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신학 (일어판)

 이신건, 박창수 역, YOBEL.,Inc, 2023

 

 일본어 출판에 부치는 말

 

먼저 나의 저서 ‘조직신학입문’에 이어서 ‘어린이 신학’도 일어로 번역되어 출판된다니, 매우 기쁘고, 참으로 감사하다. 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지금까지 서로가 많은 것을 주고받았다. 특히 기독교 신앙은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본의 지도자들과 저서들이 한국에 많이 소개되었다. 한국의 신학자들 가운데는 일찍이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한 분들이 적지 않았으며, 그들을 통해 일본의 신학 저서들이 소개되거나 번역되었다. 특히 ‘우찌무라 간조’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지금도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애독서가 되고 있다.

내가 속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설립자들(김상준, 정빈, 이명직)은 일본 동경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신학생을 양성하고 교회를 이끌었다. 한국성결교회의 역사를 말할 때마다 나는 ‘나카다 주지’라는 이름을 자주 들었다. 몇 해 전에 그에 관한 저서가 박창수 군의 번역에 힘입어 한국에 소개되었다.

나의 스승 몰트만의 저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Der gekreuzigte Gott)에서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 소개되고 있음을 보고, 나는 한편으로는 매우 놀랐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신학의 눈부신 발전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렇게 일본으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은혜를 입었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하여 일본교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랍고, 또 감사한가!

요즘에는 매우 발전한 한국의 신학도 다른 나라에 소개되곤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민중신학’이다. 박창수 군의 번역의 노고에 힘입어 이제 나의 저서도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한국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리라고 확신한다.

먼저 부족한 나를 크게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이 책을 번역하느라 노고를 아끼지 않은 박창수 군에게 뜨거운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정확하고 쉬운 번역을 위해 도움을 주신 분들과 책의 제작을 위해 수고하신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어린이처럼 매우 작고 연약한 이 책이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안겨줄 것을 기원한다.

 

2023년 8월 16일,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 서재에서

이신건 씀

 

img1.gif

신학교 강의와 지역교회 순회 봉사 등 한편으로 한일간 신학교류를 염두에 두고 틈틈이 번역활동을 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의 지원에 힘입어 『조직신학 입문: 그리스도교 신학이란 무엇인가』(은사 이신건師저서)에 이어 2년간 공들여 온 『어린이 신학: 하나님을 어린이로 생각하기』 일본어판이 이번에 출판되었습니다.

한일의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난 이 번역서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귀히 읽히기를 바라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 주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의 복음을 들고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리고 마음을 다해 선교에 동참해 주시는 믿음의 형제자매들께, 또한 사부 이신건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더욱 성심껏 선교에 매진하기를 다짐하나이다.

img2.gif

 

일본 크리스찬 신문(2024년 2월 28일) 日本クリスチャン新聞 書評

 

『어린이 신학』 서평

 

하마 가즈히로(濱 和弘) 목사

일본홀리네스교단 고가네이 그리스도교회/ 사가미하라 그리스도교회 담임목사

 

본서는 첫 부분에서 ‘어린이’가 받는 학대라고 하는 현상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이 비참한 현실에 하나님은 어떻게 대응하고 계실까 라는 신론 논의를 마주보게 한다. 이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묘사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 약하고 힘없고 무지한 ‘어린이’의 모습을 띤 하나님이다.

저자는 이 약하고 힘없고 무지한 하나님을 묘사해 내면서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며 지금까지 존재해 온 힘과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계관을 그려 낸다. 저자는 그 정반대의 세계관 가운데서힘과 권력을 지향하는 세계에 맞서서 살며 수난의 죽음에 이른 예수 안에서 가장 작은 자이며 학대당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며, 그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모습을, 게다가 인간의 본래 모습인 ’하나님의 형상‘이 성장하여 성숙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렇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자의 나라다” 라며 ’어린이‘를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신다.

본서는 교의학적인 내용을 갖는 책이지만, 동시에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지배와 억압의 구조를 갖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반성을 촉구하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님을 이 세계를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 이해하며 이로부터 ’죄의 용서‘를 주제로 하여 구축된 종래의 신학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초구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하여, 페미니즘적 이항(二項)구조가 아닌 어른(大人)과 ’어린이‘의 이항구조로 이해하는 ’어린이 신학‘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 신학은 지성을 기반으로 점차 확대되는 성숙한 어른들 사이의 논쟁이기에 그렇고, 보다 확실한 힘과 권력에 의한 지배구조는 어른과 힘없는 ‘어린이’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에 대하여 압도적으로 약하며 무력하고 힘없는 존재이다.

