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책을 쓴 동기는 조직신학을 평신도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 써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이런 동기를 가지고 쓴 책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여전히 딱딱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내용과 형식의 면에서 참신한 시도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평신도들은 성경공부에 친숙한 반면에, 그래서 성경구절을 많이 알고 있는 반면에 조직적인 사고의 훈련이 거의 없고, 그래서 그들의 신학지식은 단편적이고 때로는 편협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민족통일을 전망하고 세계화를 바라보는 이 즈음에 신학자들에게는 분명히 평신도의 눈을 더 넓게 열어 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런 동기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필자는 마치 평신도 앞에 서서 강의를 하듯 강의형식의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딱딱하고 지루한 조직신학적 문장을 쉬운 일상적 예화로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소재의 빈곤으로 어떤 경우에는 예화를 전혀 쓸 수 없었습니다.

이런 고충을 덜기 위하여 필자는 미리 각 내용의 구도를 삼원형으로 구상했습니다. 즉 모든 내용을 삼원형식 혹은 삼각구도로 설명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삼위일체적 구도를 제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모든 주제를 삼원형에 맞추려고 한 필자의 의도의 결과이지만, 삼위일체 신앙 때문이든 아니든, 필자는 숫자 ‘3’이 주는 매력에 매혹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구도가 이 책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기회가 닿는 대로 언젠가 이 책을 만화로 옮겨볼 작정입니다. 평신도 중에서도 특히 청년이나 어린까지 읽을 수 있도록 더 쉬운 조직신학 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입니다. 이미 시중에는 온갖 종류의 책이 만화로 나오는것을 볼 때, 만세지탄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이 호응을 얻게 된다면, 꼭 ‘만화로 읽는 조직신학’을 쓰고 싶습니다.

이 책은 필자가 강단에서 떠나와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해서 쓴 것입니다만, 내용과 형식을 다듬기 위해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귀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에 참여한 김은득, 김신일, 신영화, 김종철, 주석현 님과 함께한 기쁨과 추억을 이 책에 길이 새겨 놓고 싶습니다.

가급적 쉽게 쓰려고 했지만 우둔하여 어렵게 표현한 부분, 지식이 천박하여 상식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부분에 대해서 널리 채찍을 부탁합니다. 상식조차도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나마 이런 글들을 통해서라도 교회의 기둥과 같은 평신도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신학과 신학자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직신학입문’에 이어 ‘조직신학강좌’가 한 쌍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두 책을 서로 보완해서 읽어주신다면,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앞의 책은 주로 이론적인 글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면, 뒤의 책은 주로 신앙적인 글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서로 간에 다소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만, 표현과 양식만큼이라도 새롭게 쓰려고 애써 보았습니다.

애초의 욕심만큼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이 고통 중에도 넉넉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과 따뜻한 사랑으로 부족한 공간을 채우는 아내와 넘치는 위로로 격려한 형제들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96년 12월 19일 부천 성지산 아래서 저자 이신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