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학

 

염동팔

 

 

 

 

Ⅰ. 정치신학의 기원과 의미

 

"정치신학" 혹은 "시민신학"이라는 표현은 스토아 철학에서 기원했으며, 정치신학은 원래 이교도 국가의 종교적 산물이다. 파나이티오스(panaitios)는 신의 형상을 세 범주로, 즉 인격으로 생각되는 자연의 힘, 즉 자연의 신(genus physikon), 국가종교의 신, 즉 정치의 신(genus politikon), 그리고 신화의 신(genus mythikon)이라는 세 범주로 분류했다. 시인들의 신의 표상은 신화적이었고, 철학자들의 신 개념은 자연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었으며, 국가의 신 개념은 정치적이었는데, 신화적 신학은 무대, 즉 제의적·정치적 무대에 가장 잘 적합했고, 형이상학적 신학은 철학파의 세계관에 속했으며, 정치적 신학은 국가에게 필요했다.1)

     그렇지만 신화적 신학과 정치적 신학은 한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무대, 신전, 특정한 공동체의 공공행사에 언제나 유용했던 것이고, 순전히 정신적이고 형상이 없는 철학적 종교의 제의는 보편적이었으며, 전 인류를 통합하는 우주적 종교를 추구했다. 헬라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신학을 최상의 단계로 여겼던 반면,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정치신학을 우위에 두었다. 그래서 정치적 신론은 철학자만이 아니라 시인들의 목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 정치적 공동체에서 어떤 신들이 국가의 승인을 받으며 어떤 거룩한 행위들과 제물로써 그 신들이 숭배되어야 하는지 시민들과 사제들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국가론에 따르면 국가와 신은 함께 속해 있었기 때문에, 신을 경배하지 않는 국가나 국가가 없는 신이란 존재할 수가 없었다.2)

     초대 기독교는 로마의 국가 신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신론자로 낙인찍히고 박해받았다.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 이래로 기독교는 이전의 신들이 떠맡았던 역할을 물려받아 국가종교가 되었다. 그 결과로 하늘의 한 하나님 - 땅의 한 황제, 법, 국가라는 군주론적 형이상학을 통하여 기독교의 첫 정치신학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종교는 고대 사회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신앙고백의 도움으로 통합되고 한 국민이 자신의 기원, 생존 투쟁과 그 방향에 대한 자의식을 신조로 표현하는 곳에서는 어디나 존재한다. 그것은 기독교적 형식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형식도 취하며, 유신론적 형태나 무신론적 형태를 갖기도 한다.3)

     몰트만은 메츠와 함께 '정치신학'의 개념을 받아들인 최초의 현대신학자다.4) 몰트만에 의하면, 신학자와 정치인 사이에는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있고, 그들은 신학자의 말도 듣고 정치가의 말도 듣게 되며, 교회에도 살고 정치영역에도 살게 됨으로써 신앙과 정치 행위를 하나의 공통 분모로 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를 "누추한 일거리"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흥미를 잃어 신앙과 경건 생활로 후퇴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올바른 정치적 해결을 위한 아무런 도움도 얻지를 못하기 때문에 신앙과 교회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정치신학이란 종교적 신조에 의하여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고, 양심 때문에 사회에 드러난 불행에 직면하여 고통을 겪고 또 그에 대해 투쟁하는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반성인 것이다.

     정치신학은 세계의 상황과 과제를 신학적으로 반성하는 것이요, 교회의 신학과 한 사회 안의 시민 종교 사이에 서서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그 독특한 가치를 갖는다. 아우슈비츠의 참사와 히로시마의 사건 이래로 많은 사람은 신학이 적어도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운명은 더욱 더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것이 되었고, 책임적 신학이 되고자 하는 신학은 그 말과 표상과 상징과 개념이 갖는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언급에서 국민에게 종교적 아편을 주는가, 자유의 현실적 누룩을 주는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정치신학은 단순히 정치의 특수한 신학이나 정치적 윤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학의 정치적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의식을 가진 신학은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정치적 의식을 갖지 못하는 순박한 신학이 언제나 있지만, 땅 위에 비정치적 신학이란 없다고 못 박는다.5) "소박하며 정치적 자의식이 거의 없는 신학이 있다. 그러나 비정치적 신학(a-politische Theologie)이란 지상에도, 천상에도 없다. 자기들의 정치적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사회에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 교회가 있다. 그들은 그에 대해 침묵하고, 은폐하고, 베일을 씌우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정치적으로 '중립'임을 자처한다. 이에 반해 정치적 자의식을 가지고 현존하는 기독교 그룹들도 있다. 그러나 비정치적 교회(a-politische Kirche)란 역사에도, 하나님의 왕국에도 없다."6)

