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판에 부치는 말 

 

 

우리는 바야흐로 21세기의 문지방에 와 있다. 20세기는 정말 전쟁과 혁명, 변혁으로 얼룩진 시기이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었고 러시아 혁명(1917년)과 중국혁명(1949년)등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도 지구는 곳곳에서 분쟁과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도 해방에 이은 국토분단과 동족상잔, 철권독재와 민중항쟁으로 점철되고 있다. 그 외에도 세계적 산업화의 추세, 신제국주의의 발전, 생태계의 파괴, 자동차홍수와 공해, 마약과 사회악 등이 복잡한 양태 속에서 지구를 주름살잡고 있다. 이제는 소련과 동구권의 급격한 변화가 우리의 미래를 바꿔놓고 있다.

이 세계는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동구에서는 경제적 민주주의(공산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운동이 확산되어 가고, 서구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자본주의)를 기초로 하여 경제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려는 운동이 이미 뚜렷한 현상으로 부가되고 있다. 결국 두 운동은 궁극적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로 지향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21세기는 민중이 중심이 되는 민주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목표에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시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유, 정의, 평등, 평화 및 화해의 나라라고 한다면, 확실히 그 나라는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 주 예수의 나라가 이 땅에 곧 오리라, 오리라!

그렇다면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나라의 전위대로서 그 나라가 돌입해 오는 문지방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나라에 대해 문을 꽁꽁 걸어 잠궈놓고 잠자고 있는가? 아니면 그 나라가 지나간 공터에서 뒷북치며 노닥거리고 있는가? 우리는 이중적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교회를 흔들어 깨워야한다. 현세에서는 온갖 독재, 비리, 물질의 이권을 다 누리고 내세에서는 찬다가겠다는, 조금도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장사치처럼 영악한 이기주의에 절어 있는 한국교회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성서에서 증언되고 영위되는 생생한 하나님의 나라, 지금 도도히 다가오는 이 세계의 미래, 희망의 나라에 눈을 뜨게끔 만들어야 한다. 이젠 장님이 장님을 양산하는 성장에서 다같이 눈을 뜨는 성숙으로 회개해야 한다. 이 땅에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고 자신의 바리새적 본성을 보게 해야 한다.

이 책은 원래 '나라이 임하옵소서!'라는 이름을 갖고 매우 소박한 동기에서 태어났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에 한국교회의 갱신에 미력이나마 돕고 나 스스로도 되돌아보는 의미에서 여기저기서 발표한 글들을 모아 가까운 분들과 나눠 읽기 위해 각박한 살림살이에서 적지 않는 돈을 털어 비매품으로 초라하게 만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몇 분이 성금을 희사하고 이 책을 자료집으로 내겠다는 성청(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청년회전국연합회)에게 가져간 책값보다 적은 비용을 부담시켜서 한정 부수로 펴 낸 것이다. 많지 않는 부수인데다가 찾는 사람들(특히 신학도)이 조금씩 늘어나 금방 동이 났다. 그래서 다시금 교정하고 내용을 조금 가감하여 새 이름을 붙여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글로리아 기획, 성광문화사 및 도와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증보판인 이 책에서는 필자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 특히 종교사회주의의 요소를 더 부각시킴으로써 이데올로기의 와중에서 독자들에게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도전적 발언을 던지려고 한다. 종교사회주의는 20세기 초엽에 유럽에서 일어나 확신되었고 사회전반에 걸쳐 폭넓은 도전과 영향을 끼친 기독교적 세계관(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은 인간적·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념과 유사하지만 어떤 틀에 박힌 정형을 제시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사회적 도전 앞에서 성서의 예언적 사회주의를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사회, 특히 교회에 충격과 동력을 주려고 한 일련의 신학운동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를 매개하려는 시도로서 아직도 열려있는, 특히 하나님의 혁명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이념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의 시대에서 새롭게 성찰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과제이다.

필자는 신학자일 뿐이기에 어떤 모범적 사회상을 답안으로 제시할 능력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필자의 확신으로는 성서의 내용으로나 역사의 방향으로도 미래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교회는 이 세상 속의, 이 세상을 위한 교회로서, 그리고 신학은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비판적·실천적 학문으로서 이러한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아니 한국사회도 이러한 도전 앞에 서 있다. 정치적·경제적 민주화, 자주화와 통일, 화해와 평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민족과 교회는 기독교적 사회주의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필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미래와 교회도 믿는다.

온 세상이 그의 나라를 믿게 되기를!

나라이 임하옵소서!

 

1990년 1월 19일, 부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