저자는 이 『어린이 신학』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 자신이 힘과 권력을 지향하는 자가 되어 있지 않은지 예리하게 물으며, 우리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지향해야 할 모습을 본서를 통해 정중하게 그려내고 있다.

 크리스천신문으로부터 의뢰받은 서평 800자. 그 800자로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매우 부족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나름의 정리 방식으로 서평을 했다. 크리스천신문 지면과 인터넷판에도 게재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링크를 붙여 소개하고 있다. 기꺼이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한국의 신학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껏해야 민중신학 정도밖에 몰랐다. 그렇기에 나의 의식 가운데는, 한국 기독교는 실로 열심있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많고 존경받을 만한 나라이지만, 신학적인 토양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식이 자리하고 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크리스찬신문이 내게 이신건 선생의 [어린이 신학: 하나님을 ‘어린이’로 생각하기]에 대한 서평을 의뢰하여, 본서를 읽고 엄청 놀랐다. 지극히 수준높은 신학적 내용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한국의 신학  상황을 새롭게 듣고서,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 한국의 신학 사정은 꽤 튼실한 기반 위에서 매우 진보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인식을 새롭게 했다.

이렇게 새로워진 인식으로 본서를 반복해서 읽자, 본서의 신학적 수준의 높음에 대하여 과연 그렇구나 하고 줄곧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알기 쉽게 쓰여는 있지만, 알기 쉬운 표현 배후에 있는 문제에 대한 통찰, 그리고 문제의 본질에 예리하게 다가서는 사유(思惟), 그리고 이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 신학적 사색은 실로 깊이가 있다.  

 

“어린이다움을 기뻐하는 신학을 향하여”


구보키 사토시(久保木 聡) 목사

일본 나자렌교단 오사카 모모다니교회

 

.“이봐요, 왜 아이를 조용히 시키지 않나요!! 아이를 제대로 좀 키우세요!”

크게 꾸짖는 목소리가 교회당에 모인 부모와 아이들의 마음을 찌른다. 이에 기죽은 그들은 교회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윽고 이 젊은 부모와 아이들은 교회를 향해 발을 떼지 않게 된다. 한소리 퍼부은 사람도 악의가 있었을 리 없다. 정숙하고 질서 잡힌 교회 모습을 바랐을 게다.

단지 내가 접한 사례일 뿐이지만, 그렇게 한소리 내뱉는 본인이 일상 가운데 자기 내부의 어린이다움을 억누르고, 자신의 어린이성을 열어 보이는 걸 너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먼저 아동학대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학대하는 부모가 흔히 비난을 받지만, 실은 그 부모 자신도 학대받으며 자란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학대하는 게 정당하다는 게 아니다). 자신의 어린이다움을 건전하게 허용할 수 없게 된 꺄닭에 학대 행위에 이르고 만다.

우리도 자칫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안에 있는 어린이다움고 어린이성을 보려고 하지 않기 십상이고, 가벼이 여기기 쉬울 지도 모른다. 이 책의 특징은 철두철미, 어린이 됨에 착목하고, 어린이 됨을 중요시하는 데 있다.

어린이는 학대받기 쉬운 약자이며, 힘 없는 존재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함과 수난 가운데서 자신을 참된 하나님으로 계시하신다“라고 주장하는 바르트, 본회퍼, 몰트만의 견해를 소개하고, 이어서 하나님이 남성성과 여성성, 혹은 부성과 모성을 포함하는 양성적인 분임과 동시에 성을 초월한 분이라고 주장하는 몰트만, 류터, 러셀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82쪽). 그리고 ”여성 신학을 대변하는 신학자들은, 어린이들의 해방에 대해서도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어린이들의 해방에 기여하는 신학 체계를 세우고 있을까?“(82~83쪽) 라고 묻는다. 이에 페미니스트 신학자들과 대화하며 『어린이 신학』의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예수 안에서 보는 어린이성을 다루고, 제4장에서는 어린이성에서 착목한 신관(神観)에 대하여, 제5장에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어린이에 대해 다룬다. 제6장에서는 어린이성에 기초한 종말 이해가 진술되며, 마지막인 제7장에서는 어린이다운 영성에 대하여 다룬다. 즉, 이 “어린이다움”을 소중히 하면, 어떠한 신앙 생활이 펼쳐져 가게 될 것인지를 묘사한다.