     따라서 비판의 소리에 겁을 먹고 교회가 정치화될 것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교회는 이제 무의식적으로 실행해 왔던 정치적 신학에서 뛰쳐나와 비판적으로 의식적인 한 정치신학으로 이전해 갈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몰트만은 주장한다.7) 정치신학은 새로운 교의학이 아니라 이미 기존하는 모든 기독교 신학의 정치적 자의식을 근본신학적으로 소생시키고자 할 따름이다. 정치신학은 신학의 주된 지평을 교의적인 것 대신에 정치적인 문제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의학의 정치적 기능에까지 진입하여 기독교적으로 존재하고자 한다. 그것은 교회당을 정치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정치와 기독교인들의 사회참여(Engagement)를 기독교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신학은 현대의 기능적 종교비판을 수납하고 정통에 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바른 실천을 고무한다.8)

 

 

Ⅱ. 정치적 해석학

 

정치적 해석학은 역사를 메시야적으로 해석한다. 해석학이란 문서 주석의 기술이라고 이해된다. 모든 주석은 역사적 측면과 예언적 측면을 갖는다. 그것은 역사적 해명과 예언적 적용을 포함한다. 우리는 언어, 문장, 역사 및 상징이 그 시대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 역사비판적으로 밝혀야 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즉 해석학은 과거를 현재로 번역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왜 과거가 현재화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인식을 유도하는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단순히 과거 때문에 과거가 현재화될 필요는 없다. 또한 현재에 전통의 견고한 토대를 주기 위해 과거가 반복될 필요도 없다. 오직 과거 속에 과거를 넘어서 미래를 지시하는 그 무엇이 숨어 있을 때에만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의미를 갖는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 미래를 지시하는 것, 과거의 출발점은 현재로 끈질기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성취되고 완성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해석학은 과거의 증언으로 되돌아간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과거 속에서 미래를 구하기 때문이다. 해석학은 '회상의 양태를 갖는 희망'이다.

기독교적 해석학은 성서를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와 인간의 희망의 역사에 대한 증언으로 읽는다. 인식을 유도하는 관심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계시되고 인간의 희망 속에서 파악되는 미래의 능력에 대한 관심이다. 그런데 성서가 핵심적으로 말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는 거듭 인간을 그 내적·외적 포로살이로부터 -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교회를 민족들로부터 - 해방시켰기 때문에, 이 역사의 회상은 매 현재에 대해서 위험스러우면서도 자유케 한다. 즉 힘있는 자들에겐 위험스럽고, 힘없는 자들에겐 자유케 한다. 그래서 현재로부터 과거로 되돌아가면, 우리는 또한 자신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넘어서는 법도 배우게 된다.

이리하여 우리는 벌써 해석학의 예언적 측면에 도달한 셈이다. "미래적인 것을 고지하기 위해 과거가 현재화된다"(어거스틴). 칼 뢰비트(K. Löwith)는 역사가를 뒤를 바라보는 예언자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이를 보완해서 우리는 예언자를 앞을 바라보는 역사가라고 칭할 수 있다. 역사가가 회상의 양태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면, 예언자는 희망의 양태 속에서 회상을 구상한다. 왜냐하면 성서의 약속의 역사 안에서 선취되는 저 미래의 능력이 현재와 자신의 가능성 너머 훨씬 멀리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의 능력을 희망 속에서 파악한다는 것은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전체적으로 미래의 요소로 이해한다. 우리가 '과거'로 부르는 것은 우리를 앞질러 간 미래의 선취이다. 우리가 우리의 현재를 이 미래에다 맞추면, 이 현재는 이 미래의 새로운 전선(前線)이 된다. 그렇다면 역사는 더 이상 죽음과 소멸의 시간이 아니라 미래의 시간이다.

