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강: 죽음 후에는 무엇이 옵니까?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인간의 죽음 이후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는 자의 죽음일 것이며, 가장 큰 충격은 자신의 죽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죽게 되면 어디로 가는지,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가장 비극적인 일일 것입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신의 죽음 이후의 운명을 미리 알고 싶어 하지만, 죽음의 경계선을 완전히 넘어갔다고 되돌아온 사람의 보고가 없는 한, 이를 알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물리적으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장이다”고 말하는 것이 더 위안이 되고, 살아 있을 동안만이라도 잘 살기 바라는 것이 인간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자신의 사후에 관해 끊임없이 사색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유사 이래로 온갖 종류의 이론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전생을 보았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영혼을 만났다." 하는 온갖 소문들이 무성합니다. 그러나 사후의 삶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루터의 말대로, "어린이들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지 못하듯이, 우리도 역시 영속하는 삶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르는 세계보다 아는 세계에 더 열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갖고 꿍꿍 앓으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제쳐놓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죽음 너머의 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의 발동만도 아니고,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의 발산만도 아닙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도 보이듯이, 미래를 알아야 현재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맹목적으로 살다 죽는 것보다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삶은 더욱 알찰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성서가 말하는 죽음의 본질과 영생의 길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제시된 ‘세 가지 모델’을 요약하고 평가함으로써, 어렴풋하게나마 올바른 성서적 영생관을 찾아보기로 합시다.

 

1. 첫째는 '영혼의 불멸'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보편적인 이론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다"는 이론입니다. 영혼불멸에 대한 신념은 모든 종족과 종교에서 각양각색의 형태로 두루 퍼져 있고, 과학의 시대인 현재에도 대중의 신념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 이론을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 전수시켜준사람은 바로 플라톤입니다. 그에 의하면 영혼은 전생에서 이미 존재하였고, 그래서 죽음 후에는 다시금 본래의 세계(이데아)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진, 선, 미와 같이 영원한 것을 인식하고 사모하는 것은 바로 출생 이전에 이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선장과 배'의 모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선장(영혼)은 한 배(육체)를 타기 전에도 이미 다른 배(육체)를 타고 있었습니다. 선장(영혼)은 배(육체) 안에 들어가 이를 조종합니다. 그러나 배(육체)가 파손되면, 선장(영혼)은 이를 떠나 다른 배(육신)를 타든, 타지 않든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영혼과 육체가 일시적으로 결합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요소는 잠시 결합되었다가 분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썩지만, 영혼은 영원토록 불멸합니다.

성서는 영혼불멸을 거의 지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며, 인간은 본래 유한한 존재로 (흙에서 지음받아 흙으로 되돌아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쪼갤 수 없는 한 인간(全人)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혼불멸론이 지지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이론이 개인주의적이고 인간중심적이라는 데만 있지 않고, 육체와 자연적인 세상을 일시적이고 악하며 더러운 것으로 보아 경시하고 오직 영혼의 세계만을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몸과 세상, 아니 현실 전체를 비관적으로 보는 데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에도 의학적-심리학적으로 영혼-육체의 이원론은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심신일체(心身一體)적으로 살고 행동합니다. 심신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일체를 이루기 때문에, 나눌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전인의 창조와 전인의 부활을 희망합니다. 사도신경도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고 말함으로써, 부활의 결과로서 영생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부활 이전에도, 이미 이생에서도 영생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성서본문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살아서 영생을 얻습니다(요한복음 3:16). 이것은 단지 미래의 약속의 보증만이 아니라, 지금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지 않거니와, 죽는다고 하더라도 산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죽어서도 어떻게 영생을 누린다는 것입니까? 성서는 이런 확신을 상세하게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성서는 영혼만의 불멸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에서 말한 성서의 가르침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있는 영생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점차로 영혼의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혼불멸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습니다. 즉 영혼은 원래부터 불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불멸성을 얻게 되었고, 사후의 영혼은 완전한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알몸처럼 새 옷(몸)을 덧입기까지 부활을 기다리며 안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나눌 수 없는 전인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육체가 없는 영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날수록 마치 그리스도인이 영혼불멸을 믿는 것처럼 오해가 생겨났고, 부활보다는 사후의 영혼세계를 더 동경하면서 이를 천국처럼 화려하게 생각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잘못도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육체가 없는 인간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설령 육체와 분리된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H2O)이 수소(H)와 산소(O)로 분리되어도, 수소(H)와 산소(O)가 전혀 물이 아닌 이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없는 영혼'은 결국 '배를 떠난 선장'의 모델처럼 성서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은 "인간이 육체적인 형태를 띠지 않고도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혹은 죽음 후의 영생의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열린 자세로 늘 질문하게 해 줍니다. 영생은 지금부터, 그리고 죽음 속에서도 가능하다고 성서가 말하기 때문에, 이 이론은 계속 인간에게 설득력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이론의 장점은 인간에게 영생의 확신을 준다는 것입니다.

