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32)

한 지식인의 죽음

 

 

(2017년 9월 6일)

 

지식인과 종교인의 평균 수명은 가장 긴 편이란다. 스트레스가 가장 적은 탓이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들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고통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내 친구 목사들 중에도 질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적잖다. 삶과 목회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를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

어제 전 연세대 교수 마광수 씨가 우울증 끝에 자살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지식인들이 자살한 경우가 적지 않지만, 원인은 다양하다. 그중에는 사회적 타살의 성격이 짙은 경우도 많다. 마 교수의 자살에도 그런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비록 그가 매우 야한 소설을 써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지만, 음지 속에 가려진 성적 욕망을 지식인으로서 솔직히 표현했다는 점에서 나름 공헌을 남겼다고 평가된다.

물론 예술과 외설, 표현의 자유와 공적 책임의 관계는 영원한 논쟁거리다. 이를 학문적 논쟁과 공적 토론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사회적 비난과 배제, 법적 처벌로 끌고간 것은 어리석었다. 그를 재판한 자가 얼마 전에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사퇴한 자였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여하튼 이 때문에 그의 문학적 공로마저 가려진 것은 유감스럽다. 그는 최초로 윤동주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공로를 남겼다고 한다.

시대를 너무 앞서거나 거스르는 자는 항상 사회적 비난과 박해를 받아왔다. 이 점을 그가 미리 각오했는지는 잘 몰라도 그런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 같다. 그에 관한 선호도와 온갖 판단을 떠나서 같은 인간과 지식인으로서 연민과 아픔을 느낀다. 그가 누운 자리에는 더는 그런 비극이 없기를, 그래서 그가 편안히 잠들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