만약 우리가 그처럼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방식으로 모든 역사를 규정하고 그래서 소멸하지 않는 미래에 관해 말하면, 이로써 하나님은 '미래의 능력'을 의미하는 셈이다. 그의 미래의 능력은 항상 과거 반복의 압력과 현재의 구속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이 미래의 역사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인간 해방의 역사에 관해 말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메시야적 방향성을 갖는 역사의 해석학의 기본 사고이다.

정치적 해석학은 역사에 참여하면서 역사를 인식한다. 정치적 해석학은 역사와 접목한다. 이전의 해석학은 보통 하나의 지평 위에 머물러 있었다. 즉 성서로부터 성서로, 이해로부터 이해로, 신앙으로부터 신앙으로. 그러나 약속의 역사가 관건이 되면, 약속으로부터 성취로 나아가는 길을 간다. 희망의 역사가 관건이 되면, 기대로부터 성취로 나아가는 길을 간다. 해방에 대한 회상이 관건이 되면, 압제로부터 자유로 나아가는 길을 간다. 다시 말하면, 해석학은 정신사적 혹은 이론적 지평 위에 머물러 있지 않고 회상된 희망으로부터 출발해서 이해를 넘어서 새로운 희망의 실천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로써 희망의 정치적 해석학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칼 맑스의 포이에르바하 명제 11을 따른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상된 약속이 인간 해방과 제반 상황의 인간화를 추동하면, 칼 맑스의 명제를 뒤집을 수도 있다: 변혁을 다시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해석학은 일방적으로 성취로부터 행동으로만 나아갈 순 없다. 그것은 단순한 관념주의일 것이다. 행동은 맹목적이 될 것이다. 정치적 해석학은 성찰과 행동을 변증법적으로 결합해야 하며, 행동 속의 성찰과 성찰 속의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이끌어 가는 해석학적 방법을 일반적 토론에서는 "행동-반성-방법"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적 희망은 희망하는 자에게 자유케 하는 사랑의 행위를 하는 동기를 준다. 그러나 해방의 역사적 실천은 그 나름대로 꾸준히 이 희망의 빛 안에서 성찰되어야 하며, 그 영향과 결과에서 비판되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사도직에의 인격적 참여와 하나님 나라에의 협력이 없다면, 우리는 성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성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도직과 세계 속의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해석학은 기독교인의 고난과 행동 속에서 경험된다. 정치적 해동과 고난 속에서 우리는 성서를 가난한 자, 압제받는 자, 죄인이 된 자의 눈으로 읽는 법을 배우며, 그래서 성서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신학은 세계를 생각 속에서 탐구하는 일에만 더 이상 매여 있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미래로 개방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세계를 변혁하는 과정의 한 요소로 이해하려고 한다(G. 구티에레즈).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해석학은 신학의 순수한 이론과 윤리의 맹목적 행동주의를 다같이 배격한다. 그것의 모델은 이론과 신학이 서로를 교대로 추동하는 분화된 이론-실천의 관계이다. 이론과 실천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양자는 물론 결코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는다. 양자는 또한 역사에서 동일하게 합일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양자는 꾸준히 서로 교차하기 때문에, 이론은 실천을 불러들이고 실천은 이론을 불러들인다. 비판적 이론은 이제까지의 실천과 결별하여 새로운 실천을 추구한다. 비판적 실천은 하나의 이론을 따르며, 새로운 경험을 통하여 다시금 이론을 문제삼는다. 정치적 해석학은 근본적으로 활동적인 평신도를 위한 신학이지, 대개의 지금까지의 신학처럼 특수한 사제의 신학과 목사의 신학이 아니다. 그 주제는 성직자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난하고 눈멀고 압제받고 무감정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해방을 향해 절규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9)

 

 

Ⅲ. Moltmann의 정치신학

 

1. 십자가의 정치신학적 의미

 

만일 대체할 수 없이 특수하게 기독교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기독교적 언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갖는 관계이다. 기독교가 "십자가의 종교"인 것은 십자가가 모든 다른 종교와 이데올로기와 기독교를 구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명백히 기독교의 역사에서 실로 유일하게 정치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그것은 기독교인이 정치적 활동을 하는 출발점이요 또 표준이 되어야 한다.10)

