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에게는 언뜻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우리에게 교회란 바로 ‘교회당’(교회건물)을 뜻하는 말로 종종 이해됩니다. 나는 가끔 교회로부터 '교회론'에 관해 강연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이 때마다 나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교회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단어를 말해 보라고 말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교회당’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에게 교회라는 말은 교회당이라는 단어와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우리는 종종 교회당에 가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교회당은 교회의 필수적인 요소는 될지언정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닙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3세기가 되도록 독자적인 교회당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덜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혹심한 박해 속에서 여기저기로 피해다니면서 참된 신앙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교회당 다음으로 많이 응답하는 대답은 '예배드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교회당, 교회건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건전한 대답입니다. 교회의 생활이 대개 예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예배를 빼놓고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가 교회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예배가 교회활동의 핵심이라고 하더라도, 예배는 많은 교회활동 중의 한 부분일 따름입니다. 이것은 마치 심장이 인체의 필수적인 핵심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인체는 심장 외에도 수많은 다른 기관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러의 사람들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먼저 '목회자'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생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거의 전적으로 목회자의 지도력에 의해서 설립, 유지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와 목회자를 동일시하는 생각은 장점과 함께 단점도 갖고 있습니다. 즉 목회자 때문에 교회에 가거나 교회를 좋게 생각한다면, 바로 그와 똑같은 이유로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신앙인들의 모임, 사귐 혹은 공동체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 생각할 때, 마치 교회의 창설자가 신앙적이고 사교적인 신앙인들인 양 착각이 일어나기가 쉽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인 모임, 사귐이 없다면, 분명히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오늘 날에도 우리는 신앙적이고 사교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름다운 교회를 설립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상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인간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즉 교회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단지 사회적인 실체만이 아니라 신학적인 실체입니다. 즉 교회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적인 활동(창조-해방-구원)에 의해 생겨난 공동체입니다. 즉 교회는 같은 감정, 신앙, 신조, 교리,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모인 사회적 결사단체가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시고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산물입니다. 교회는 경건한 신앙인의 집단이기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 설립되고 유지되며 갱신되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의지에 기초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을 닮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공동체로 계신 하나님'을 닮고 있습니다. ‘공동체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썼던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이 혼자로 계신 분이 아니라 삼위일체를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 안에서 코이노니아(사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현대신학자 몰트만은 이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사회적 삼위일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소중한 진리의 하나는, 바로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공동체를 향한 의지를 갖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홀로 계신 분이 아니라 공동체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 안에서 교회, 즉 친교 혹은 사귐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기원과 본질을 다시금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으로부터 이해해 보기로 하십시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이런 각도에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사귐’이라고 불립니다.         

 

 1.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바로 교회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에게 무슨 임무를 맡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교회를 선택하시고 교회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셨을 때, 하나의 믿음의 백성과 이 백성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온 인류를 염두에 두셨는데, 이 때에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에게 복을 내릴 임무를 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큰 복과 사명을 주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창세기 12:1-3).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의 후손들인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세우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은 구약성서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신약성서의 시대와 교회사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이 세상 가운데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열매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이 세상의 백성 한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의 도성(都城),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백성,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곳을 찾아 유랑하는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나라는 어떤 저 먼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 한가운데로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너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키며 이 세상으로 파고 들어오는 미래의 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저기 있지 않고 바로 ‘우리 가운데’ 있다”거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바로 이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구하고 두드리고 있으며,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이곳에 오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에서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반영하는 거울이요, 동터오는 그 나라의 여명(黎明)이요, 그 나라가 돌입해오는 최전방에서 하나님 편에서 악에 맞서 싸우는 게릴라 부대, 전위대(前衛隊)입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신약성서 시대에서는 교회이해에 하나의 큰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교회를 새롭게 소집하셨습니다. 그분은 옛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병들고 흩어져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이 백성을 치유하고 갱신하고, 이 백성이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온전히 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새로운 무리를 모으셨습니다. 그 중에서 12명을 택하신 것은 바로 상실된 이스라엘의 사명을 회복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온 몸을 다하여 제자들을 부르시고 섬기시고, 끝내는 그 몸을 십자가에서 깨뜨려 피와 물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시면서까지 인류의 구원과 교회의 소집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몸으로 다시 살아나셔서 인류와 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주시고, 또 그분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교회를 새롭게 소집, 갱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형성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어 주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그 구원받은 자들을 모아 자신의 몸으로 삼으시고, 그 몸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사랑과 희생의 능력으로써 교회를 통치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온갖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 안에서 은혜가 충만하게 하시며, 교회를 날로 날로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자신의 몸을 주셔서 우리를 그의 몸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창설자는 능력있고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머리)도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를 유지, 갱신, 확장하시는 분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성서 시대에 와서도 교회는 여전히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선택으로 인하여 세워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건립, 유지, 갱신, 확장하시는 영역은 1.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사도적 생활(마태복음 28: 18 이하), 2.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떼고 피를 마시는 성만찬 공동체(고린도전서 11,: 23 이하), 3.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사귀고 예배하는 형제-자매적 공동체(마태복음 18: 20) 4. 헐벗고 주리고 목마르고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곳(마태 복음 25: 31 이하), 5.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능력으로써 충만해진 그분의 몸, 하나님의 대성전이 된 우주(골로새서, 에베소서)입니다.

 

3. 교회는 '성령의 사귐'입니다  

셋째로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교회는 또한 성령이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공동체, 성령 안의 사귐, 성령의 코이노니아입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가 부르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모으신 것입니다만, 아버지와 아들의 활동 속에는 언제나 성령 하나님도 함께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교회는 온전한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 시대에서 성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고, 신약성서 시대에 성자 예수가 ‘그리스도의 몸’을 모으셨지만, 성령이 오심으로써 비로소 교회는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능력을 얻고 구체적인 모습, 즉 ‘성령 안의 사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신학적 출발점은 하나님 아버지의 공동체 의지에 있고, 교회의 역사적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있지만, 교회의 사회적 출발점은 바로 성령강림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 풍성한 성령의 은사들을 선사하시고, 그리하여 성령의 은사들을 통하여 교회를 생기있고 활기차고 능력있게 하시고, 이 세상의 어두운 거짓 영들의 한복판에서 참 증인, 세상의 빛과 소금, 변화의 누룩으로 만드십니다. 그런데 바울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은사들 간에 아무런 차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은사들 간의 구분은 존재합니다. 바울은 은사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선포의 은사'(사도, 예언자, 전도자, 교사, 권고자), 2. '봉사의 은사'(병고치는 자, 사랑을 베푸는 자), 3. '치리의 은사'(감독/장로). 그리고 바울에 의하면 심지어 고난도 하나님의 은사이며, 남모르는 사랑의 행위, 기술적 봉사, 결혼, 순결(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독신적 삶) 등도 은사로 인정됩니다. 이처럼 주님이 부르신 자에게는 모두 은혜의 분량대로 은사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독점이나 획일화, 횡포나 지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것대로, 서로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써 피차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과 그 은사들의 코이노니아(사귐, 교제), 즉 카리스마적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