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28)

짐승 같은 그대

(2017년 3월 2일)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그의 부드러운 입에서 그렇게 거친 말투가 나올 줄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을 짐승으로 규정한 그도 짐승이거나 사람일 것이다. 그도 짐승이니까 짐승을 알아보거나, 짐승보다 나은 사람이니까 짐승을 알아보지 않았겠는가!

가끔 예수쟁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사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본다. 그도 사탄이거나 하나님이다. 사탄이나 하나님 외에는 사탄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볼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내뱉을 수 있는 이런 말을 우리가 마구 내뱉는다면, 무의식중에 우리 자신을 사탄이나 하나님의 반열에 놓은 셈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중에 누가 너 짐승스러운지는 내가 판단하지 않겠다. 그러나 박근혜는 사람이기보다는 짐승에 더 가까운 듯이 보인다. 자신이 공공연히 한 수많은 약속을 번번이, 그리고 뻔뻔히 어기는 것은 기억력과 책임의식이 전혀 없는 짐승이나 할 짓이다.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범죄를 천연덕스럽게 부인하는 것은 양심과 죄책감이 전혀 없는 짐승이나 할 짓이다. 만약 그가 진정 사람이라면, 사람의 두뇌를 아직 제대로 못 갖춘, 아직도 사람으로 제대로 진화하지 못한, 아직도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도 짐승이거나 사람일 것이다. 그들도 짐승이니까 짐승을 알아보거나, 짐승보다 나은 사람이니까 짐승을 욕심대로 부려먹고 있을 법하다.

나도 혹은 짐승이 아닐까?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여전히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만약 짐승이라는 말이 인간을 전혀 닮지 않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동물을 일컫는 용어라면, 우리는 모두 짐승과 동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존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처럼 초인적인 기적을 행하거나 별난 행동을 하는 인간이 된다기보다는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수많은 인간들이 오늘도 그를 따른다. 만약 그가 오직 “초인적인” 존재라면, 우리가 그를 우러러보기는 하겠지만, 도저히 닮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를 예배할 수는 있겠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도 없다.

오늘 급박하게 전개되는 한국사회의 소용돌이를 보면서, 새삼 이런 고민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짐승인가, 동물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우리 주위에도 짐승처럼 자신의 욕망과 아집과 무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이웃을 괴롭히고 해치는 존재들이 수없이 발견된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명목적인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아직도 미개한 짐승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가 많음을 오늘 새삼 발견한다.

만약 내가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춰보기를 게을리 한다면, 만약 내가 독서와 사색을 기피하고 본능만을 추구한다면, 만약 내가 동료 피조물에 대한 연민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다면, 만약 내가 내 자신과 내 가족과 내 집단과 내 국가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다면, 나는 짐승으로 추락한 셈이다.

그래도 짐승은 짐승으로서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짐승으로 추락하는 사람은 추하고 비열할 따름이다. 아마 그는 지옥도 받아들이지 못할 존재일 것이다. 천국에도 짐승이 없지만, 지옥에도 짐승이 들어간다는 말은 여태 들어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