     빌라도가 예수의 피에 대한 자신의 무죄를 그의 손씻음으로 입증하려 했던 것과 같이, 예수는 로마 제국에 반항한 반란죄에 해당하는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일이 없었다. 확실히 예수는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젤롯당의 "혁명당원" 같이 유대인의 자유를 위한 투사도, 사회혁명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그들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의미에서 로마의 정치적 종교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11)

     투우장에 던져진 기독교 순교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이 문자 그대로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로마인을 격동시킨 책임을 그들에게 지웠다면, 깊은 의미에서 그것은 옳았던 것이다(Gilbert Chesterton)."12) 만일 국가 권력에 의하여 십자가형으로 누명을 쓰고 수치를 당한 자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면, 그것은 정치적 관념으로는 가장 낮았던 자가 가장 높은 자로 뒤집혀진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가장 비천한 존재로 판결한 십자가 처형이 그때 최고의 권위를 지니게 된다(Hegel).13) 무력하게 권위 없이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가장 높은 권위가 되었다면, 그 (신앙인)들에게 정치적 권위 신앙이 중단된 셈이다.14) 그 정치적 권위 신앙 중단은 아마 정치적 종교의 가장 철저한 적수일 것이다. 그것은 곧 정치적 우상 숭배와 백성들의 우민취급(愚民取扱)과 정치적 소외로부터 해방하는 비판세력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사명과 업적은 그가 우리의 우상을 파괴한다는 데 있고, 또 우리의 거짓된 신들을 파괴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그 무기는 그의 십자가인 것이다(Adolf Schlatter)."15)

     구약의 신상 제작 금지는 인간들의 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로부터 하나님의 자유를 보호하고,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하나님 형상됨과,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인간 자신의 업적과 행위에 대한 물신숭배(物神崇拜)뿐 아니라 한 민족의 정치적 대표자에게도 해당된다. "대표행위를 하는 기관들에게는 언제나 보이는 신상 앞에 굴복하는 일이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다(N. O. Brown)."16) 대표자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높여지거나 국민이 자신들의 지배권 앞에 허리를 굽힐 때, 정치적 우상숭배와 정치적 본질 이탈, 즉 소외가 생긴다. "민주주의의 참된 본질은 우상파괴다(John Quincy Adams)."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하나님의 자유와 모든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신상제작 금령을 완수하는 정치적 길이 되는 것이다.17)

     교회는 먼저 황제를 예배하는 로마의 정치종교를 포기하고, 그 대신에 황제를 위해 기도했다. 이로써 황제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구별되고, 신성 국가는 비신화화되었다. 중세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그들의 정치적 관념으로써 정치적 질서를 더욱 더 상대화하였다.18)

 

2. 삼위일체의 정치신학적 의미19)

 

⑴ 정치적 일신론

 

정치신학 본래의 스토아 철학적 개념은 정치와 종교의 통일성을 전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폴리스 자체가 공적 종교활동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정치신학은 폴리스의 신들에게 바쳐야 할 거룩한 행사들과 제물들에 관하여 다루었다. 신들에 대한 숭배는 가장 높은 국가의 목적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이 신들은 공동체의 번영과 평화를 보장하여 주기 때문이다. 종교적 표상과 공동체의 정치적 성격의 상응은 삶의 자명한 전제였다.

교회가 종교의 주체로서 독립되고 종교의 영역은 물론 정치의 영역에서도 점차 괴리가 일어남으로써,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오직 하나의 개념만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렵게 된다. 종교적 표상과 정치적 표상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오늘의 정치신학은 과거 역사는 물론 현대의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응과 대립이 나타나고 인식될 수 있는 관심들의 판도를 고려할 수밖에 없으며, 또 이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최초 형태의 정치적 단일군주론을 발전시킨 이들은 초기 기독교의 변증가들이었다. 로마의 국가 권력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뒤를 따라 초기 기독교는 국가와 대립되며 무신론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그리하여 박해를 받았다. 따라서 기독교 변증가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기독교 신앙을 본래 이성적 종교, 즉 국가와 조화되는 하나님 숭배로 기술하는 일이었다. 요세푸스를 본받아 그들은 한 분 하나님과 하나의 주권에 대한 성서적 전승을 철학적 일신론과 결합하였다. 이러한 표상에 의하면 만유(萬有) 자체는 하나의 신성--하나의 로고스--하나의 우주라는 단일군주론적 구조를 갖고 있었다. 성서적 단일군주론과 우주론적 단일군주론이 서로 융합됨으로써, 이 세계를 하나의 피라미드로 생각하는 표상이 형성되었다. 이 표상에 의하면 유일하신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자, 주, 그리고 소유자이다. 그의 의지가 곧 이 세계의 법칙이다. 세계는 이 하나님 안에서 통일성과 평화를 가진다. 창조자와 피조물을 구별함으로써, 성서의 창조론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고 스토아 철학적인 우주론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배권과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모든 사물들의 의존성에 대한 생각을 더 분명히 하였다. 스토아 철학적 범신론은 기독교적 유일신론으로 발전되었다. 세계의 단일군주론은 절대적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세계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성의 가시적 "몸"이 아니라 창조적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해되었다.