서평자는 이 책을 번역한 박창수 씨를 한 초교파적 집회에 설교자로 초빙한 일이 있다. 신학적으로 총명하며 매우 지적으로 말하는 측면과 함께, 이 책이 어린이의 특징으로 말하는 순수함, 소박함, 솔직함, 겸손함, 놀이하는 마음을 겸비해 지닌 인격자인 동시에, 또한 정열적으로 설교하는 것을 보며, 매우 놀랐다. 박 씨가 은사인 저자의 『조직신학 입문』에 이어 이 책을 번역한 것에서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이 책 『어린이 신학』은 박 씨 본인의 삶의 방식 그대로인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어린이다움을 더욱 받아들이고, 교회가 약함 가운데 있는 “어린이들”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어린이 신학』에 대한 소감

고가와 가즈오(古川和男) 목사
일본장로교회 이케노베 그리스도교회 담임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는 것 만으로는 가부장권을 가속하고, ‘어머니’로 생각하는 것도 불충분. 하나님을 ‘어린이’로도 볼 때의 다이나믹한 하나님 이해•신앙 이해•인간관계의 쇄신을 전개한다.
   서론은, 한국의 아동학대(육아 방기,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과도한 간섭•속박)로부터 시작한다.‘해방신학’의 새로운 관점으로 명확하고 시원하게 다루는 부분이 아주 많다.현대 신학과의 만나게 되기도 하고, 저자가 가진 시인 같은 감각으로 선택한 언어에도 매료된다. 기대 이상일거다.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이’를 너무 이상화•전형화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단순하고 솔직한 어린이” 혹은 “학대받아 가엷은 어린이”, 어느 한 쪽을 본다면…
  “어린이들은, 성장하면서 어린이다움을 잃는다”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어린이란 건 성장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존재다. (어린이에 대한 걸 어떤 틀에 끼워 넣고 싶어하는 사회적 압력이, 하나님 나라와는 정반대일 거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굳게 사용하는 ‘목사님’ 혹은 ‘~~~선생님’과 같은 상하 관계가 일신(一新)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며, 이게 쇄신의 첫걸음이 아닐까.
  마지막 장에서 소개하는, 어린이의 영성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책은, 정통적인 본회퍼적 훈련(성서읽기, 기도, 찬양, 봉사)이며, 여기에는 그 자체의 실천 의미가 있지만, 더욱 단순히 “어린이와 놀기, 어린이들의 시설에서 일하기”, “신체 감각을 소중히, 감정을 표현하기”라고 하는 접근 방법도 있을 거다.
  무엇보다, ‘어린이 신학’이 ‘어린이들의 의견’을 담지 않으면 안 된다. 리얼한 어린이의 모습이 좀더 보고 싶기도 하고, 가부장권을 비판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서 몸을 굽혀 다양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어 보고 싶다. 본서의 출판기념회가 열린고 한다면, “너무 어린 자녀 분들을 동반해 오는 건 좀 그러니 고려해 주세요”라고 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ㅋㅋ), 이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
  ‘어린이 신학’은 “어린이들을 위한 신학, 어린이들에게 전달되는 신학”, “어린이들이 즐겁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처럼 남을 사랑하하도록 인도하는 신학교육”으로 성숙되면 좋겠다. 이것은 바로 나 자신의 과제인 것이다. 책 말미에는, 일본인 여성목사(야마모토 마리코)의 보고서, 경애하는 사이토 이소미 짱(남성)의 서평이 부록 첨부되어 있어서 기쁘다.
  번역자는, 그리운 니가타성서학원에서 가르치고 있어서 친근감 뿜뿜. 표지 디자인도 느무 좋구!!(이렇게 ‘어린이처럼’ 기쁨을 표현해 둡니다. ^^) 야스다 마사토(출판사 대표) 씨, 새로운 양서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