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하나님이 행하신 활동, 즉 창조행위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서말씀에 비추어 창조의 내적 의미 혹은 목적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창조신앙을 소홀히 여기거나 없어서도 안 되는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핵심신앙으로 받아들였을 줄로 압니다. 그렇지만 현대인인 우리에게 정말로 궁금할 수 밖에 없는 문제는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서도 성서가 상세한 정보를 주고 있을까요?

소박하면서도 진실했던 이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의 내용이 가감 없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蓄字靈感設), 창조에 관한 성서의 기록도 문자 그대로 과학적인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창조의 시간도 정확히 6일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어떤 사람은 창조의 연대가 기원 전 4004년이라고 주장하거나(J. Usher, 1581-1656년), 사람이 창조된 날짜가 10월 23일 9시라고까지 주장하는(J. B. Lightfoot, 1828-1889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 칼빈과 루터 그리고 후대의 웨슬레마저도 성서본문(여호수아 10:12-13/"태양아 너는... 멈추어라... 태양이 머물고...", 시편93:1/ "... 세계도 견고히 서고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등)을 근거로 하여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이론(天動說)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 것은 비단 과학의 발견(地動說, 宇宙物理學 등)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서를 진지하게 연구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나 계시록과 같은 태초론(太初論)과 종말론(終末論)은 문자 그대로 읽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점차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여기에 많은 상징과 신화, 암호와 비유 등이 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고, 성서가 본래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과학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실에도 있습니다. 즉 창조에 관한 성서말씀은 "우리가 천지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어떤 근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그 당대의 세계이해의 틀 안에서 믿음으로 고백하려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에 관한 성서말씀은 창조에 관한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과학정보가 아니라, 신앙의 조상들이 믿음으로 고백한 신앙고백적인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브리서 11:3).

그러므로 불행했던 과거처럼 과학자와 신학자가 마치 서로 원수나 되는 듯이 으르렁거리며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 날과 같이 지구환경과 지구생명이 급속도로 위협을 받는 위기의 시대에 과학자와 신학자는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보존하고 살리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학과 신학의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자와 신학자는 다 함께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고 다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이제 우리는 창조신앙의 눈으로 창조과학을 들여다보고, 창조과학을 통하여 창조신앙을 해명해 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신비한가를 살펴보십시다. 성서는 창조에 관하여서도 삼중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는 '태초의 창조'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태초는 언제쯤일까요? 오늘 날의 우주물리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인하여 대개의 과학자들은 우주가 약 150억년 전에 탄생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창조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성서의 말씀은 하나님이 창조 이전의 그 어떤 물질로부터 우주를 제작(변형)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무(無)로부터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용어 '바라'(창조하다)는 아무런 재료가 없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지시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무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신 게 아니라면, 이미 그 전에 다른 창조신이나 물질이 있었다는 셈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자가 아니라 기껏해야 예술가나 건축가 혹은 조각가일 뿐입니다.

오늘 날의 우주과학자들은 태초에 우주가 매우 뜨겁고 밀도가 높은 에너지로부터 폭발하여 생겨났다고 말합니다(빅뱅[대폭발] 이론). 이 태초의 상태를 어떤 과학자는 동전 한 닢의 물질과 에너지의 크기라고 말하고, 또 어떤 과학자는 '거의 무(無)와 같은 에너지 상태'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과학자는 어미-우주로부터 아기-우주가 탄생했다는 진기한 이론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현대 우주물리학이 성서의 '무로부터의 창조신앙'을 완벽히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현대물리학이 성서의 ‘시작이 있는 우주’와 같은 우주관을 말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이 우주탄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우주탄생과 동시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점은 신학자들의 견해와 일치합니다. 즉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하나님을 시간과 공간의 창조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창조자가 아니라 어느 시점에 어느 공간 안에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말한다면, 이 창조자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아닌 셈입니다. 즉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는 셈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너머에 계신 분, 즉 영존(永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탄생과 더불어 시간과 공간도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빵이나 풍선의 예를 듭니다. 즉 밀가루 반죽에 일정한 간격으로 건포도를 넣어 만든 빵을 불에 굽는다고 상상해 보십시다. 이 때 빵이 불어나듯이 공간도 불어났고, 건포도의 간격이 커지듯이 별들의 간격도 커졌다는 것입니다. 혹 풍선에 일정한 간격으로 점을 찍어 놓고 바람을 넣어 부풀린다고 상상해 보십시다. 이때 풍선이 커지듯이 우주공간도 커졌으며, 점들의 간격처럼 은하계의 별들도 서로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빵 외에 또 다른 빵이 없듯이, 하나의 풍선 외에 또 다른 풍선이 없듯이, 창조된 공간 밖에 또 다른 공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도 공간처럼 창조와 동시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가 얼마나 큰 공간 안에서 창조되었을까?”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150억년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를 묻는 것도 역시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성서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태초에(약 150억년 전에) 하나님이 무(無)로부터 우주, 즉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습니다"고 고백해야 옳습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이런 우주를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왜 지금과 다른 우주를 만드시지 않았을까? 이런 우주가 생겨난 것은 필연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아니면 조물주의 선택일까 아니면 그분의 실험일까? 아니면 그분의 주사위 놀이일까? 과학자들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지만, 아무도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따름입니다. 단지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자유로이, 그러나 사랑으로, 가장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창세기는 이 우주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7번이나 연거푸 말합니다.

  

2. 둘째는 '계속적 창조'입니다.  