로마의 세계 제국을 위하여 기독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일찍부터 일어났다. 이방인들의 다신론은 우상숭배이다. 이 우상숭배와 결부되어 있고 그 위에 서 있는 많은 수의 국가들 때문에 이 세계는 항구적 평화를 누릴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일신론은 이방인들의 다신론을 극복할 수 있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우상의 세계 속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이 땅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보편적 평화의 종교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콘스탄틴 대제가 왜 박해받던 기독교를 허가된 유일 종교로 만들고자 하였고, 나아가서 국가와 조화된 종교로 삼고자 하였던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단 하나의 전능한 황제는 불가시적 하나님의 가시적 형상이다. 그의 영광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된다. 그의 제국은 하나님의 주권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오직 한 분 하나님은 그 안에서 숭배된다. 그는 제국의 통치자일 뿐 아니라 주인이요 소유자다. 그의 의지가 곧 법이요, 법을 만들고 또 그것을 수정한다. 모든 사람들을 통일시키는 평화를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 제국을 모든 민족에게 확대시켜야 할 의무를 황제는 가지고 있다: "땅 위에 있는 유일한 왕과 유일한 하나님, 하늘에 있는 유일한 왕과 유일한 제국의 법과 로고스가 상응한다." 하나님 안에 있는 통일성에 대한 생각은 보편적 통일성의 교회에 대한 생각과 보편적 통일성의 국가에 대한 생각을 유발한다: 한 하나님--한 황제--한 교회--한 제국.

하나님의 개념에서 삼위일체론의 형성은 종교적 일신론이 정치적 일신론으로 바뀌며 정치적 일신론이 절대주의로 바뀌는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 단일군주 제도에 대한 표상을 극복할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신적인 단일 군주론은 삼위일체의 교리로 인하여 "좌절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는 이 이론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단일성이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일원론적으로 혹은 주관주의적으로 이해되는 한, 삼위일체론이 위대한 세계 단일군주론에 대한 일신론적 표상과 신적인 가장(家長)에 대한 표상을 극복할 때, 이 땅 위에 있는 지배자들, 독재자들 및 전제자들은 그들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원형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로마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당한 아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며 생명을 창조하는 성령과 결합한다. 삼위일체론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세계의 권력자들의 원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그 원형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전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고난과 고통과 무력과 죽음의 경험을 스스로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전능이 아니다. 그는 사랑이다. 그의 정열적이고 고난을 당할 수 있는 사랑만이 전능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영광은 왕들의 왕관과 승리자들의 승리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그분의 얼굴과 그의 형제들인 억압당한 자들의 얼굴에 나타난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도, 즉 신앙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사귐 속에서도 나타난다.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할 때, 살아 있게 하고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성령은 힘의 축적과 지배권의 절대주의적 사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부활한 아들로부터 온다. 부활은 진보의 정점에서가 아니라 죽음의 그늘 아래서 삶을 불러일으키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경험된다.

의식적으로 기독교적이며 따라서 정치적 일신론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 정치신학은 이 땅 위에서, 또 사회의 정치적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상응을 질문한다. 종교와 정치의 통일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교회를 국가로 해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신앙의 확신과 상응하고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 정치적 선택이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과 상응하는 것은 한 지배자의 단일군주체제가 아니라, 특권과 억압이 없는 인간의 사귐이다. 세 가지 신적인 위격들은 그들이 가진 위격의 특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이러한 삼위일체와 상응하는 것은 그 안에서 위격들이 권력과 소유를 통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상호간의 관계와 서로를 위한 의미를 통하여 정의되는 것이다.

