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날이 갈수록 지식과 정보는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생활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개인이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의 양도 제한되고, 개인이 행동할 수 있는 영역도 좁아져간다. 이로 말미암아 현대인은 점차로 왜소해지고 고독해진다. 현대 사회의 특징이 되고 있는 다원적인 생활 형태는 점차로 삶의 의미와 목표, 개인의 주체성을 약하게 만들고, 공동체와 역사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흐리게 만든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의 교회와 신학이 처해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전통의 급속한 해체와 소화하기 벅찬 새로운 정보와 생활 스타일의 유입 앞에서 현대인은 방황하고 있으며, 교회와 신학도 이와 같은 흐름을 타면서 전통과 현대, 과거와 미래를 중재해야 할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고루한 전통적인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무조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오늘날의 신학도 이와 비슷한 양상에 빠져 있다. 어떤 신학은 그저 과거의 형식에만 안주해 있고, 또 어떤 신학은 그 형식을 파괴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자는 젊은이들이다. 특히 젊은 신학생들과 교회의 청년들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동안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노출되기 쉬어진다.

이러한 현실에서 신학을 강의하고 청년을 지도하는 있는 필자는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솔직하게 대화하면서 전통과 현대를 섭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때마침 『크리스천 저널』의 부탁으로 『성숙한 신앙을 위한 지상강좌』라는 제목 아래 ‘조직신학’을 연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애초에는 24회로 생각하고 기획하였지만, 사정에 의해 18회로 중단되었다. 그러므로 본인은 제한된 지면 때문에 무리하게 요약했던 부분과 자료 보충이 약했던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24회로 마무리하여 이렇게 내어놓게 되었다.

한국의 신학계는 아직도 적절한 '조직신학입문'을 내어놓지 못한 듯하다. 번역된 외국 서적들은 여전히 딱딱하고 이질적으로 여겨지며, 너무 두꺼운 저서들은 안내와 입문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이 책도 대부분 외국 서적들은 짜깁기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전통화 현대의 중요한 신학문제들을 쉽게 요약하고 솔직한 결론을 내리려고 고심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개방적이고 대화하는 마음가짐 속에서 집필되었다. 특별한 체계를 미리 짜놓은 다음에 그 속에 글과 독자들을 집어넣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본인이 학습하고 지도를 받은 신학자들의 글이 많이 소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약 ‘인식을 유도하는 관심’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특히 오늘날 시급히 요구되는 지적인 솔직성, 개방성, 연대성, 역사성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모쪼록 이 작은 책이 청년들과 젊은 신학생들, 나아가 성숙하기를 원하는 평신도들에게 조직신학의 유용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이 발간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신 『크리스천 저널』의 직원들과 출판을 맡아서 수고해 주신 『한국신학연구소』의 채수일 소장님과 직원들, 특히 이정희 목사님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1992년 5월 22일

마포 고개마루에서

이신건