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46)

 

 

우리말을 통해 본 한국인의 기질

 

 

(2019년 11월 14일)

    

 

나는 분명히 동양인이고 한국인이지만, 음식과 언어를 빼고는 완전한 서양인이다. 사유 방식과 생활 방식에서 나는 완전히 서양인으로 변해 버렸다. 내가 가장 한국적이라고 여기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는 – BTS를 제외한다면 - 음식(된장과 김치 등)을 먹고 우리말을 쓸 때다. 한국 음식은 나의 건강에 가장 유익하며, 한글은 나의 말하기와 글읽기와 글쓰기에 가장 유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말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며 아끼려고 유난히 애쓴다.

그렇지만 우리말은 이미 외국어와 상당히 섞여 버렸고, 지금도 줄곧 변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영원한 우리말과 영원한 국문법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내가 신기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만큼”이라는 말의 쓰임새의 변화다. 예전에는 우리는 이 말을 “정도, 분량”을 말하기 위해 썼지만, 요즘은 대개 “이유”를 말하기 위해 쓴다.

오늘 아침도 어느 방송인이 이런 말을 썼다. “레바논과의 축구 경기에서 2:1로 패한 적이 있는 만큼 방심하면 안 된다.” 이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즘의 방송 언어에서 “때문”이라는 말이 왜 완전히 사라졌는가? 이유를 말하는 상황에서 모든 방송인들과 출연자들이 오직 “... 만큼”이라는 말만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래토록 우리가 써왔던 “때문”이라는 말이 왜 순식간에 사라졌는가? “... 패한 적이 있기 때문에”라고 하지 않고 왜 굳이 “... 패한 적이 있는 만큼”이라고 쓰는가? 더욱이 “만큼”이라는 말은 이유를 말하는 다른 모든 말까지 송두리째 삼켜 버렸다. 예로 들자면, ... 때문에 ... 기에, ... 므로, ... 까닭에 따위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말은 영원하지 않고 늘 변한다. 그래도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리 약속하거나 합의하지 않았을 텐데, 왜 순식간에 우리말을 바꿔버렸는가? 방송인들은 그렇게 결정하거나 그런 지시를 받았는가?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만큼”만을 쓰고, 다른 아름다운 말은 한꺼번에 용도폐기 해 버렸는가? “만큼”이 “만”(영어의 only와 독일어의 nur처럼 한정하는 말)을 순식간에 거의(!) 대체한 점도 참으로 이상하다.

나는 여기서 우리말의 변천사보다는 한국인의 기질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것을 통해서도 인간의 특징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누가 어느 날 “만큼”이라고 쓰니 매우 멋져 보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멋진 말을 쓰니 다른 사람도 그렇게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쓰게 되었을 법하다.

이 사실을 통해 나는 한국인이 여전히 집단의식과 모방의식이 강하며, 그래서 주체 의식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또 다시 발견한다. 나의 설명이 그럴듯한가, 아니면 틀렸는가, 아니면 다른가? 오늘 아침에 지혜로운 분이 나의 고민과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신다면, 그분에게 정말 두둑이 사례하고 싶다.
내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고민한다고 비웃어도 어쩔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한글은 결코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될 민족의 가장 소중한 유산과 나의 민족적 자존심의 가장 큰 근원이고, 최현배 선생님의 말씀처럼 가장 고귀한 목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