일신론의 하나님은 "세계의 주"이다. 그의 특성은 위격성과 위격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유물에 대한 지배권에 있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이름을 가지지 않고 법적 명칭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세 가지 법적 명칭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세 가지 인격들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서로와 함께, 서로를 위하여 그리고 서로 안에서 현존하는 무한한 삶을 제시한다. 순환으로서의 삼위일체론이 말하는 것을 초기 교회의 신학자들은 세 신적 위격들의 사회성으로 이해하였다. 삼위일체의 영원한 삶에 대한 유비를 표현하는 두 가지 범주가 언제나 있었는데, 그것은 개체적 인격의 범주와 사귐의 범주였다. 삼위일체의 일치성에 대하여 세 인격--한 가족이라는 가족 형상이 즐겨 사용된다. 이 비유는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하나님 형상을 뜻하고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인간의 사귐 속에서 개체성과 사회성 중에서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를 위하여 희생시키지 않고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사고의 수단을 제시한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을 해소하고, 양자를 공동의 근원으로 회복하며, 사회적 개인주의 내지 개체적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서구의 개인주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신론과 연합되어 있었던 반면, 동구의 사회주의는 종교적으로 볼 때, 무신론적 기초를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신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구의 개인주의와 동구의 사회주의는 지금까지 서로 중재될 수 없었다. 개인적 인권과 사회적 인권은 서로 분리되었다. 참으로 "인간적인" 사회를 위하여,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양자의 조화를 위하여 기독교 삼위일체론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⑵ 교권적 일신론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회의 인정을 받는 단일군주론적 사제직의 기본 명제, 즉 한 주교 - 한 공동체라는 기본 명제를 말하였다. 공동체의 이 사제직의 통일성을 이그나티우스는 한 하나님 - 한 그리스도 - 한 주교 - 한 공동체라는 신학적 계급제도를 통하여 확립하였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 같이 주교는 그의 공동체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대변한다. 이렇게 교회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연역하는 것은 분명히 단일 군주론적 일신론을 말한다. 교회의 계급제도는 신적 단일구주체제와 상응해야 하며, 이것을 대표한다. 단일군주론적 사제직의 이론은 사실상 기독교 공동체들의 통일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예언자들을 배제해 버렸다. 이제부터 성령은 교회의 직권과 결부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 직권의 은혜가 되었다. 주교는 그의 공동체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대표하기 때문에 그의 주권을 통하여 공동체의 통일성을 보장한다. 그렇다면 비록 공동체 안에 동의에 근거한 통일성이 결여될 때에도 공동체의 통일성은 보존된다. 동의가 없을 때에는 교회에 복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로부터 추방된다.

단일군주론적 사제직의 이론은 중세기와 19세기의 교황 제도의 신학을 통하여 계속 발전되었다. 신앙과 윤리의 문제에서 교회의 권위를 지키고, 그에게 "통일성의 직분"을 맡기는 것은 한 교회 - 한 교황 - 한 베드로 - 한 그리스도 - 한 하나님이라는 순위로부터 온 것이다. 교황권은 교회의 통일성을 보장한다. 이 권위는 다시 베드로의 사도적 계승을 통하여 보장된다. 베드로의 권위는 마태복음 16장 8절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베드로에게 열쇠를 넘겨준 역사성을 통하여 보장된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공식이 형성된다. 그러나 교회의 통일성과 이 통일성을 위한 교황의 직분을 마태복음 16장에서 정당화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이고,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다는 문제점을 가질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근거가 불충분하다. 역사의 예수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의 베드로를 거쳐 역사의 교황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연속성을 구성하는 것은 예수가 부활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가능한 것이다. 교회의 권위의 근거를 이런 식으로 찾게 되면, 예수의 부활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적 비밀이다.

삼위일체론적인 교회의 통일성 확립을 위한 성서적 근거는 요한복음 17장 20절 이하의 예수의 대제사장적 기도에 나타나 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공동체의 통일성은 하나의 삼위일체론적 일치성이다. 공동체는 아버지가 아들 안에 거하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거하시는 것과 상응한다. 공동체는 하나님과의 사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사귐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동체는 신적인 삼위일체에 참여한다.

