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 3:1-5
2006년 6월 25일 : 현풍제일교회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두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편지다"(3:2)라고 말한다. 모든 만물은 그저 무심하게 있지 않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만물은 온갖 사연을 주고받는다.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천둥이 치는 소리도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사연을 싣고 있다. 식물들도 온갖 자태와 향기를 통해 사연을 전달한다. 동물들도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서 서로 사연을 주고받는다. 동물들은 기쁨과 슬픔을 다른 동물에게 알린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오래 전부터 온갖 사연을 주고받았겠는가! 편지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 되었다. 동물은 대개 소리를 통해 다른 동물에게 사연을 알린다. 사람도 소리로 사연을 전할 수 있다. 어린 아기는 아직도 소리로 자신의 뜻을 알린다. 위급한 전쟁이 일어난 경우에는 종종 산꼭대기에 불을 피우거나 연을 날려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종종 심부름꾼을 보내어, 또 어떤 경우에는 비둘기를 날려 소식을 전하곤 했다. 전화기가 발명된 후부터 사람들은 편지를 잘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가 발명된 후부터는 젊은 사람들은 다시 새로운 편지, 즉 전자 편지를 많이 쓰게 되었다. 좌우간 시대와 방법은 달라도, 지금도 사람은 여전히 편지를 쓴다. 왜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는가? 다른 사람에게 사연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바울은 성도를 편지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성도란 소식을 전달하는 자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슨 소식을
전달하는 편지인가?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편지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소식을 적어놓은 편지
종이와 같다. 그리스도께서 무엇으로, 그리고 어디에 편지를 기록하셨다는 말인가?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그리스도께서는 먹이 아니라 영으로, 그리고 육신이 아니라 마음에 편지를
쓰셨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가 씌어져 있는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있는가?
이 편지에는 무슨 사연이 들어 있는가? 구원의 비밀이 들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유대인이든 이방이든,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비밀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모든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고백이 담겨 있다. 왜 이것이 비밀인가? 인류의 역사 이래로 가장 크고 놀랍고 기쁜 이 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비밀을 널리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목숨까지 바쳤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똑같은 사명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성도는 한결같이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비밀은 성도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 비밀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죄의 노예가 되어 신음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죄의 저주 아래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들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시급한 일은 없다. 그들을 구원하는 것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는 방법은 없다. 바로 이 일을 위해 바울은 부름을
받았고, 모든 성도들도 이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바울은 가르친다.
편지의 만족은 오직 편지를 쓴 자로부터 나온다. 편지 종이와 봉투가 아무리 화려하고 귀하다 하더라도, 편지의 가치는 결코 종이와 봉투에 있지 않다. 편지가 편지다운 것은 오직 그 안에 담겨진 귀한 사연 때문이다. 편지를 아무리 화려한 봉투에 넣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비싼 잉크와 아무리 아름다운 종이를 쓴다 하더라도, 만약 편지가 전달하는 사연이 부실하거나 사연을 전혀 전달하지 않는다면, 편지는 편지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편지의 가치와 만족은 오직 종이와 봉투가 아니라 편지에 쓰여진 내용으로부터 나온다. 이처럼 성도의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하다 하더라도, 그리고 성도가 세상 사람으로부터 아무리 큰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만약 그리스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전혀 전달하지 않는다면, 성도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리고 성도가 세상이 주는 기쁨으로 아무리 즐거워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만약 그 마음에 그리스도를 담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성도를 친히 편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무슨 만족이 있겠는가?
편지의 진정한 만족은 편지 내용으로부터 오듯이, 우리의 진정한 만족도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우리의 가치와 만족은 오직 우리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명에 충실한가 아니 한가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과연 그리스도의 편지인가? 여러분의 말과 행위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다면, 여러분의 입과 행동은 저절로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편지가 될 것이다. 여러분의 입술은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악기가 될 것이고, 여러분의 행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는 연애 편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면, 여러분의 입술은 거짓과 험담을 쏘아대는 독화살이 될 것이고, 여러분의 행동은 남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 칼과 총이 될 것이다. 어디 가든, 무엇을 하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하는 사명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거룩한 가치를 잊지 말라. 그리스도의 편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만족을 무시하지 말라. 여러분의 사명과 가치와 만족은 오직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일에 있음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