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41)

노회찬의 죽음을 애도하며

(2018년 7월 24일)

 

 

노회찬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은퇴 준비를 위해 잠시 중단했던 아침 단상을 다시 써본다. 어제 나를 통해 비보를 접한 아내는 노무현의 갑작스러운 서거 때와 마찬가지로 슬픔을 못 이겨 눈물을 흘렸고, 나는 남자답게(?)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페북과 신문을 보니, 여전히 그의 비보에 대한 애도와 추도,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나는 한 정치가의 죽음을 놓고 왈가불가할 자격과 능력이 전혀 없다. 그와는 달리 나는 지금까지 줄곧 입으로만 정의와 진보를 외쳐온 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잡다단한 정치와 심리 현상을 제대로 분석할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현실을 제대로 해석하기는커녕 현실의 모순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무기도 갖추지 못한 순진한 이상주의자이며, 모조품 무기를 들고 허상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다. 그래도 글도 꽤 큰 힘을 발휘한다고 확신하는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이른바 출세가도를 줄곧 달려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민중 속으로 내려가서, 말과 행동으로 진보적인 이념을 실천하려고 투쟁했던,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존경스러운 정치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처럼 그의 죽음도 매우 아깝고 슬프게 여겨진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뜨겁고 순수한 이상이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서 무참히 좌절된 것을 무척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몰염치한 정치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상대로 행동하려고 했던 그답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단호히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 속에 그런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입게 될 정치적 타격보다는 진보 세력과 특히 정의당이 입게 될 타격을 예상하고 매우 괴로워했을 것이고,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이런 비극만은 막겠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자살을 결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인다. 아마 노무현도 그랬을지 모른다.

여기서 나는 2천 년 전에 예수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신학자로서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 본다. 그의 죽음은 분명히 타살이었지만, 성서가 증언하는 대로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죽음의 성격을 분명히 띠고 있었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부활의 경험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더욱이 그의 죽음의 의미는 매우 퇴색하고 그의 영향력도 급속히 소멸했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의 부활을 예견하거나 예언했든 아니했든, 그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도, 아니 바로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더 강력하게 앞당기려고 시도했다고 나는 믿는다. 예수는 물론 자신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온 수많은 비난과 누명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골고다 언덕으로 뚜벅뚜벅, 아니 비틀비틀(?) 걸어갔다.

부활 경험으로 인해 그의 비범한 삶과 특히 그의 고귀한 희생적 죽음은 더 아름답게 회상되었고, 완전히 망각되거나 억압될 뻔했던 그의 삶과 특히 그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더 찬란한 조명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가 일으켰던 하나님의 나라 운동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가장 강력한 변혁을 가져왔다. 지금도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예수처럼, 그리고 전태일을 비롯한 수많은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처럼 노회찬도 자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자신의 죽음을 통해 희망의 돌파구를 더 힘차게 열어준 위대한 정치가로 길이 기억될 것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품었던 아름답고 위대한 이상을 싸늘한 무덤 속에 묻어 두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우리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비록 그는 한순간에 갔지만, 그의 꿈은 영원히, 그리고 더 활활 타오를 것이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간 그를 품에 안아 주시고 한없는 위로와 상급을 내리시기를, 그리고 깊은 슬픔 속에 잠긴 유가족과 동지들과 친구들에게도 크나큰 위로와 새로운 희망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 예수의 나라가 곧 오리라,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