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교회 헌당식

 

 

(2019년 6월 3일)

 

 

사랑의 교회 헌당식에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거나 축하해 준 사실에 실망하는 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대중적 인기와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 정치적인 목사들은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맥그래스와 같은 유명 신학자까지 거기서 축사하는 장면에 실망하여 그를 혹독히 비판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사랑의 교회, 특히 오정현 목사가 얼마나 많은 의혹과 비판을 받고 있는가?

하지만 누가 그에게 사랑의 교회와 오정현의 문제를 시시콜콜 알려주었겠는가? 외국인에게 우리 문제를 제보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일이다. 몰트만이 종종 조용기 목사를 자주 만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두 사람은 실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예컨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경험과 신앙(학)적 관심이다.

특히 두 사람은 희망과 미래, 성령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는 몰트만이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는 친밀한 사람이 되었다. 여의도 교회는 세 차례 몰트만을 초빙하여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그때마다 내건 주제(성령, 희망, 종말)는 서로가 오래 공유하는 주제였다.

그러나 맥그래스가 왜 거기에 갔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내국인과는 달리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외국인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그러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외국인에게 한국교회의 문제를 알려 주지 않았을 것이다. 몰트만과 맥그래스가 더 높은 명성과 더 많은 보수를 획득하려고 그럴 리는 만무하다.

나도 몰트만이 조용기를 만나는 것이 불편하지만, 제자로서 그를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몰트만은 조용기 신학의 문제점과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조용기의 신학이 점점 더 확장되고 교정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몰트만이 조용기에게 끼친 공헌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다.

나도 두 차례 초청되어 논찬할 때마다 남이 할 수 없는 쓴 발언을 용감히 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내가 어찌 그곳에 가서 소신껏 발언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나를 불쾌히 여길 만한 그들이 나를 자주 초청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교정하든 말든, 그들이 남의 목소리에 관대히 열려 있다는 증거일까?

만약 남과의 만남과 대화를 완전히 단절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통해 배울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좀 더 냉정하게,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말 : 만약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가 외국의 유명 신학자를 초청하여, 자신의 잘못을 가리고 자신의 공적을 미화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목사의 빗나간 야욕일 것이다. 이를 모르고 순진하게(?) 이용당하는 외국 신학자를 비난하기에는 우리의 처지가 훨씬 더 딱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