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십자가?!

 

(2019년 10월 6일)

 

 

 

 

어제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 등을 외치며 서초동 사거리에 모인 촛불대회가 뜨거운 화젯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제 각기 다양하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사람은 대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는 성향이 강하고, 낯선 현상을 자신의 고정관념에 최대한 맞춰 주관적으로, 또는 아전인수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것도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터득한 인간의 방어적 본능일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사례가 바로 야당의 해석일 것이다. 이른바 “관제 데모”라는 틀을 덧씌워서 촛불 집회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바로 야당 인사들의 오랜 관행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나도 어제 처음으로 그곳에 참여했지만,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자발적으로 온 것으로 보였다. 촛불 시민을 조폭이라고 부른 해석은 다른 해석을 압도하는 가장 저질스러운 해석이었다. 그 자신이 조폭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가장 강하게 끄는 기이한 해석은 바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서초 사거리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거대한 십자가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런 평범한 현상을 기독교의 십자가에 빗댄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단 기술의 발전이 놀랍다. 아마 드론을 하늘 높이 띄워 촬영한 것 같다. 촬영자의 탁월한 조종 기술도 칭찬할 만하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여기서 굳이 예수가 졌던 십자가를 연상할까? 그는 분명히 기독교인일 것이다. 예전에도 자연 현상 속에서, 예컨대 하늘의 뭉게구름이나 눈이 녹은 땅에서 예수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았다.

어제의 십자가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기에 여기에 굳이 그 어떤 종교적 해석을 추가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거나 광신적인 태도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어떤 현상 속에서 예수의 흔적이나 예수의 임재를 발견하거나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신앙적 결단이거나 신비한 고백일 따름이며, 그래서 외부인이 함부로 왈가불가 평가할 성격의 것은 아닐 것이다.

정작 중요한 신학적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골고다 언덕에 단 한번 세워졌다가 영원히 사라진 일회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를 단지 믿고 신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계속 재현되거나 모방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는 단지 과거의 인물인가, 아니면 오늘 현재의 인물이기도 한가? 그의 십자가는 오직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오늘 새롭게 고백하고 경험해야 하는 것인가?

아마 이런 선택을 두고도 기독교인들 사이에 보수와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가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다. 어떤 해석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모든 해석은 단순히 지적인 영향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운명을 좌우하는 강력한 힘을 떨친다. 과거의 나는 앞의 해석을 무턱대고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뒤의 선택을 더 옳다고, 더 성서적이라고, 그리고 예수의 진정한 의도에 더 가깝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