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안에 굳게 서라
사 7:1-9
2003년 10월 12일, 현풍제일교회
오늘의 본문을 읽어보니, 아하스가 유다를 통치할 때에 다윗 가문의 한 사람이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여 쳐들어 올 것이다"라고 말하니, 왕과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고 합니다. 강력한 외적의 침입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금번 한국 땅을 강타했던 최대의 태풍으로 인해 많은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뿌리가 뽑힌 채 여기저기 나동그라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태풍 때문에 불행히 귀한 목숨과 재산을 잃은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희생의 크기로 말하자면, 태풍은 전쟁과 가히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도 여러 차례 전쟁을 겪었지만, 전쟁의 태풍이 한번 휘몰아치면, 양민과 군인, 어른과 아이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합니다.
몸소 전쟁을 겪은 기성 세대들은 북한의 조그만 위협에도 금방 전쟁이 터질 것처럼 벌벌 떨게 됩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은 전쟁의 고통을 몸소 겪지 않았기 때문에 웬만한 위협에도 태연자약합니다. 지나친 공포감도 문제지만, 지나친 방심도 문제입니다. 만약 사람에게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모한 행동을 당하다가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두려움이 지나치게 되면, 사람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으며, 급기야는 자살하기에 이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고난의 파도가 밀려올 때, 사람마다 이를 대처하는 방법이 제 각기 다릅니다. 평소에 큰 고난을 겪지 않았거나 성격이 급한 사람은 허둥지둥, 안절부절 하다가 대개 고난의 파도에 떠밀려 갑니다. 여러 번 어려움을 겪어 보거나 성격이 차분한 사람은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면서 파도와 싸웁니다. 아마 이번에 처음으로 겪은 물난리 속에서도 이런 저런 모습들이 나타났을 겁니다. 사람의 성품은 고난 중에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법입니다. 위기를 당할 때, 침착한 성품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늘 침착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의 자녀들도 매사에 침착하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뛰어넘는 담대한 용기는 큰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담대함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의 자녀에게도 과외 공부만이 아니라 담력 훈련의 기회를 자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과거의 고난을 통해 현재의 큰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앞으로 견뎌야 할 더 큰 고난을 위한 준비로 여겨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도 항상 온상 안에서 곱게만 키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찬바람도 일부러 맞게 하여 다가올 더 힘든 고난을 위해 대비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감당할 분량을 넘어서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막강한 적군 앞에서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침착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개미처럼 밀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앞에서 침착함과 단련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대개의 군인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쳤거나, 살기 아니면 죽기로 총을 마주 쏘아대다가 총탄이 떨어진 후에는 중공군의 발에 무참히 짓밟혔을 것입니다.
외적의 침임을 앞두고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던 아하스를 위해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두려워 말며, 낙심하지 말라." 현대어 성경을 보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군대보다 압도적으로 막강한 적이 쳐들어온다는데,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침착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군이 사람의 눈에는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부지깽이에 불과하기 때문이요,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적군의 의도가 달성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적군의 승리를 인정하시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주인이요, 그래서 인생의 모든 성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이번 전쟁에서는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지켜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침착하게 행동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환난 중에 사람이 의지해야 할 마지막 피난처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앙과 불신앙은 분명히 갈립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깊은 신앙과 얕은 신앙은 뚜렷이 갈립니다. 바로 여기서 진실한 신앙과 형식적인 신앙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려면, 바람에 날려 보고 짠물에 넣어보아야 하듯이,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은 시련을 당해 보아야만 분별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만, 평안할 때만 하나님을 믿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난 중에 하나님을 더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굳게 믿을 때에만, 우리는 항상 꿋꿋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침착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할 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한 여행자가 벼랑 가장자리에 갔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는 간신히 매달렸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날 좀 구해줘요."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느니라. 너의 하나님이다." "당신이 거기 계신다면,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구해 주마.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물어 보겠다. 넌 나를 믿느냐?" "주님, 제가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 아니라 새벽 기도회에도 나갑니다. 헌금은 몇 달러씩 합니다." 주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가 정말로 날 믿느냐?" "제가 얼마나 당신을 많이 믿는지 모르실 거예요. 저는 당신을 믿어요." "좋아! 그렇다면 네가 붙들고 있는 그 나뭇가지에서 이제 손을 떼어라."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거기 위에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이 사람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인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과 신실하심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니라 거짓 믿음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가 어느 날 플로리다에서 뉴욕으로 집회를 인도하러 가기 위하여 비행기를 탔는데, 큰 비행기에 혼자 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종사 옆 좌석에 앉아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조종사가 필 목사에게 구명대를 입을 것을 권하니, 필 목사는 벌벌 떨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마침 비행기가 필라델피아 상공을 날 때, 필 목사는 필라델피아에도 친척이 있으니까 여기에 내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종사는 필 목사의 목적지가 뉴욕이니까 거기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필 목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비행기는 뉴욕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필 목사는 미안한 얼굴로 "어떻게 뉴욕까지 올 수 있었느냐?"고 조종사에게 물었습니다. 조종사는 껄껄 웃으면서 "오랜 시일에 걸쳐 여러 번 경험을 했으니까 그렇게 운전할 수 있었던 것이고, 또 한 가지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 필 목사는 자기가 벌벌 떨었던 것이 믿음이 없었던 탓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이 운전하시는 비행기를 탄 승객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도중에 "여기 내려 주세요, 저기 내려 주세요"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직접 핸들을 잡고 운전하시고 계시니, 우리는 오직 주님을 의지할 따름입니다. 바로 이렇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환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세상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니 바로 이런 사람을 우리 주님은 크게 칭찬하시고, 큰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설령 실패와 환난과 죽음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그를 더 큰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항상 여러분을 인도하시니, 아니 주님 안에서는 실패가 없으니,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아니 주님 안에서는 죽는 것도 오히려 복된 것이니, 세상에서 그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담대하십시오. 믿음 안에 굳게 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