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본서는 본인이 서독 튀빙엔(Tübingen)대학에서 몰트만(J. Moltmann) 지도교수의 지도 아래서 작성한 박사학위 논문(Dissertation) 'Entwicklung und Gestalt der Ekklesiologie Karl Barths'(칼 바르트의 교회론의 발전과 형태, 1987)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바르트의 신학은 19세기와 20세기의 신학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며, 마치 거대한 수원지와 같아서 그 이전의 신학조류들을 비판적으로 수렴한 후 엄청난 폭포수를 만들어 내어 현대신학에 큰 활력과 자극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가 제기한 문제들과 남긴 공헌들을 모르고서는 현대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서거한 지 어언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신진학자들도 계속 그의 신학을 여러 각도로 재평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의 신학은 한국에도 50년대 후반부터 소개되기 시작하여 많은 사랑과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본인의 판단으로는 그의 신학적 면모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다. 그의 주요저서들은 거의 번역되지 않았으며, 그의 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한국학자들의 저서가 희소한 형편이며, 게다가 그의 방대한 신학체계 전체를 그의 전 생애에 걸쳐 해석할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하는 저서는 하나도 없다. 다행히 최근에 그의 생애와 신학을 요약적으로 소개한 책들이 몇 권 번역되어 나온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고 신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고 본다.

본서는 바르트의 신학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매우 포괄적 주제인 '교회론'을 중심으로 전 생애를 통한 그의 신학의 발전과 변천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미 독일유한 기간 동안에도 생활문제, 목회 등의 이유로 만족할 만큼 연구에 신경을 집중키시지 못했고, 귀국 후에 한국말로 보다 더 잘 써보겠다는 의욕은 오히려 더 조악한 한국상황으로 말미암아 충족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이 졸저를 내놓게 된 것은 부족한 본인을 물심양면으로 성원해 주신 분들에 대한 보답의 일환으로 조그만 결실을 한국교회에 바쳐야 하겠다는 의무감, 신학생들에게 손쉬운 교재를 제공해야 하겠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은 신학자보다는 강의실에서 만날 신학생들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그러므로 학위논문의 복잡한 논쟁이나 각주들은 생략하고, 가급적 바르트의 정신세계를 충실히 객관적으로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곳이 있다면, 그것은 번역의 어려움 외에도 바르트의 신학의 심원성, 방대성의 탓이다. 본인은 학위논문의 내용을 적절히 가감하고 일부는 수정하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전체윤곽은 그대로 살리려고 애썼다.

바르트의 신학의 시대구분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본서의 시대구분도 다소 불가피하게 인위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르트의 신학을 발전과 수정의 관점 아래서 추적하지 않으면 그것을 단순화하고 왜곡하기 쉽다. 그의 신학을 뭉뚱그려 표어화하지 않고 세심한 변화를 밝혀 내면서도 특징별로 요약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하나의 조그만 시도로서, 또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으로서 기여하리라 본다.

본서가 바르트처럼 자기갱신과 신학갱신을 추구하려는 자들, 특히 한국교회의 갱신에 헌신하려는 자들에게 조그마한 격려를 줄 수만 있다면, 본서의 의도는 만족하게 충족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신학은 결코 교과서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신학과 교회를 갱신하기 위한 독창적 참고서로, 새로운 탈출과 고백을 촉구하는 예언자적 목소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것은 바르트 자신의 의도이기도 하다.

이 졸저가 나오기까지 배후에서 성원하신 분들의 은혜, 특히 가난한 남편을 묵묵히 내조하고 두 아들을 돌보면서 나의 길을 기쁘게 함께 걷고 있는 아내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하시고 수고하신 '성광문화사'의 이승하 장로님과 직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한다. 본인은 이 졸저를 나의 스승이신 몰트만 교수님께 바친다. 본인은 그분의 학문뿐만 아니라 그분의 인품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보낸다. 이 결실은 그분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1989년 7월 20일

부평에서 저자 이 신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