교회의 통일성을 삼위일체론적으로 확립하는 것은 단일군주론적인 사제직을 일신론적으로 확립하는 것보다 신학적으로 훨씬 더 타당하다. 전능으로서의 하나님은 교황의 보편적이고 오류가 없는 권위에 나타나고 이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경험되지만, 사랑으로서의 하나님은 공동체에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그들을 함께 용납한 것 같이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는 데서 경험된다. 단일군주론적 일신론은 교회를 계급제도로서 거룩한 주권으로 확립한다. 삼위일체론은 교회를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사귐"으로서 형성한다. 삼위일체론의 원리는 동의의 원리로써 힘의 원리를 대체한다. 권위와 순종 대신에 대화와 의견의 일치와 조화가 등장한다. 교회의 권위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를 스스로 깨닫게 됨으로써 신앙하게 된다. 통일성을 보존하고 관철하는 계급제도 대신에 그리스도 공동체의 형제애가 등장한다. 교회의 통일성을 삼위일체론적으로 확립하는 것은 신빙성 있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제시한다 : "세상이 믿을 수 있도록."

 

 

3. 정치적 인간해방의 길

 

지배적인 정치적 종교의 욕구와 요구로부터 기독교 신학이 해방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해방의 신학도 성립될 수 없다. 또한 기독교적 종교비판 없이는 사회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수가 없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그것이 전파되는 그 사회의 정치적 종교와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사회에서 국가종교의 예식의 의무적 실천을 거부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죄를 짓게 되었고, "무신론자"요 "인류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콘스탄틴 이후 그리고 유럽이 기독교화될 때, 기독교는 사회의 정치적 종교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기독교는 현존하던 국가종교들을 실로 기독교화하였다. 동시에 기독교는 효력을 가진 국시의 표준에 따라 정치화하였다.20)

     현대사회도 정치적 종교를 필요로 하고 또 만들어낸다. 정치적 해석학에 대한 딜레마가 여기서 생긴다. 교회가 시민종교의 한 부분이 되면 될수록, 그것은 그리스도의 정치적 소송에 관한 회상을 더 강하게 억눌러야 하고, 기독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시민종교"라는 사회적 장소로부터 물러날 때, 교회는 사회 변두리의 부적합한 소종파가 되고, 그 자리를 다른 종교들에게 양도하게 될 것이다. 현실적 의미가 없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기독교적 정체성이 없는 사회적 의미를 사회 비판적인 십자가의 신학은 비판한다. 십자가의 신학은 시민종교의 우상을 그 자신의 장소에서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고, 파괴하여야 한다. 사회 속에 있는 시민종교의 자리에서 이러한 종교의 이름으로 한 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을 현재화함으로써, 교회는 사회비판적인 자유의 기관이 된다.21)

     새로운 정치신학이 문제삼는 것은 교회를 우익 혹은 좌익 정치로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상황과 기능을 그리스도의 자유의 의미로 기독교화하는 것이다.22) 만일 교회가 사회를 자유롭게 하는 제도가 되려면, 개인적인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정치적 우상숭배도 철폐해야 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상황 가운데 있는 인간의 자유를 확장해야 하며, 이것은 단지 심리적인 무감정의 기제를 극복함으로써만 아니라 인간을 무감정하게 만드는 정치적 통치제도와 또 종교적으로 신화화된 통치제도를 극복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23)

     지배자의 지배적 종교가 될 때, 기독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부정하게 되며, 자기의 동일성을 상실하고 만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국가도 계급도 없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멸시받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정치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통치는 단지 권리를 박탈하고 무감정적으로 만드는 지배형태와 이 지배형태를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정치적 종교로부터 해방될 때에만 확정될 수 있다.24)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상황은 부자유한 인간의 상황이 파괴되어야 할 악순환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25)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고난의 역사로부터 현대 세계의 악순환에서 해방시키는 정치신학을 전개한다. 악순환의 고리는 바로 가난, 폭력, 인종적·문화적 소외, 산업에 의한 자연 파괴이다. 이런 악순환을 마지막 고리처럼 걸어 잠그는 다섯째 악순환은 무의미와 하나님에 의한 버림받음이다. 이것은 죄책의 악순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으로 인한 해방적 사죄 속에서 분쇄된다. 경제적 사회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인간 소외의 철폐, 자연과의 평화는 악순환으로부터의 해방의 상징이 될 수 있다.26) 권력의 악순환에서 하나님의 현존은 인간적인 존엄성과 책임으로 해방시키는 것으로 경험된다. 소외의 악순환에서 그의 현존은 인간적인 정체성과 인정의 경험 가운데서 인지된다. 자연과의 악순환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자연 간의 평화 안에 현존하신다. 생존의 기쁨을 누리는 일과 무의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의 악순환에서 그는 존재에의 용기를 중재하여 주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의 형태 속에서 나타나신다.27)

