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50)

 

 

 신학교수의 신학을 검증한다고?


  (2022년 2월 21일)

 

 

방금 성결광장에 올라온 기사를 읽어 보았다. 먼저 급히 떠오르는 나의 생각을 올리며, 차분하게 정리된 주장은 나중에 나의 유튜브에 올려볼까 한다. 얼마 전에도 나는 서울신대 교수 채용을 앞두고 진심어린 충고를 담은 동영상을 올린 적이 있었다. 비록 나는 은퇴했지만, 서울신대는 나의 영원한 모교이며, 내 생애 대부분을 보낸 자리였으며, 은퇴 후에도 늘 기대하고 걱정하고 후원하는 단체다. 더욱이 나는 죽을 때까지 신학자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신학 논의와 검증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고,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오늘 성결광장에 올라온 기사는 얼마 전 모 강사가 모 교수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총장과 총회장에게 신학 검증을 요청한 사건 때문에 발생한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글이다. 그의 비판이 과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 여부는 여기서 성급히 가리지 않겠다.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며, 괜한 오해와 악의적인 비판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당장 내가 말하고 싶은 주장은 이렇다. 신학교수는 학생과 교회에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과 교단의 한 일원이라는 점 때문에 교단의 검증을 항상 받아야 한다. 신학교수는 목사안수, 학문 활동, 채용 과정, 재심 과정 등에서 이미 수차례 검증을 받았다. 그럼에도 교수는 구성원이 요청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신학 검증을 받을 수 있고, 종종 받게 된다. 은퇴한 교수도 평생 신학 검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서울신대의 역사에서 나만큼 신학 검증 요구를 자주 받아온 신학자도 드물 것이다. 내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했다는 모함과 오해를 받고 목사안수를 받지 못한 이래 줄곧 이런 검증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도 이미 유튜브에 올린 적이 있다. 그밖에도 내가 부활을 부인했다느니, 자유주의자라니, 등등 온갖 비난을 받아왔고, 재직 시절에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로부터도 내사를 받았다.

대부분의 신학 검증이 사악하고 불순한 정치적 정략에서 발생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교수의 신학검증은 항상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신학검증을 받을 때마다 나를 공격하거나 중립적이거나 침묵하는 교수와 총장의 신학도 왜 검증하지 않은지가 늘 의아하고 궁금했다. 내가 나의 문제를 확대하여 모든 교수의 신학을 문제삼고 물타기하거나 정적의 뒷다리를 걸고 넘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가치하고 번거롭기도 했지만, 야비하고 정치적인 부작용이 늘 따르기 때문이며, 내 인생을 이런 일로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 없다. 모 교수의 신학을 정말 제대로 검증하겠다면, 차제에 모든 교수들(강사 포함)의 신학도 제대로 검증해야 공정한 처사가 아닐까? 왜 유독 특정 교수의 신학만을 검증을 하려는가? 어떤 사람이 투서했기 때문이라면, 나도 한번 모든 교수의 신학 검증을 요구하는 투서를 보내볼까? 학교는 나의 투서를 순수히 받아들여줄까?

치열한 신학 논쟁과 정치 투쟁의 후유증이 심히 걱정되어, 더 정확히 말해, 불똥이 누구에게 튈지 몰라서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요구를 단번에 묵살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수를 신학 검증대에 세울 용기와 자신이 없다면, 그리고 정확하고 공정하고 분명한 신학잣대를 분명히 꺼내들 수 없다면, 신학검증이라는 위험한 칼을 함부로 빼들지 말아야 한다.

 신학 검증은 일차적으로 치열한 신학 토론과 기나긴 논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적인 신학검증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매우 과격하거나 이단적인 신학이 아니라면, 교수의 신학검증은 결코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만약 꼭 그래야 한다면, 차제에 모든 교수를 검증대에 세울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만약 그럴 용기와 준비가 안 되었다면, 이번의 신학검증도 - 나의 경우처럼 -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 것이고, 결국에는 혼탁하고 불순하고 더러운 정치 싸움으로 변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