성서는 우주창조가 한 순간에 송두리째, 완성된 채,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창조는 긴 시간을 요하는 계속적인 과정입니다. 창세기의 '하루'(욤)는 히브리어로 긴 연대기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의 과학도 앞에서 말한 대로 지금까지의 우주의 생성기간을 약 150억년으로 잡고 있고, 우주가 앞으로도 얼마나 오래 동안 팽창, 변화될 지에 관하여서도 견해가 서로 엇갈립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우주가 계속 재창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폭발 이후 1/1,000,000,000,000초까지 대팽창이 이루어졌고, 팽창 이후 약 1/100,000초에 양자, 중성자 등이 생겨났고, 100초에 핵합성이 끝났고, 30만년 후에 우주가 투명하게 되고 방사선이 나왔으며, 10억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최초의 은하계가 출현했고, 150억년이 지나서 지금의 우주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대개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계속적인 생성-진화의 과정을 설명할 때, '하나님'이라는 작업가설을 전혀 동원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도 과학-수학적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더 이상 초월적인 하나님의 개입이 없어도 우주는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생성,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Einstein) 이래 최고의 천재 우주물리학자인 호킹(Hocking)은 "태초의 창조 이전에 혹은 과학자가 설명할 수 없는 극히 짧은 최초의 순간에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에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오직 신만이 그것을 알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 다음의 순간 이후부터는 과학 혹은 수학 이상의 다른 원리를 믿지 않습니다. 신이 개입할 여지가 도무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신이 없이도 우주의 생성원리는 충분히 설명된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수학이 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구인 그를 신앙 때문에 헌신적으로 돌보던 아내는 주로 이런 이유로 그와 이혼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과학자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주 이전으로 돌아가거나 우주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가 없으며, 우주 안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찾아 그들에게 명백히 보여 줄 도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선적으로 신앙의 대상이지 과학실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과학자들과 논쟁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럴 처지도 못 됩니다.

단지 우리는 우주 안에는 우연이 가득차 있다는 사실, 우주는 닫혀 있는 게 아니라 열려 있는 개방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 우주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구조만이 아니라 정신적-영적 질서도 갖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의 피조물 안에 거하시며 계속 그것을 돌보신다는 것을 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즉 히브리서 기자와 같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11:3)는 것을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된 피조물을 내버려두시지 않는 것은 그분이 신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부모라도 그 자식을 돌볼 줄 알며, 보잘 것 없는 미물도 그 새끼를 먹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그 손으로 지으신 만물을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설령 어미가 자식을 품 밖으로 던지고, 동물이 새끼를 버릴지언정, 하나님은 결코 피조물을 무의미와 파괴로 내팽개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 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헤아리신다"(마태복음 10:29-30)고 말하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한,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이것을 고대의 신학자들은 '섭리'(攝理)라고 불렀습니다. 섭리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계속 보존하시고 혁신하시기 위해서 친히 보고 계시고 간섭하신다는 신앙을 일컫는 말입니다. 눈을 만드신 분이 보지 못하시겠으며, 귀를 창조하신 분이 듣지 못하시겠으며, 손을 창조하신 분이 손을 펴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계를 어떻게 섭리하실까요? 하나님은 창조된 것으로부터, 창조된 것 안에서, 창조된 것과 더불어, 창조된 것을 통하여 지금도 계속 일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이 세계를 보존하시고 이 세계와 함께 협력하시며, 이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계의 운행을 허용하시거나 저지하시며, 혹은 세계의 운행을 조종하시거나 한계를 설정하심으로써, 세계를 통치하십니다. 그분은 이 세계를 계속 돌보시기 위해서 성령 안에서 수고하시고, 인내하시며, 고통도 감수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일 뿐만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어머니이며, 좋으신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창조적-구원적 가능성을 믿을 수 있으며, 그 어떤 사건도 이 가능성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즉 바울이 말한 대로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 38-39)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원한 사랑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이 우주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하여 계속 창조하고 계십니다.  

  

3. 셋째는 '마지막 창조'입니다.  

이 우주에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출발점이 있다면, 목표지점이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이 우주, 계속 창조하시는 이 우주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성서는 이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일컫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가 천국이 되길 원하십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기 위해,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곳', '하늘과 새 땅'(요한 계시록 21:1-5)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창조하고 계십니다.

과학자들은 이 우주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약 150억년 후에 우주가 완전한 무에너지의 정지상태로 멈출 것(우주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많이 있는가 하면, 우주가 끝없이 계속 팽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더러 있지만, 대개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이 다 한 후에 재수축하여 원상태로 되돌아가서 또 다시 폭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서가 말하는 새 창조, 마지막 창조일까요? 성서는 과학적 관찰의 결과로 우주의 끝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지구의 징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맞추어 이 우주의 종말을 예고합니다. 그러므로 종말 혹은 마지막 창조의 시점을 너무 과학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지구 하나만을 생각한다면, 지구환경의 대격변, 생태계의 완전한 파괴, 핵폭발이나 혹성충돌 등의 과정으로 지구나 지구생명이 종말을 고할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정보나 예보 못지 않게 우주의 창조자요 섭리자가 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분은 우주의 심판자이기도 하시므로 언제든지 우주를 끝장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비로우신 분이므로, 이 우주의 마지막까지 오래 참으실 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록 고난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결국 이 세계는 하나님의 나라, 영광의 나라로 변모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며,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속히 오시길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마라나타" -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