 

2. 둘째는 하나님의 신신하심(기억)'입니다            

 많은 현대의 신학자들은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영혼불멸론을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특히 칼 바르트와 같은 학자는 이 이론이 이교적이고 미신적일 뿐만 아니라, 죄인으로 하여금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을 주장하고 교만하게 반항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이를 단호히 배격합니다. 그리고 영혼불멸론은 영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지 않고 인간의 본질(도덕적-이성적 본질)로 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전인으로서 살다가, 전인으로서 죽습니다. 인간은 전체적으로 살다 죽습니다. 사후에 무덤 위로 날아다니는 영혼과 같은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통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오직 지속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혹은 기억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음악과 악보'의 모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음악(영혼 혹은 정신)은 애초에 인간의 물질(두뇌?)에서 나왔다가 또 다른 물질(악보)에 기록됩니다. 음악(영혼)은 오로지 작곡가의 육체를 통해서만 표현되고, 또 한 번 표현된 음악(영혼)도 다른 육체(악보)에 옮겨지지 않으면 영원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음악이 없는 악보가 없듯이, 악보가 없는 음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음악(영혼)은 오로지 악보(육체)와 하나가 됨으로써만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작곡가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영혼(음악)은 악보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한 악보가 파손되기 전에 다른 악보나 레코드에 옮겨지면, 음악은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이처럼 악보가 다른 매체(육체)를 거치면서 계속 남을 수가 있듯이, 인간의 육체가 파괴되어도 그의 정신은 하나님 안에서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이것은 육체를 떠난 영혼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하나님)에 보존되는 정신입니다. 이 정신은 육체의 형태를 갖지 않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 인간은 아닙니다. 그는 전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녔던 모든 기억을 거두셔서 부활 때까지 보존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연속성 혹은 동일성은 부활까지 하나님에 의해 보증됩니다. 우리는 영혼불멸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기억에 의해서 죽음 속에서도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대체로 성서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첫 번째 창조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듯이, 두 번째 창조(부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부활을 통한 영생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오래 죽어 있더라도, 순식간에 부활하면 마치 방금 전에 잠든 후에 깨어난 것처럼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이나 나중에 죽은 사람들이나 모두가 다 방금 전에 죽은 것처럼 홀연히 일어나기 때문에, 기간이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인간은 전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살고 죽고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이론은 한 인간을 둘로 쪼개지도 않고, 또 쪼개었다가 다시 붙이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전인으로서 살고 죽고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 인간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부활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기억일 뿐이라는 생각은 일시적으로 영생을 단절시키거나 영생을 약화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이론은 "혹시 기억만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으로서 영생할 가능성이 없는지?"에 대해서 늘 질문하게 합니다. 여하튼 이 이론은 성서에 가장 걸맞은 이론이고, 과학적인 현대인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됩니다.   

 

3. 셋째는 '죽음을 통과하는 부활'입니다

 첫 번째의 이론은 영생을 보증하지만, 영-육 이원론을 말하기 때문에 성서적이지 못합니다. 두 번째의 이론은 하나님의 신실과 기억의 영속성을 말하지만, 죽음과 부활 사이에는 영생을 보증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 이론은 주로 고대-중세교회의 이론이고, 두 번째의 이론은 주로 현대 개신교회의 이론입니다.

그런데 현대 카톨릭교회의 이론은 또 하나의 진기한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레사케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살고, 전적으로 죽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불멸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약속하는 영생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전 인간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만약 부활이 마지막 때, 예수의 재림 때 한꺼번에 일어난다면, 옛날이나 오늘 죽는 사람들에겐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지금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생과 함께 오직 부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영생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은 죽음 속에서 개인적으로 부활을 경험함으로써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번데기와 나비' 모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번데기 이전의 벌레처럼 번데기가 된 벌레도 나비로 부화하기까지는 전적으로 쪼갤 수 없는 한 생명체입니다. 그 벌레는 전적으로 한 생명체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는 번데기에서 껍질을 벗고 나비로 변화합니다. 이처럼 인간도 살고 죽는 순간까지 쪼갤 수 없는 한 인격체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통하여 인간은 육체라는 허물을 미련없이 지상에 남기지만, 육체를 버린 영혼으로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또 한번 전적으로 새로이 태어난 온전한 한 인간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이 육체를 떠난 상태가 아니라, 옛 육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부화-부활한) 상태입니다.

이 이론은 앞의 두 이론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린 이론입니다. 즉 이 이론은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전인으로서의 삶과 죽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도 죽음 후의 영생을 보증하기 위해서 개인적 부활을 통한 전인적 영생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 이론은 전인적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강조하고, 동시에 죽음 후의 영생도 보증하는 장점을 지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가 말하는 종말의 '만인부활' 대신에 주장되는 '죽음 속의 개별적 부활'이라는 사상도 낯설거니와, 육체라는 껍질을 벗고 새롭게 부활하는 생명도 전통적인 영혼과 흡사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과학적인 현대인들에게 매우 설득력을 주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죽으면서 육체의 껍질을 남기는 새 생명으로의 부활’ 이론은 자칫 육체를 경시하게 만들지 모르며, 몸(육체)의 부활을 부인할 가능성도 생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것에 대해 신실한 분이시므로, 그 어떤 것도 결코 무(無) 가운데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만물을 전적으로 새롭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 이론은 인간의 전인성(全人性)과 단절없는 영생을 보증하기 때문에, "앞의 두 이론의 단점을 극복하는 대안의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늘 열려 있게 만들어 줍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 가지 모델(선장과 배, 음악과 악보, 번데기와 나비 모델)을 다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일어날 영생을 충분히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하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굳건히 믿으면서,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 출발임을 확신하면서, 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