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성령은 무슨 일을 합니까?

 

앞장에서 우리는 "성령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도 역시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성령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성령이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앞장에서 이미 말했듯이, 성령은 하나님의 자유와 초월성을 뜻하기 때문에, 성령이 하는 일을 인간이 제대로 파악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아무리 신통한 자라도 바람을 손으로 잡은 양 "이것이 바람이다"며 보여 줄 수 없듯이, 아무리 신령한 자라도 성령을 잡은 양 “성령을 보여주겠다”며 과시할 순 없습니다. 손에 붙잡힌 바람은 이미 바람이 아니듯이, 인간이 장악한 성령이라는 것도 전혀 성령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재주가 있는 자라도 날아가는 비둘기를 땅에서 잡을 수 없듯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자라도 성령을 붙잡을 순 없습니다. 설령 재빠른 솜씨로 비둘기를 붙잡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손 안에서 주물림당하는 비둘기는 조종당하고 죽기 십상입니다. 인간이 붙잡았다고 하는 성령은 결국 자유한 영이 아니라 인간의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소유했다”고 과시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며,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를 시험해야 합니다"(요한일서 4:1). 우리는 거짓의 영, 인간의 영, 세상의 영,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을 경계해야 하며, 말씀에 부합하지 않은 성령체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활동에 입각하여 성령을 올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이 하는 일을 무엇입니까? 성령은 어떻게 활동합니까? 성령이 하는 일을 세 차원(창조, 해방, 구원)에서 살펴 보기로 합시다.

 

1. 성령은 '창조 활동'을 합니다  

성령은 무엇보다도 창조의 영으로 나타납니다. 5장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하나님의 창조활동에는 영의 강력한 활동이 함께 했습니다. 즉 태초의 창조에 어머니와 같은 성령은 혼돈스러운 우주를 품고 생명을 창조하였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입김)으로도 생겨났습니다(시편 33:6).

인간의 생명도 역시 하나님의 입김으로 말미암아 생겨났습니다(창세기 2:7). 그러기에 생명은 하나님의 영의 선물입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능자의 기운 덕분으로 생명을 부여받았고, 생명을 누리고 있으며, 또 하나님의 영 안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과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도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성되고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의 기운(영)을 거두시면, 언제라도 흙(티끌)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창조의 영인 성령은 단지 만물과 생명을 창조하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창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또한 새 창조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황무지를 낙원으로 만들고(이사야 32: 15 이하, 44:3),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립니다(에스겔 37장). 하나님의 영이 내리면, 닫혔던 하늘이 열려서 메마른 땅도 생기를 되찾고, 생명체들도 원기를 회복합니다(요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 세운 자도 바로 성령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과 앞으로 죽을 우리도 성령 안에서 다시 살 것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영, 새 창조의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계 안으로 가까이 왔고, 지금도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미래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미래를 앞당겨 오는 희망의 영인 성령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권능 가운데서 이미 병든 자가 치유되기 시작하고(마태복음 12:28), 죽음이 극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오고 있습니다"(요한복음 3:3 이하).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는 것을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출생과정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났듯이, 또 다시 한번 성령의 자궁에서 태어나야 한다(重生)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출생은 ‘위로부터의 출생’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자는 이미 여기서 영생을 얻었고, 영생을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새 세계, 새 생명을 창조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시에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창조자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Veni, Creator Spiritus)

        

2. 성령은 '해방 활동'을 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의 영으로서 창조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자연적인 존재’인 것 못지 않게 창조세계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회-구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성령은 잘못된 사회구조적인 악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활동합니다.

 1)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을 가장 괴롭힌 구조악의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군주적, 독재적 정치구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인권을 평등하게 누리며 살도록 창조된 인간은 지배욕을 추구하고 온갖 권력의 우상을 섬기는 인간들에 의해 늘 굴종된 삶을 강요당합니다. 이 때에 성령은 이러한 구조악을 방관하지 않고 역사 안으로 개입하여,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하여 활동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하나님의 영은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갇힌 자를 놓아줍니다(이사야 61:1-누가복음 4:18).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종은 진리로 공의를 베풀고, 공의를 세웁니다(이사야 42:1-4). 성령은 인간을 일방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사랑으로 섬기게 하는 사귐의 영이기 때문에, 인간들 간의 진정한 사귐을 왜곡시키고 인간을 도구화-노예화하는 모든 종류의 억압과 지배를 철폐합니다.

