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37)

 신학대학의 위기

(2017년 11월 18일)

 

 

어제 저녁에 나는 후배 교수로부터 “신학대학원 입학 지원자가 상당히 감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 전부터 이미 예견해 오던 일이라 그리 놀라지 않았다. 대학 입학생의 급격한 감소와 교육부의 정원감축 정책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쇠퇴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신학대학을 졸업해도 일할 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현실에서 신학대학 지원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신학대학은 신학생을 과도하게 배출해 왔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장로회신학대학은 총회의 결의로, 그리고 고신대학도 자발적으로 입학정원을 줄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속한 우리 교단과 대학은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몇 해 전에 신학대학원 지원자 감소 문제로 회의하는 자리에서 나는 정원 감축을 과감히 제안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새로운 과정(Mdiv.3)을 신설함으로써 잠시 해결되는 듯이 보였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는 신학대학도 허리를 더 강하게 졸라매야 하고, 더욱 분발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다. 입학 정원이 줄어드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소명감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부분의 교회가 이미 자본주의, 경쟁주의, 정실주의로 운영되는 마당에 소명감만을 마냥 강조하는 것은 우습고 헛된 짓이다.

몇 해 전에 후배 목사들이 우리 학교에 와서 고맙게도 장학금을 기부한 다음에 커피를 마시던 자리에 내가 우연히 합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목사들은 신학생들이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신학생들에게 소명감을 강조하지 못한 내 자신의 잘못을 잠시 되돌아 본 다음에 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여러분들 중에서는 소명감 때문에 더 작고 더 어려운 지방 교회로 자발적으로 내려간 자들이 있느냐? 우리가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는 마당에 신학생만을 어찌 꾸짖을 수 있느냐?” 내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자녀 교육과 입신과 출세 등의 목적으로 “작은 교회에서 더 큰 교회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보고 있음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목회자들은 과연 소명감으로 목회하고 있는가?

신학생들이 지금도 소명감 속에서 신학대학을 지원하고 있지는 잘 알 수 없다. 이것을 검증할 제도가 전무할 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이를 중요하게 생각해 오지 않았다. 더욱이 신학대학은 이제 신앙의 논리로만 운영되지 않는다. 교육부의 무리한 대학평가정책에 주눅든 탓이지는 몰라도, 신학대학도 이미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어 오고 있음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대학이 일반 학과를 대규모로 늘리면서부터 이미 신앙의 논리는 완전히 사라진 것과 다름이 없다. 형식적으로는 학생들에게 기독교 과목을 가르치고 예배도 드리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직 자본과 권력의 논리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신학생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생생히 목격해 왔다. 더욱이 대학의 행정과 관심이 일반 학부에 온통 집중되면서, 신대원 학생들은 철저히 차별과 푸대접을 받아 왔다. 이런 현실에 탄식한 나머지 점점 더 많은 제자들이 우리 교단과 대학을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기막힌 현실을 되돌리기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우리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완전히 항복하고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았을까? 근본적인 회개와 결단이 없다면, 한국교회와 함께 신학대학도 서서히 침몰할 것이다. 나는 곧 학교를 떠날 예정이지만,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다. 오호라, 곤고한 우리를 누가 구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