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여기에 수록된 대부분의 글들은 본인이 독일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에 어수선한 사정 중에서 지금까지 여러 지면이나 모임에서 발표한 글들이다. 이 기간 동안에 본인은 참으로 착잡한 심정과 모진 다짐을 갖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나의 상황을 직접 반영하는 글들이 아니지만, 그것이 주는 시련과 도전에 나름대로 응전해 보려고 발버둥치면서 태어난 글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앞의 두 글은 본인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정리해 본 글인데, 처음부터 딱딱한 글이 나오기에 독자에게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실은 선동적 문구나 짜릿한 구호보다 끈끈한 내용 속에 더 숨겨져 있는 법이다.'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는 본인이 작년에 서울신대의 강사직으로부터 해방된(?)이후에 여러 선후배들과 함께 내용에 걸맞지 않는 '화요신학서당'의 문패를 내걸고 스위스의 신학자이며 실천적 목사인 라가츠의 책 '예수의 비유들-그의 사회적 복음'을 읽고 공부한 것 중에서 3편만을 골라서 번역한 것이다. '청년을 향한 주님의 뜻'이라는 설교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러 지면과 장소에서 발표된 글들이다.

그 글들은 어떤 통일된 계획 아래 쓰여진 것들이 아니고 타인의 요청에 따라서, 혹은 본인의 의도에 맞춰 그때그때 쓰여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제목과 목차는 본인의 구상과 배열에 따라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 내용은 우연하게, 혹은 내적인 논리에 따라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주제와 관련된다.

그런데 본인이 유독 '하나님의 나라'의 주제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에는 분명한 의도가 깔려 있다. 이 주제는 예수님의 선포와 인격, 아니 기독교의 본질과 사명을 푸는 핵심열쇠이고, 교회의 사활과 미래는 이 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독교의 역사에서 이 주제만큼 심하게 변질, 왜곡되거나 푸대접받아온 것도 드물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에서 이 주제는 초창기부터, '예수-천당'의 구호가 보여주듯이, 아예 죽고 난 다음에야 올라 갈 하늘 저편의 어느 화려한 처소, 즉 천당으로 내세화, 피안화, 영성화되어서 실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역기능을 수행해 왔다. 예를 들어 개인주의적 구원신앙, 현실외면 내지 현실도피를 정당화하는 몰역사적, 아니 반역사적 신앙의 고착화, 어두운 역사에 무책임적으로, 아니 반동적으로 기생해 온 교회의 타락 등등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잘못된 외래적 복음전통을 무분별하게, 아니 의도적으로(목회적으로? 이기적으로? 타협적으로?...)수용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인은 진단한다.

교회갱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높다. 그런데 교회 갱신이란 낡고 맥빠진 전통과 형식을 깨고 복음의 알맹이로 거듭 거듭 돌파해 들어가서 거기로부터 새로운 도전과 능력을 받는 데서부터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인은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심과 열정을 가진 자들의 확신과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의도의 일환으로 이 소책자가 나오게 되었다.

이 글은 결코 완전하거나 완결된 것이 아니고 본인의 사고의 단편들을 주어 모은 것이다. 이 글은 독자로 하여금 제 나름대로 기독교의 본질과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주위를 살펴보도록 초대하려는 나약한 시도에 불과하다. 특히 이 글은 기득권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들에게는 질타의 도전으로 느껴질 것이고, 자기갱신과 교회갱신, 나아가 민족갱신에 헌신하려는 자들에게는 조용한 격려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기에 이 글은 어쩌면 낡은 사고와 습관에 고착된 기성세대보다는 진실과 이상에 목마른 청년세대에게 더 유용한 글이 될지도 모른다. 때마침 성청이 이 책의 발간을 떠맡겠다고 자임하고 나선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미흡한 별난 섭리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본인은 지금 어중간한 나이에 속해 있지만 청년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교회와 민족의 미래를 걸고 있다. 비록 딱딱하고 생소한 글이나마 청년에게 새로운 비전과 용기를 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리고 출판을 담당한 글로리아 기획에, 특히 배후에서 물질적·정신적으로 후원한 여러 벗님들께 진정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나라이 임하옵소서!

 

1989년 7월 5일, 부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