 2) 또 하나의 구조악은 물질의 신을 섬기면서 빈익빈-부익부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경제적 구조악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권력의 독점만이 아니라 물질의 독점도 철폐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자유의 영은 부자들을 물질적 탐욕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됩니다(이사야 61:1-누가복음 4:18). 성령이 옴으로써 경제적 구조악이 무너진 가장 극명한 예는 바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의 교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은 결과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매우 인상깊은 기적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집에서 떡을 떼며 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사도행전 2:44-46)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 불평등과 물질우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바로 성령이 가장 강하게 활동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처럼 ‘강제적인 전체주의’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은총의 전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또 하나의 구조악은 문화적 차별과 소외의 구조악입니다.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독점은 문화적 차별의 원인이요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즉 독재자들과 부자들은 인종, 계급, 문화, 성(性)의 차이를 악용하여 독재와 독점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독재와 독점을 이용하여 계속적으로 차별을 재생산합니다. 그러나 한 성령으로 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 자들 가운데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 종이나 자유인,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습니다”(갈라디아서 3:28). ‘사랑의 영’이기도 한 성령은 이기적인 인간을 고립과 독선으로부터 해방시켜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남을 위해 자신을 개방시켜 줌으로써, 남들의 고통과 기쁨에 연대하게 하며, 남들과의 사귐 안으로 인도합니다. 심지어 성령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성령의 최고 은사(선물)이라고 불립니다(고린도전서 13장).

 

3. 성령은 '구원 활동'을 합니다

 앞에서 성령이 창조와 해방을 위해 활동하는 일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성령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이기도 하므로, 성령은 특히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격적으로 활동합니다.

 1) 중생(重生)의 영: 먼저 성령은 인간의 거듭남을 위해 활동합니다. 육신과 자기 자신, 자신의 공적을 의지하는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닫혀 있는 인간입니다. 특히 정욕과 불신,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죄에 빠진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이기성을 깨뜨릴 수 없으며, 죄짐(죄책)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약에 빠진 인간이 스스로 마약을 끊을 수 없고, 죄의 결과로 감옥에 들어간 인간이 제 힘으로 자물쇠를 풀고 나올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오직 바깥으로부터, 위로부터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짐을 지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완고해진 인간은 스스로 이 은총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도리어 은총에 완강히 저항하고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럴수록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교만하게 되고, 또 그래서 더 많은 죄를 짓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폐쇄성과 교만이 깨뜨려지는 것은 오직 성령의 활동 때문입니다. 인간이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의 문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요한복음 3:5). 이처럼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성령이 인간 구원을 행하는 첫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성화(聖化)의 영: 성령은 단지 인간에게 신앙과 용서를 선사하는 영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과 정의로 충만한 삶,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는 영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단지 인간을 죄로부터 씻을 뿐만 아니라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고린도전서 6:11).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다시 태어난 인간은 마치 방금 태어난 어린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이 된 그는 이제부터 성숙해 가고 장성해 가야 합니다. 안팎으로부터 오는 죄의 힘과 싸워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기 위해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늘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만으로는 죄의 막강한 세력에 맞서 늘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곁에 와서 연약한 우리를 돕고, 우리가 기도할 힘조차 상실할 때에 우리 대신에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며, 정의를 위해 겪게 되는 온갖 고난을 견디게 하며, 시련 중에서도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도록 북돋아 줍니다. 이처럼 성령은 거듭난 인간으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돕는 영, 성화의 영이기도 합니다.  

 3) 소명(召命)의 영: 성령은 단지 인간을 거듭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영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고 그 뜻을 실천하도록 돕는 영, 소명의 영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삶과 거룩한 삶으로 부름받은 인간은 또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름받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신앙의 분량에 따라 온갖 은사들을 주어서, 하나님과 교회와 인간과 세계를 위해 섬기게 합니다. 성령이 주는 자유는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 성령은 죄와 죄의 세력으로부터는 자유하게 하지만, 자유하게 된 인간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또 그와 함께 교회와 인간, 세계로 인도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진리를 이 세계 안에서 증거하고 실천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이 세계가 늘 새롭게 창조되고 더욱 더 해방되고 더 욱 더 큰 구원을 이루는 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헌신, 봉사하게 합니다.

 4) 신유(神癒)의 영: 그리고 성령은 단지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게 할뿐만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돕고 상처를 치유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힘입게 증거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고, 온갖 질병을 고쳤습니다(마태복음 12:28). 이러한 활동은 오늘 날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 안에서 계속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인간의 내면(마음)을 기쁨과 평화, 의미로 충만케 할뿐만 아니라 인간의 외면(몸)을 더욱 온전케 함으로써, 현세에서 이미 영생을 미리 맛보게 합니다. 비록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주어지는 건강과 치유의 기적은 현세에서 벌써 영생을 완전히 주지는 않지만, 이 기적은 장래에 있을 영생의 보증이 되고, 부활의 징조(徵兆)가 됩니다.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은 더욱 의롭게,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된 그리스도인은 더욱 온전하게 되어야 합니다(마태복음 5:48).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더욱 온전하게 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영화: 榮化)로 나아갑니다(고린도후서 3:18).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영화로운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까지 늘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이러한 날까지 성령은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