 

 

4. 인권과 기독교 신학

 

인권은 사회와 국가의 기독교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인간 인격의 가치는 법과 정치에 대한 제도들에서 그 형태를 나타낸다.28) 그러나 여러 국민들의 공통된 기초요 공통된 이상으로서의 인권의 약점은 불의와 압제를 거슬러 그것을 관철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쉽게 악을 덮는 외투로 오용될 수 있다. 원칙의 선언은 종종 하나의 장식품의 성격을 띨 뿐이고, 오히려 현실에 있는 그 반대 사실을 덮는 데 공헌한다. "자유 세계"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자유가 있는가? "사회주의 세계" 가운데 얼마나 비형제성(非兄弟性)이 있는가? 인권의 실천적 수행은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인간성의 보존이다. 자유의 실제적 수행이란 노예가 된 자의 해방이다. 인권의 일반 선언의 실천적 기능은 그러므로 하나의 혁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권리로부터 이 권리를 남에게 박탈당한 자의 해방의 의무로 바꾸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이다.29)

     구약의 신학적 사상은 야훼가 이스라엘과 함께 엮는 야훼의 해방역사로 시작하고, 이 분이 모든 사물과 모든 민족의 구원자라는 사실은 거기서 비로소 인식된다. 신약의 신학적 사고는 그리스도의 해방자로서의 인식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다음에 비로소 창조교리와 종말론에 이르는 것이다.30)

     기독교 신학은 해방의 신학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포괄적 의미로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해방의 신학은 인간의 신학이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해방의 신학은 미래의 신학이다. 왜냐하면 인자(人子)의 나라는 사람의 인간적 미래이기 때문이다.31)

      성서는 정치적 행위와 고난 속에서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압제받는 자와 죄인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이해된다.32) 병자, 귀신들린 자, 문둥이, 낮은 자, 하나님 없는 자들이 예수를 자기들의 구체적인 고통의 구체적인 해방자로 경험하였다. 예수는 속박받고 압제받고 죄책을 짊어진 자에게 해방자로 경험되며, 그와의 사귐은 질곡과 압제와 죄책에서 구체적으로 해방시킨다.33)

 

 

[주]

 

 

1) 몰트만, 전경연역, 『정치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pp.69-70.

2) 이신건, 『하나님 나라 지평 위에 있는 신학과 교회』(충남: 한국신학연구소, 1998), pp.102-103.

3) 이신건, Ibid., p.103.

4) Ibid., p.118.

5) Ibid., pp.67-68.

6) J. 몰트만, 조성로 역, 『정치신학 정치윤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p.214.

7) 이신건, op. cit., p.68.

8) J. 몰트만, 조성로 역, op. cit., p.214.

9) 이신건, op. cit., p.118-122.

10) J. 몰트만, 전경연 역, op. cit., p.80.

11) 이신건, op. cit., p.122.

12) J. 몰트만, 전경연 역, op. cit., p.81.

13) Ibid., pp.81-82.

14) Ibid., p.82.

15) Ibid., p.82.

16) Ibid., pp.83-84.

17) Ibid., pp.84-85.

18) Ibid., p.85.

19) J. 몰트만, 김균진역,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8), pp.228-242.

20) J. 몰트만, 김균진 역,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충남: 한국신학연구소, 1979), pp.327-328.

21) Ibid., p.331.

22) Ibid., p.333.

23) Ibid., p.334.

24) Ibid., pp.334-335.

25) Ibid., p.323.

26) 이신건, op. cit., p.123.

27) J. 몰트만, 김균진 역, op. cit., p.343.

28) J. 몰트만, 전경연 역, op. cit., p.100.

29) Ibid., p.102.

30) Ibid., p.102.

31) Ibid., p.103.

32) J. 몰트만, 조성로 역, op. cit., p.224.

33) op. cit.,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