중세-가톨릭 모형에서의 인간은 날 때부터 부패성을 지녔기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야 한다. 그러기에 가톨릭의 일곱 가지 성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만찬은 화체설을 주장했고, 속죄표 문제도 효과를 인정하되 그 효력은 교회의 권위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산 자뿐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해서 속죄표를 받는 것도 유효하다.

인의는 성례전적인 은혜의 초자연적 주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은혜는 믿음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선물이 주어지는 과정과 선물 자체의 특성은 초자연적으로 제시되는데, 이것은 권위적인 계시를 통해서만 인식된다.

4) 종말론

연옥설을 인정하며, 성도의 중보의 교리를 말하며, 육체의 부활과 내세의 축복을 믿으며, 육체의 부활은 현재의 상태 그대로 머리털, 손톱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부활한다고 가르친다.

5) 윤리학

성례전적 은혜를 통해 부여된 덕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덕과 유사하며, 신망애의 사대 덕은 토마스 윤리학의 기초이다.

 

Ⅳ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적 시기(스콜라주의 전성기)를 두드러진 방식으로 표현했고, 영향사적으로 권위 있게 가톨릭주의의 틀을 형성했기 때문에 그 나름의 언어세계를 지닌 토마스 아퀴나스를 루터와 비교할 수 있다.

Thomas von Aquinas 는 당시에 매우 논쟁적인 신학자였다. 그는 전통주의적(어거스틴주의적) 신학자들에 의해서 현대주의자로서 공격받고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며, 그가 속한 도미니카 수도원에 의해 파리로 송환되었으며, 결국 파리와 옥스포드의 교회당국에 의해 전혀 "새로운 신학"의 대변자로 정죄되었다. 물론 나중에는 수도회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에야 비로소 그의 신학대전은 수도회를 벗어나서 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아퀴나스의 저작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두 가지의 체계적인 논저, 즉 Summa contra Gentiles(이교도에 대한 대전)과 Summa Theologica(신학대전)이다.

아퀴나스가 마음에 새기고 있던 '이교도'들이란 일반적으로 신심이 깊은 마호메트교도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론적인 철학에 물들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이슬람적 철학에 의해 대표되는 자연론적인 실재해석과의 대결이라는 배경에서 이 책을 이해해야 한다. 어거스틴은 이 저작의 출발점에서 이성(理性)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여러 가지 진리들을 고찰하고 있으나, 제3권의 마지막 여러 장이나 제4권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관해서 고찰하고 있다.

신학대전은 아퀴나스 자신이 말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신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려는 '초심자'를 위해 쓰여진, 신학의 체계적이고 요약적인 해설이다. 제1권은 신과 창조를 다루고 있으나, 그 외에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의 지적인 생명에 대한 논술이 포함되어 있다. 제2권에서는 인간의 윤리적인 생활을 고찰한다. 그 제1부에서는 인간의 최종적인 목적과 윤리의 일반적인 문제를, 그리고 제2부에서는 특수한 덕(德)과 악덕(惡德)에 관해서 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3권에서는 그리스도와 성사(聖事)를 다루고 있다.

전체 신학대전의 첫 번째 주석서는 고전적인 토마스 해설자이며 루터의 반대자인 카예탄(Cajetan) 추기경에 의해 씌어졌다. 그리고 스페인 스콜라주의의 교부인 프란시스 드 비토리아(Franckscus de Vitoria)가 1526년에 처음으로 토마스의 신학대전을 살라만카 대학교의 교과서로 사용했다. 그 후에는 두 개의 토마스 교수직과 7년의 신학대전 과정을 통해 위대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전체 신학대전에 대한 90개의 주석서와 신학대전 1부에 대한 218개의 주석서가 나왔다.

죽은 지 3년만에 1277년에 토마스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두 지도적인 대학들인 파리대학과 옥스포드대학의 주교들에 의해 정죄를 받았는데 이 정죄는 "중세기의 가장 무거운 정죄"(van Steenberghen)였다고 한다. 이로써 신학의 자유로운 발전은 오랫동안 정지되었다

 

Ⅴ 비판 (종교개혁 - 프로테스탄트 모형의 출현)

1. 언어전통

하나님, 은총, 양심, 자유, 교회, 교직 등이 로마 - 가톨릭 전통과 종교개혁적 개념과는 다르다.

2. 인의론

토마스 아퀴나스도 인의론을 그의 신학체계 안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교리항목들 가운데 하나였다. 죄인의 의인은 인간 안에서 신적 은총이 작용한 결과로서 간주된다. 신학대전의 1부 전체와 2부의 첫 부분(1부와 1-2부)에 걸쳐서 먼저 하나님이, 그리고 그 다음에 윤리적 능력과 한계를 지닌 인간이 다루어진다. 그러나 루터는 죄인의 인의에 대한 항목이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삶의 중심을 이룬다.

토마스는 하나님과 그의 의, 능력, 지혜, 선, 자유 그 자체에 대한 말한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은총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지혜롭고 선하고 자유롭게 하시는 한에서만 그의 능력에 대해서 말한다.

3. 사상적 존재파악은 헬레니즘적 존재이해와 상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윈리들, 특히 모순의 원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신앙적 진리와 이성적 진리 사이에 근본적 모순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양자는 하나님을 공통적인 궁극적 진리근거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은 논증적 학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독존적 하느님 - 루터에게서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 - 이다.

4. 신학 전체 속에서 그리스도가 차지한 위치

그리스도론은 신론 인간론 윤리의 부록인 듯하다. 철학적 하나님 증명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연적 갈망"에 관한 가르침, 그리고 "자연과 은총"의 관계.

5. 자연과 은총, 자연과 초자연의 구분

토마스는 헬레니즘 전통에서 유래한 자연-은총, 자연-초자연의 구분을 했다. 교회가 인류를 율법에 얽어맨 격이다. 교회와 성직자들이 자치적 법칙의 기준에 따라 정치적 권력자들로 행세할 격이다.

6. 은총의 확신

토마스도 신앙의 확신과 희망하는 자의 확신을 가르쳤다. 그러나 신앙인을 위한 은총의 확신을 주장하기를 거절하였다.

 

참고 문헌

현대신학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스 큉 ·데이비드 트라시, 박재순 역, 한신연, 1993

토마스 아퀴나스, F.C. 코플스톤, 강성위 역, 성바오로서원, 1968

활천 제354호 1970년 12월호 "토마스 아퀴나스"

활천 제364호 1972년 11월호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 19호 1997년 봄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 관념"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 22호 1997호 겨울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철학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