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야릇한 "전가 교리

 

 

“바른 믿음”을 주장하며 “바르지 않은 복음”을 추적하고 고발하며, 심지어 웨슬리(안)의 가르침도 이단이라고 주장하던 정이철 목사가 이번에는 전통적인 “전가 교리”를 물고 늘어졌다. 특히 그의 비판은 김병훈 교수을 겨냥한다. “김병훈 교수는 ‘그리스도의 고난’(십자가)와 ‘율법의 순종’(율법선행, 무죄한 삶)이 두 개의 수레바퀴가 되어 사람에게 죄의 사면을 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피’와 ‘그리스도의 율법의 선행’이 죄의 사면과 칭의의 원인이 되었다는 가르침이 없다. 대체 성경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다시 살펴서 찾아보기를 바란다. 과연 사도 바울과 김병훈 교수, 누구의 말이 복음인가?”

이른바 십자가의 피(죽음)로 인한 죄의 사면 또는 의의 전가는 특히 바울 신학에 뿌리를 둔 종교개혁자들이 오래 전에 가르쳐 왔고, 오늘날에는 개신교회 중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장로교회가 유달리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개혁주의 전가 교리”라는 두꺼운 책을 쓴 신호섭 박사만이 아니라 이 책을 추천한 탁월한 신학자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정이철의 결기가 여전히 대단하다.

나도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감당한 사건으로 무턱대고 믿어왔고, 이것을 믿어야 의롭게 된다는 “칭의론”을 종종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 교리에 대한 의혹과 질문은 신학대학 시절에 이미 싹트기 시작했다. 만약 예수의 죽음이 형벌대속의 죽음이라면, 우리가 왜 이를 굳이 믿어야만 효력을 얻는지 그 당시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예컨대 내가 남의 밭의 과일을 도둑질하다 주인에게 들켰고, 이를 배상할 능력이 없는 나를 대신하여 부모님이 주인에게 배상했다면, 내가 이 사실을 알든 모르든, 주인은 나에게 처벌과 배상을 더는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부모님의 배상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늘 불안할 수는 있지만, 주인의 문책과 배상은 더는 받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실질적으로 나는 죄책에서 해방된 것이 아닌가?

용서와 해방의 기쁜 소식을 만인에게 알리는 것이 복음 전도라면, 이 소식을 만인에게 어서 빨리 알려 주어야 한다. 누가 용서와 해방의 기쁜 소식을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그가 알든 모르든, 그가 믿든 안 믿든, 죄책(형벌) 방면은 객관적으로 이미 일어났다. 나의 지식과 믿음 여부와 상관없이 해방과 화해는 일어난 셈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 예컨대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들도 이런 논리에 근거하여 만인화해를 가르쳤다.

그러나 이런 교리는 참으로 이상야릇하지 않은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죄를 지은 적도 없었던 나의 죄를 2천 년 전의 예수가 어찌 미리 대속할 수 있는가? 나의 운명이 어찌 나와 전혀 상관없이 마구 결정될 수 있는가? 나의 죄책이 어찌 나의 책임과 전혀 무관하게 해결되는가? 내가 할 일은 고작 믿는 것밖에 없는가? 그리고 믿는 것이 나의 구원에 실질적으로 무슨 영향을 미치는가? 고작 마음의 위로 외에는 없지 않은가!
어떤 형태로 일어났든, 다시 말하면 예수의 피(죽음)로 일어났든, 예수의 율법 순종으로 일어났든, 나의 죄책이 예수에게 전가되었고 그 결과로 예수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었다거나 내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서 벗어났다는 교리는 실제로 예수의 가르침과 전혀 무관하다. 이런 점에서 바울과 종교개혁자들의 전가 이론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론이라고 본다. 매우 불편하더라도, 매우 괴롭더라도, 이 사실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정이철은 ‘그리스도의 피’와 ‘그리스도의 율법의 선행’이 죄의 사면과 칭의의 원인이 되었다는 가르침이 성경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렇게 그에게 되묻고 싶다. 예수가 언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게 한다고 말했는가? 예수가 죄인을 용서했을 때, 누구의 피를 요구했는가? 예수는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파는 장사꾼을 내몰았을 때, 무고한 동물의 피 흘림을 통한 속죄 이론도 함께 내몰지 않았는가? 예수는 죄악 해결이 아니라 고작 죄책 해결(사죄, 칭의)만을 위해 이 땅에 왔고 피 흘려 죽었다는 말인가?

죄를 용서받기만 하면, 만사가 해결되는가? 그러면 숱한 죄악과 참혹한 고통은 누가, 어떻게, 언제 해결해 준단 말인가?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예수의 죽음 전에 태어났든 예수 죽음 후에 태어났든, 예수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모두가 의롭게 된다는 이런 교리야말로 나는 가장 값싼 은혜, 아니 완전한 가짜 복음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나에게 왜 바울(하나님?)의 저주가 여태 임하지 않는가? 내가 틀렸는가, 바울이 틀렸는가?

정이철 : 교수님들이 복음에 철학과 사변을 섞으면 하나님이 예뻐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